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케미족 시대] ① "정부도 기업도 못믿겠다"…세제·화장품 만들어 쓰는 노케미족 등장

조선비즈
  • 배정원 기자
    입력 2016.06.27 07:00 | 수정 2016.08.03 14:26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세제를 직접 만드는 데 쓰이는 천연재료의 판매가 늘고 있으며, 아예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노케미(no-chemistry)族’까지 등장했다. 보통 우리는 하루 동안 200여종의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치약, 샴푸, 화장품 등 한 제품에만 들어 있는 화학물질이 30여종 이상. 과연 화학물질을 완전히 배제한 삶이 가능할지, 그리고 천연 제품은 무조건 인체에 무해한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유해 화학물질을 거부하고 천연재료로 생활용품을 만들어쓰느 노케미족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할리우드 배우 기네스 펠트로, 제시카 심슨, 로버트 패틴슨, 조니 뎁, 영국의 해리 왕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수년째 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유해한 화학물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비단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최근 많은 주부는 베이킹소다와 식초로 아기 용품을 헹구기 시작했다고 한다. 옥시 사태 이후 마트에서 파는 화학 세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학물질을 배제하고 천연성분만 사용하는 노케미족이 늘어나고 있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전문기업 다음소프트가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소셜미디어를 분석한 결과, 올해 노케미족이라는 단어가 SNS상에 처음으로 등장해 283건의 문서에서 언급됐다.

    ◆ 대기업도 정부도 믿을 수 없어 내가 직접 만들어 쓴다

    유통업체 이마트에 따르면 화학 성분을 첨가한 생활용품 판매는 올해 급감했다. 표백제·방향제·탈취제·섬유유연제·제습제·방충제 등은 지난해와 비교해 평균 20~50% 정도 매출이 줄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옥시 사태로 다른 표백제 브랜드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소비자 대부분이 화학생활용품 자체를 찾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반대로 천연 세제를 만드는 재료들의 매출은 늘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식초와 구연산·베이킹소다·밀가루·소금 등 세제나 탈취제를 만드는 재료들의 판매는 매달 20~30%씩 늘어나고 있다. 5살 아이를 둔 한 가정주부는 온라인 카페에서 친환경 제품에 대해 문의하며 “옥시 사태 이후로 대기업도, 정부도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많은 이들이 사망한 사고를 보고 화학생활용품 자체를 앞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노케미족은 베이킹소다로 과일을 세척한다./사진=조선일보 DB
    유해성분을 검색하는 앱도 인기다. 화장품의 전 성분을 보여주는 ‘화해’는 제품 이름만 검색하면 각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어떤 피부타입에 좋은지 보여준다. 특히 아기 엄마들이 유아용 크림에 의구심이 들 때 알아보기 유용하다.

    노케미족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만든 화학용품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아는 494명을 대상으로 생활화학 제품 인식을 조사한 결과 87%가 ‘안전성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답했다. 85%는 ‘생활화학용품을 사용하기 꺼려졌다’고 응답했다. 친환경 제품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70%였다. 소비자들은 친환경 마크가 붙어 있어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 국내 유통 화학물질 중 85%의 안정성 여부 알 수 없어

    실제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만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고, 현재 한국에만 3만6000여종, 4억3250만톤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해마다 새로 등장하는 화학물질만도 200여종.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의 치명적인 독성은 널리 알려졌지만 해마다 새로 등장하는 디부틸히드록시톨루엔(BHT), 퍼플루오르옥탄산염(PFOA), 프탈산에스테르 같은 복잡한 화학성분 이름들을 외우기도 어렵다.

    물론 모든 화학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원료보다 무해한 화학물질도 많다. 다만, 한국환경보건학회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중 약 15% 정도만이 안전성이 확인된 상태다. 오랜 세월 인류가 적응해온 천연물질과 다르게 화학물질은 그 유해성이 입증된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의 85% 아직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그림=이진희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업체 측의 해명만 반복되다 유야무야 넘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치명적인 유해성이 확실하게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해하지 않다’는 게 정부와 기업의 기본적 태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장품 제조업체 연구원은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85%의 화학물질은 인체에 어떤 유해성을 발휘하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매년 새로운 화학물질이 국내에 들어오는데, 모든 물질에 대해 안정성을 확인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화학물질마다 인체의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진다. 공기를 통해 들이마셨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하고, 섭취했을 때 혹은 발랐을 때 유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조차 수많은 화학물질의 적절한 사용량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긴 어렵다. 될 수 있으면 화학물질이 적게 든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천연물질이라고 무조건 안전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민트, 자몽, 라벤더, 계피 성분은 천연물질이지만,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발진, 알레르기 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윤충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자연주의 제품, 친환경 제품은 들어가는 화합물의 종류와 양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맞지만, 천연 물질이라고 무조건 무해한 것은 아니다. 독버섯처럼 위험한 천연물질도 있다”고 말했다.

    ◆ ‘노푸(no poo)’보다 현실적인 ‘로푸(low poo)’로 시작하자

    노케미족은 보통 세제와 비누를 만들어 쓰는 것에서 시작해 천연 팩·천연 토너 등 화장품 제조로 발전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샴푸의 사용을 아예 끊어버리는 노푸족(no+shampoo)으로 진화하게 된다. 기네스 펠트로부터 조니 뎁까지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환경 보호와 건강을 위해 노푸를 선언했다.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노푸족 기네스 펠트로 /사진=조선일보 DB
    샴푸 통의 뒷면을 보면, 복잡한 이름이 줄줄이 빼곡히 기재돼 있다. 대표적인 유해 화학성분인 계면활성화제는 그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머리를 감을 때 풍성하게 거품이 나고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의 유분기를 없애주는 역할을 바로 이 계면활성화제가 한다. 사실 계면활성화제 없이 샴푸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화학성분이 없는 샴푸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심지어 깨끗히 씻어내도 두피에 샴푸 성분은 남는다. 몇년 전 KBS TV 예능 ‘스펀지’의 실험을 보면, 샴푸로 머리를 감은 뒤, 특수 빛으로 두피를 비춘 결과, 형광물질이 머리 군데군데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로 거품을 모두 씻어내면 깨끗한 모발만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색해진 순간이다.

    노푸를 실천한 많은 사람은 현실적으로 지속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맹물로만 머리를 감다 보니, 제대로 씻은 것 같지 않아 찝찝하고 청결하지 않아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베이킹파우더로 머리를 감고 식초로 헹구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머릿결이 손상돼 하루도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이 고통을 몇달만 극복하면, 두피가 자생능력을 키워 건강한 머릿결을 가질 수 있다고 노푸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초보들은 몇 주 견디다 포기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노푸가 아닌 로푸(low poo)로 시작해, 단계를 올려가라고 조언했다. 2~3일에 한 번 머리를 감아 샴푸 사용량을 줄이면서, 두피에 나쁜 성분을 최소화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샴푸도 친환경 제품 위주로 사용한다. 보통 친환경 샴푸는 거품을 풍성하게 내는 황산염이 들어 있지 않고, 파라벤과 미네랄 오일, 인공 색소 등 유해 성분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세정력을 좌우하는 계면 활성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옥수수 전분과 코코넛, 설탕 나무 등에서 채취한 천연 계면활성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올리브영에서는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이브로쉐 라즈베리 헤어 식초를 선보였는데, 2개월 만에 올리브영 린스 제품 중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헤어식초는 그동안 국내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로 출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메슈티컬 브랜드 스킨젠의 ‘에코글램 헤리프 샴푸’는 96% 이상 식물성 재료로 만든 저자극 자연주의 샴푸로 녹두, 샐러리, 인삼 등 자연에서 추출한 8가지 사포닌 콤플렉스가 두피 자극을 최소화하고 모발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해 준다. 합성계면활성제가 아닌 96% 이상 식물성 재료에서 추출한 천연계면활성제를 사용해 탈모 케어에도 도움이 된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애스톤네이처의 약산성 자연유래 샴푸도 인기를 끌고 있다. 향균 작용이 탁월한 ‘유칼립투스잎 샴푸’는 지성·트러블 두피에, 보습 작용이 뛰어난 ‘루모라고사리잎 샴푸’는 민감성·건성 두피에 사용하기 좋다.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계면활성제와 각종 자연유래 추출물을 활용했고, PH 4.5의 산성도를 유지해 두피 건강에 좋다.

    다만, 시중에 나온 친환경 샴푸를 광고만 보고 안심해선 안 된다. 특히 계면활성화제, 파라벤, 페녹시에탄올, 합성유화제, 미네랄오일, 합성향료 등 유해 성분이 없다고 말하는 브랜드일지라도, 성분을 살펴보면 언급하지 않은 화학물질이 들어간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 성분표를 확인하고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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