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 신뢰위기]④ 김기식 전 의원 "부실한 회계·신용평가가 자본시장 도박판 만들어"

조선비즈
  • 연지연 기자
    입력 2016.06.19 06:00

    [인터뷰]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장

    지난 19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의 저승사자’, ‘금융기관 저격수’로 불렸던 김기식 전 의원(50)이 자본시장 씽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공식 직함은 운영위원장이다. 19대 국회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20대 국회를 위해 ‘정무위 운영 가이드라인’을 책으로 묶어 냈던 그는 이제 더미래연구소 위원장 자격으로 자본시장 정책을 제언할 계획이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장이 회계부실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연지연 기자
    김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를 보며 우리나라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감사에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에도 사실과 다른 재무제표를 작성한 대우조선해양과 이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을 추궁했다. 당시 그는 "딜로이트안진을 불러서 물으니 '손실이 예상됐으나 규모를 단정 못했다'고 답했다"며 "손실 규모를 단정할 수 없어도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면 감사보고서 기재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18명 중 10명이 정권과 관계된 ‘정피아’였기 때문이라는 자료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경영부실 사태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발생한 것인데,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한 사외이사들은 정권이 내려보낸 전문성이 전혀 없는 낙하산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5일 만난 김기식 위원장은 청바지에 백팩을 맨 캐주얼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국정감사 때처럼 여전히 날카로웠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분식회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의 주식 매도 직전에 회계법인 대표가 전화통화한 사실이 검찰수사로 드러난 것과 관련, 김 위원장은 “이래서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꾀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계·감사 업무와 신용평가 업무를 바로 세워야 자본시장이 제대로 돌아갑니다. 두 분야가 망가지면 재무제표를 아무도 믿지 않고, 투자시장이 도박판이 됩니다. 도박판에서 어떻게 건전한 투자가 이뤄지고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겠습니까.”

    김 위원장은 “회계법인과 대기업간의 유착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자가 아닌, 독립된 사외이사가 회계감사를 할 회계법인을 선택하고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회계 수수료가 너무 낮아 회계법인은 기업에서 얻는 컨설팅 수익을 포기하기 어렵다”며 “헐값이 된 회계 수수료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4년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느낀 기업 회계감사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회계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우조선해양 문제와 비슷한 사건은 과거 건설업계에도 숱하게 있어왔던 일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부실회계를 방치했고, 그 연장선에서 이번 일이 생겼다. 과거에 숨겼던 손실을 갑자기 털어내면 주주들이 큰 손해를 입는다. 대우조선해양과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은 손해를 본 주주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2015년 주주총회 때 승인이 난 재무제표를 보고 투자한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나. 이런 일의 책임소재를 명백히 밝히지 않으면 자본시장 활성화는 어림도 없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계기로 수주산업의 공시 방식이 일부 개선됐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이었던 미청구 공사대금(공사를 하고도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돈)의 경우 예외 규정을 두기로 해 그 취지가 약화됐다.
    “산업의 특성에 맞게 회계 처리 기준을 바꾸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회계에 있어 예외는 최소화해야 한다.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나 공인회계사)의 재량권이 너무 많거나, 회계 기준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식으로 범위가 넓을 때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예외 규정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에게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이 전화를 하고 미공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문제가 됐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금융위원회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을 전부 개정하겠다며 밝힌 내용에 해결책이 담겨있다. 기업이 회계법인과 체결하는 회계감사 계약을 경영자가 아닌, 기업의 감사위원회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회계법인은 재무제표 감사가 아닌, 컨설팅 사업으로 돈을 번다. 컨설팅 사업을 따기 위해 회계법인은 감사업무를 할 때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기업과 회계법인간의 유착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업의 감사위원회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 경영인 대신 감사위원회에 회계감사 계약을 맡겨도 될까.
    “물론 감사위원회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로 구성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감사위원회는 오너 입맛에 맞는 사람이 선임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것이 변하지 않으면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을 끊기 어렵다. 지금까지 경영인과 회계법인이 계약을 맺었던 것 자체가 아주 이상한 관행이었다. 회계법인은 경영자들이 주주를 속여 회사의 부실을 숨기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회사 부실에 대한 책임을 경영자가 아닌 주주들이 지는 구조이므로 주주들은 당연히 경영진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회계법인을 경영진이 선임하는 것은 정말 이상하지 않나.”

    -감사 수수료 문제는 어떻게 보나.
    “감사 수수료가 너무 싼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회계법인들이 낮은 수수료를 감수하면서 기업의 회계감사 업무를 따내고, 그 대신에 경영진과 유착해서 감사가 아닌 영역, 즉 컨설팅 사업을 따내 수익을 얻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앞으로 지정감사제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면 감사 수수료도 올라갈 것이다. 지금 지정감사제는 시행과정에서 적용 범위가 너무 좁혀졌다. 더 확대돼야 한다.”

    -그간 상장 예정 기업은 지정감사를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은 상장 예정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 복수의 회계법인 중 한 곳을 기업이 선택하도록 해줬다.
    “지정감사제도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기업부담을 완화해주고 싶다면, 복수 회계법인이 상장예정 기업의 회계감사를 맡고 싶을 때 입찰식으로 하면 한다. 딱 한 차례 입찰식으로 최저 수수료를 제출한 회계법인을 택하는 것이다.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면 지정감사제는 무력화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회계·감사 수수료가 낮은 상태에서는 금융 당국의 이런 발상 자체가 문제가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
    “회계·감사 수수료는 지금도 매우 낮은 편이다. 지금보다 두 배, 세 배 오른다 해도 비싸지 않다. 회계사 인력은 정말 고급인력이다. 그런데 요즘 수수료는 헐값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회계사를 안 하려고 한다. 회계사가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는데, 똑똑한 친구들이 앞다퉈 회계사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 회계사란 직업 자체를 예전과 달리 꺼리게 된 이런 상황에서 수수료가 비싸서 기업에게 부담이 된다는 정부의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한국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은.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한국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정보를 숨기려 하고, 재무적으로 좋게 보이려 하는데 이를 견제할 힘이 회계법인에 없다. 신용평가사도 문제다. 제대로 된 재무제표를 근간으로 정확한 등급을 매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신용평가사도 기업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재무제표를 안 보고 등급을 내주니 자본시장이 도박판처럼 되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발전하려면 규제를 많이 풀어줘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자본시장 규제 완화에 편승해 이 부분까지 풀어줘선 안 된다.”

    -국회를 떠났지만,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사안이라고 보는 것이 있다면.
    “회계와 신용평가의 신뢰성 제고를 계속 얘기하는데, 이게 곧 투자시장 활성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마음 놓고 투자할 환경이 돼야 자본시장이 활성화된다. 기업도 자본시장이 활성화 돼야 좋다. 은행에서 대출하는 것보다 투자를 받아서 이자 부담없이 순자본이 들어오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이제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연구소에서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여러가지 정책적 제언을 할 계획이다. 회계와 신용평가가 제대로 서고, 투자자가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장은
    1966년 서울 출생. 서울 경성고,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냈다.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 특별보좌관을 거쳐 2012~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최근 민간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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