[노케미족 시대]② 1% 천연성분으로 자연주의 화장품?…규제 사각지대의 친환경제품

조선비즈
  • 배정원 기자
    입력 2016.06.29 07:00 | 수정 2016.06.29 08:19

    제주도 내세운 이니스프리에 제주 원료 미미해
    유기농 제품 사려면 美 USDA 등 해외 기준 살펴야

    청정지역 제주도의 이미지를 내세운 이니스프리 매장 벽에는 제주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이니스프리 제공
    노케미족의 등장과 함께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리 화장품 브랜드는 대부분 자연주의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브랜드숍 중 지난해 매출 1위를 기록한 더페이스샵(6281억원)과 2위 이니스프리(5921억원)는 모두 청정 원료를 사용한 자연주의 화장품으로 알려졌다. 데페이스샵은 자연주의 컨셉을 가장 먼저 시도한 브랜드고, 이니스프리는 자연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주도의 청정한 이미지를 담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밖에 브랜드명에 ‘네이처’가 들어간 네이처리퍼블릭은 2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5위를 차지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점은 4층짜리 건물 외관이 모두 풀잎 조화로 덮여 있는 등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운다. 6위를 기록한 스킨푸드 역시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를 쓸 정도로 먹을 수 있는 천연 원료를 사용한다. 브랜드 화장품 상위권 중 미샤와 에뛰드하우스를 제외하면 자연주의 제품이 화장품 시장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제주 브랜드로 인기 끈 이니스프리, 알고 보니 제주 성분 0.1% 함유

    제주도에 위치한 이니스프리의 브랜드 체험관/사진=이니스프리 제공
    그런데 자연주의 화장품은 일반 화장품과 어떻게 다른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분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자연주의’ ‘친환경’ ‘천연성분’ 제품이라고 광고하는데 특별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천연성분이 1%만 들어 있고 99%를 화학물질로 채운다 한들, 자연주의라고 광고하면 그만이다.

    TV 영상 속에서 소녀시대 멤버 윤아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녹차 밭을 걷거나, 제주 용암 해수에서 인어처럼 수영하는 싱그러운 모습에 해당 제품도 자연의 순수함을 가득 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저 광고 이미지일 뿐이다.

    심지어 제주도의 청정한 이미지를 컨셉으로 내세우는 이니스프리는 제주도 원료 함유량이 미미해 제주도 제품이라고 말하기 무안할 정도다. 최근 이니스프리는 제주도에서 실시하는 제주 화장품 인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제주산 원료를 10% 이상 사용하고, 제주 소재지에서 생산하며 폴리염화비닐 등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니스프리 CF에는 소녀시대 멤버인 윤아가 녹차밭을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이니스프리 제공
    그런데 이니스프리 제품 중 제주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난 제주 생강을 내세워 홍보한 ‘진저오일’의 경우 생강오일 추출물이 0.1% 수준이다. 50ml의 ‘제주 풋감’ 에센스에 들어 있는 풋감 추출물은 250mg으로 함유량은 0.5%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청정 이미지, 천연성분이 들어간 자연주의는 모두 화장품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다. 제품 성분이 다르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화장품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국 제품을 신뢰하기 어려운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와 맞물리면서 식품, 화장품 분야에서 자연주의 컨셉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특히 이니스프리가 제주도의 이미지를 내세워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주의 컨셉트는 현재 브랜드숍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라고 말했다.

    ◆ 무의미한 자연주의보다 유기농 제품에 주목하자

    애매모호한 자연주의, 천연 화장품과 다르게 유기농 화장품은 제법 까다로운 제조 절차를 거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유기농 화장품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체 구성성분 중 95% 이상이 동식물 등에서 유래한 원료이면서 전체의 10% 이상이 유기농 원료로 구성된 제품 또는 물과 소금을 제외한 전체 구성성분의 70% 이상이 유기농원료로 구성된 제품이어야 한다.

    이렇게 국내에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만,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권고 사안일 뿐, 지키지 않는다고 처벌받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무늬만 유기농인 화장품도 상당히 많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유통 중인 유기농 화장품 50개의 표시·광고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35개 제품이 식약처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

    국내 유기농 가이드라인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성성분의 95%만 천연 원료면 되기 때문에 5% 이내에서 합성원료는 사용가능하다. 화장품 제조 관계자는 “5% 이내 합성원료에 어떤 성분을 넣어도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국내 유기농 화장품의 기준을 따르더라도 충분히 유해 성분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미국 USDA “유기농에도 등급이 있어”

    국내에 유기농 인증 기관이 없다면, 어느 곳에서 허가받은 원료를 ‘유기농’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식약처의 규정에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의 공신력 있는 정부 산하 기관이나 국제 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에 등록된 인증기관’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만 보면 알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찾아보면 미국 USDA, 독일 BDIH, 프랑스 에코서트(ECOCERT), 이탈리아 ICEA, 영국 Soil Association, 일본 JAS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기농 제품에 대한 기준은 나라마다, 기관마다 다르다. 미국 농무부 산하 유기농 인증 기관인 USDA는 깐깐한 기준으로 유명하다. 물과 소금을 제외한 나머지 성분의 95% 이상을 유기농으로 써야 하고, 3년간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해야 원료를 유기농으로 인정한다.

    유기농 인증 마크/사진=각 기관 홈페이지
    USDA는 또 제품의 유기농 성분 함량에 따라 다른 문구를 패키지에 표기하도록 하는데 전 성분이 유기농으로 이뤄진 제품은 ‘100% organic’, 95% 이상은 ‘organic’, 70% 이상은 ‘made with organic ingredients’라는 문구를 쓴다. ‘오가닉(organic,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다 똑같은 제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70% 미만으로는 제품 패키지에 ‘오가닉’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관리,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증과정도 쉽지 않고 그에 따른 신뢰도가 높다.

    프랑스 에코서트는 원료 수확 방법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 까지 유기농 규정을 준수하는 지의 여부를 매년 재심사하여 유기농 인증서를 재발급하는 프랑스의 독립적인 공인 인증 기관이다. 유럽 공동체(EU)가 인정하고 전세계 50여개 이상의 국가들이 유기농 제품에 대한 조정 및 인증을 의뢰하고 있으며, 수 천명의 전문가들이 엄격한 유기 품질 관리 규정에 따라 검사를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 테스트를 하지 않으면 재활용 가능한 포장만 사용하는 것도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

    백화점에서 호주 유기농 브랜드를 판매하는 관계자는 “유기농에 대한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유기농이라는 말에만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 기관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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