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미래일기]⑦ 여행에 대한 예언 "스마트폰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

조선비즈
  • 조선비즈 문화부, 편석준 작가
    입력 2016.06.09 07:00

    직장에서 해고되면, 해당 정보가 곧바로 이웃에게 전달돼 ‘퇴출’ 압박을 받게 된다. 무직자의 존재는 집값 하락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내 점심 메뉴는 자체 개발한 앱을 통해, 부서원들의 손떨림, 심박수를 통해 정해진다. IT소설집 ‘10년 후의 일상’에 수록된 33편의 짧은 소설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26년 우리의 흔한 일상을 보여주는 단편 소설 7편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위치 기록하는 스마트폰 족쇄에 청소년들 폰으로부터 일탈 시도
    직장인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계급 이동이 불가능한 최하류 계층

    엄성훈 그림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에서 세 번째의 아침을 맞이했다. 거울 속의 내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호텔 마당에 아이들이 모이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얼굴만 빨리 씻고 벤에게로 달려갔다. 벤은 옆방에 묵고 있었다.“오, 헨리!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벤은 다른 아이들처럼 조식 뷔페를 먹지 않고 부잣집 아들답게 혼자 룸서비스로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벤은 나와 동갑으로 열 살이었지만, 호텔방에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아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도저히 돌무더기를 못 보겠어. 지겨워졌단 말이야.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남은 일정의 절반을 지겨움 때문에 시무룩하게 있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시저샐러드를 다시한 입 먹고 커피로 입가심을 한 후에 말했다.

    “더워서 그러니? 내가 아이스팩을 빌려줄 수도 있어.”

    “날이 더운 건 상관없어. 원래 캄보디아는 더운 곳이니까. 나를 애 취급하지는 마. 나는 지금 너에게 우리가 어른이 되어 보자고 제안하는 거야. 지도를 벗어난 여행을 해보자고.”

    앙코르와트를 처음 봤을 때는 돌로 직조된 그 웅장함에 경외심을 느꼈다. 석조물을 지나칠 때마다 이어폰으로 캄보디아와 앙코르와트의 역사와 신화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나중에는 이야기 듣는 것이 더 재미있어 사면이 얼굴로 된 석조물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땅만 보며 걷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후 이제 그 이야기마저도 지겨워졌다. 벤은 고개를 젖혀 천장 쪽을 잠시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에 아마도 내일이면 이름조차 기억 못 할 어떤 왕을 기리는 사원 앞에 섰다. 우리 앞의 아이들은 다시 돌로 된 사원 마당을 지나 사원 입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미리 앞서 걷는 아이의 가방을 슬쩍 열어 놓았고 그 안에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우리의 위치를 가이드에게 알려 줄 스마트폰이었다.

    벤도 역시 나와 똑같이 처리했다. 가이드, 대사관, 고국의 부모님들은 우리가 이제부터 세 시간 동안 이 사원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 것이다. 벤과 나는 사원 입구 근처에 잠깐 숨어 있다가 한 번 숨을 고른 후 주차장까지 달려갔다. 조금 전, 우리를 이곳에 내려 준 버스는 이미 없었다. 우리는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스마트폰이 있는 쪽과 반대로 걸어갔다.

    열 개 남짓의 사원을 지나친 뒤에야 돌로 된 세상은 완전히 사라졌고 좁은 길, 가난한 집,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풀과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도를 벗어난 행군을 시작했으나 막상 목적지는 없었다. 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 지도란 것에 신물이 나 있었다.

    부모님께 전달되는 내 위치 정보나 구매한 상품에 관한 정보, 관심사에 대한 정보 등의 공유를 수십 번이나 꺼달라 요청했지만 번번이 묵살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스무 살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혜택의 열 배가 넘는 금액을 위약금으로 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 두 달 전에 글로벌 기업 ‘굿(GooD)’의 담당자가 부모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이 아이가 앞으로 20년간 발생시키는 데이터를 자기들이 갖고, 그것을 마케팅 용도로 쓰는 데 동의를 해주면 그 기간 동안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했단다. 물론 내가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적 수준의 데이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식별 정보를 제거한 데이터만 제공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굿 사가 부모님께 말한 데이터는 건강 데이터 관리와 위험 방지 관리였다. 그것들을 위해 디바이스와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 으며, 응급상황 발생시 병원과 연동해 출동할 뿐 아니라 치료비의 일부도 부담하겠다고 했다.

    또한 내가 쓸 기저귀와 입을 옷, 갖고 놀 장난감, 공부할 교재나 학습 도구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굿 사에서 직접 제조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제휴된 회사들에게서 받은 제품들도 있었다. 똑같은 것은 그 제품들을 내가 사용하며 발생시킨 데이터들이 굿 사의 서버에 전송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열 살 때와 스무 살 때는 해외여행을 보내 주겠다는 조건도 걸었다. 가난했던 부모님은 그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부모님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가난은 세상의 선이든 악이든,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게 만드니까. 더구나 부모님은 나에 관한 개인 식별 정보가 제공된 데이터도 받을 수 있어 나를 더욱 잘 관찰해 나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굿 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히 어릴 때부터 자사의 서비스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린아이에게 노출될 서비스에 대한 장악은 곧 제조사에 대한 장악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쓰는 제품뿐 아니라 그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도 쓰게 될 제품은 제조사의 마케팅이 아니라 굿 사의 의지가 정하게 되는 것이다.

    벤은 캄보디아에서 처음 만난, 알게 된 지 이틀밖에 안 된 친구였다. 이 여행에 와서 놀랐던 것은 우리의 생년월일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었다. 굿 사가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끌어 모았는지 짐작이 갔다. 아이들 수가 어느 정도였다면 이렇게 기계적인 방식으로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벤에게 물었다.

    “벤, 너희 집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니? 사실 넌 계약만 아니었다면 이 여행에 오지도 않았겠지?”

    “엄마 말로는 우리가 잘살게 된 건 운이래. 아빠는 인간의 손을 20년 넘게 연구해 오셨는데 마침 아빠의 연구 아이디어와 기술을 사겠다는 회사가 나타난 거지. 안 그랬으면 아빠는 계속 거리를 청소했을 거래. 물론 아빠가 손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그런 운이 나타났을 리도 없었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그것을 운이라고 했어.”

    나는 언제 해고될지 모를 직장인에 불과한 부모님을 떠올렸다. 직장인은 계급 이동이 불가능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다. 이런 경제적인 문제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벤과 나는 저녁 여섯 시가 될 때까지 걸었다. 가이드가 우리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었지만 우리는 호텔 방향을 알고 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려고 할 때 벤이 말했다.

    “헨리, 저 나무 보이지. 우리 저쪽으로 가서 우리가 지도를 벗어났다는 징표를 남기고 가자. 이런 생각은 아무도 못 했을 거야.”

    우리는 무엇을 징표로 남기고 갈지 생각하며, 유독 높게 자라고 가지들이 줄기만큼이나 바닥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나무로 다가갔다. “정했어.”

    우습게도 나는 양말을, 벤은 팬티를 탈옥의 증거로 남기기로 했다. 나는 운동화를 남기고 싶다고도 생각했지만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는 뿌리 주변을 돌멩이로 파기 시작했다. “바닥이 너무 부드러운데.”

    얼마쯤 파내려 갔을 때, 나무뿌리 근처에 있을 법하지 않은 물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엔 우리가 이곳에 두려고 했던 양말과 팬티가 있었고 바지, 운동화, 모자 심지어 스마트폰과 종이 여권도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먼 서쪽 하늘을 봤는데 낯선 새들 몇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자유로이 날고 있는 그 새들에게마저 감시당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10년 후의 일상 | 편석준 지음
    근미래 소설 ‘10년 후의 일상'의 작가 편석준은 IT대기업을 다니던 회사원이었다가 스타트업 창업을 한 CSO였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작가로서의 시간을 올곧이 보내며 인공지능 시대의 IT소설집을 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최종심에 응모작 3편이 오른 적이 있다. 총 33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먼 미래의 과학 발전을 소재로 하는 기존의 SF소설보다는 가까운 미래의 과학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 ‘점심 메뉴 결정 앱’을 사용하는 정도의 근미래가 오히려 현실성있게 느껴져 줄거리에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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