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미래일기]① 세 번째 눈 "소개팅남의 2년전 과거까지 캐주는 빅데이터 기술의 진화"

조선비즈
  • 조선비즈 문화부
  • 편석준 작가
    입력 2016.06.01 07:00 | 수정 2016.06.01 08:28

    직장에서 해고되면, 해당 정보가 곧바로 이웃에게 전달돼 ‘퇴출’ 압박을 받게 된다. 무직자의 존재는 집값 하락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내 점심 메뉴는 자체 개발한 앱을 통해, 부서원들의 손떨림, 심박수를 통해 정해진다. IT소설집 ‘10년 후의 일상’에 수록된 33편의 짧은 소설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26년 우리의 흔한 일상을 보여주는 단편 소설 7편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지까지 연인에게 알려주는 스마트폰
    소개팅남의 음식 취향, 연애, 과거 섹스 패턴까지 빅데이터 분석

    줄리아는 어제 커트를 했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선선한 가을이 시작되자, 왠지 머리카락을 산뜻하게 자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작더라도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새로운 스타일로 소개팅 장소에 나가거나 하는 일 말이다.

    줄리아는 ‘세 번째 눈’을 제어하는 앱을 실행시켜 자신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벌레의 모습으로 줄리아의 머리카락 속을 돌아다니던 ‘세 번째 눈’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그녀의 머리를 여러 방향에서 촬영했다. 촬영한 영상은 곧바로 줄리아의 스마트글라스로 전송되었다. 줄리아는 바꾼 스타일이 만족스러웠는지 살짝 미소 지었다.

    초미니 드론인 ‘세 번째 눈’은 사용자의 머리카락 속에서 뒤쪽, 옆쪽, 심지어 하늘까지 어디든 촬영할 수 있었다. 때론 머리카락들 속에서 빠져나와 공중에서 촬영할 수도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 피부에서 5cm이상 떨어져 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이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인데, 그간 ‘세 번째 눈’이 일으켰던 안전사고들 때문이다. 아기의 눈에 들어가기도 했고, 노인의 코에 들어가기도 했고, 다른 자동차나 드론과 부딪혀 폭발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세 번째 눈’은 어떤 것이든 촬영하는 덴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다만, 사생활 침해 문제로 ‘저장’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우리의 눈과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눈은 직설적이게 또는 비밀스럽게 그 무엇이든 볼 수 있지만, 저장하지는 못한다. 그런 논리로 ‘세 번째 눈’의 상용화는 별 문제 없이 승인되었다.

    엄성훈 그림
    ◆ 속옷에 달린 센서로 타인의 시선 집계…블로거 방문자수보다 적나라한 관심 원해

    잔뜩 마음이 부푼 줄리아는 보정 속옷에 붙어 있는 ‘타인 시선 감지 센서’를 작동시켰다. ‘타인 시선 감지 센서’는 몸의 중요 부위 몇 곳에 장착해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닿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센서다. 이 센서를 통해 파악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데이터화되어 스마트렌즈, 스마트글라스, 스마트폰 등으로 전달되었다. 줄리아가 입은 보정 속옷은 여성 잡지 편집장인 그녀가 평소 알고 지내던 보정 속옷 회사로부터 하루 동안 빌린 것이었다. 이 속옷 회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더 나은 보정 속옷을 만들기 위해 ‘타인 시선 감지 센서’를 자사 속옷에 달았다.

    또 과학적으로 분석해 만든 속옷임을 마케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속옷을 입고 실험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그 회사의 직원들은 틈만 나면 자사 속옷을 입고 실험을 직접 수행해야 했는데, 입사할 때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이 실험을 반드시, 성실히 수행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싫으면 회사를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규정만 즐비한 노동법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매우 자유주의적으로 변해 버린 노동 시장은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계약서만이 최고로 중한 법령이 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 때문에 줄리아가 속옷을 빌리고 싶다 요청했을 때 속옷 회사에서 두 손 들고 환영하며 빌려준 것이었기에, 줄리아로서는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센서를 통해 받은 분석 데이터 중에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결과를 받자, 줄리아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무릎 약간 위로 오는, 나름대로 짧은 치마에 엉덩이가 돋보이는 보정 속옷도 입었지만 누구 하나 쳐다보질 않다니. 줄리아는 마흔다섯이 된 자신에게 날아오는 시선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 들리지 않는 울분을 쏟아 냈다.

    약속한 레스토랑에 먼저 도착한 것은 줄리아였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40분이나 남아 있었다. 줄리아는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고 신경질적으로 귀밑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줄리아는 새 근무지인 한국으로 오기 전에 이스라엘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 일했다.

    그때 그곳에서 유명한 해킹 사건이 있었다. 연인들을 위한 ‘오직 우리끼리만 아는 일’이란 유명 데이팅 서비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서비스는 연인이 서로의 일상 정보를 모두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로, 다양한 센서로 구성되어 스마트폰뿐 아니라 몸에 착용하는 여러 디바이스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일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정도가 아니었다. 회사에 있다면 몇 층에 있는지, 화장실에 갔는지도 알 수 있었고, 스마트글라스를 쓰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베개에 머리를 기댔는지, 이불을 덮었는지, 술을 먹었는지, 재채기를 했는지, 누구와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센서와 센서가 모은 데이터를 전송할 통신 모듈이 그녀 또는 그의 사방에 모두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오직 우리끼리만 아는 일’을 제공하는 회사는 비즈니스를 여기에서 끝내지 않았다. 그간 집적한 데이터로 이별을 한 사용자에게 가장 맞는 연인 또는 결혼 상대자를 아주 정밀한 수준으로 추천해 주었다. 실제 만남까지 주선해 주기도 했다. 이 회사의 최종 비즈니스 목표는 전 세계의 연애와 결혼과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를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줄리아가 지금 고뇌하는 이유는, 그녀가 ‘오직 우리끼리만 아는 일’의 데이터가 해킹되어 빠져나가는 바로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회사는 각종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인 간에만 데이터를 전송하고 각자의 디바이스에만 저장하는 방식이라고 홍보하며 보안에 문제가 없음을 거듭 주장했었다. 하지만 실제론 연인 중 한쪽이 누적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를 대비해 껍데기 데이터는 갖고 있었다.

    어떤 센서에서 어느 시간에 어느 만큼의 데이터를 전송했는지에 대한 사실은 갖고 있어야, 상대의 디바이스에 저장된 데이터를 회사가 자동으로 삭제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해킹은 그 껍데기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디바이스에 접속하여 원천 데이터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단순히 개인의 해킹 수준이 아니었다. 엄청난 수준의 서버를 갖고 있어야 그 원천 데이터를 모두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해킹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짧은 순간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금세 발각되었고 전송 작업이 중간에 끊겼던 것이다. 하지만 0.005% 정도의 원천 데이터는 해킹되었고, 그때 줄리아는 자신도 몰래 그 0.005%의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소개받기로 한 남자의 얼굴이 그 0.005%의 데이터 중에 존재한다고 인식되었던 것이다.

    ◆ 소개팅에 나서기 전 상대방의 음식 취향, 연애 경력까지 캐볼수 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줄리아는 데이터에서 소개팅 남성에 대한 정보를 보지 않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소개팅을 결혼까지 꼭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지자 마음이 흔들렸다. 모든 것이 평균 이상인 남자였다. 흠이 있다면 이혼 경력이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쯤 문제 삼는 여자도 없었다.

    약속 시간이 임박하자, 줄리아는 결국 스위치를 켜고 말았다. 줄리아의 스마트폰 속에 곧 등장할 남자가 어떤 여자와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 왔다. 큰 카페였지만 남자는 레스토랑에 설치된 실내 위치 정보 시스템을 통해 곧바로 줄리아 앞에 와서 앉았다. 남자는 사진보다 실물이 나았고, 아주 선한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줄리아는 주문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가 나오자 남자에게 물었다. “정말 파스타 괜찮으세요?” 줄리아는 묻는 동시에 빠른 손놀림으로 ‘파스타’를 검색했다. 그러자 13건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

    사실 난 파스타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 당신이 비싼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비싼 집을 예약했을 뿐이야. 한번은 정말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토한 적도 있다고.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국물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말이야. 라면 배달 101회. 그 외 면류 음식 배달 0회. 일본 브랜드의 파스타 레스토랑 라르엘치에 대한 평가: 비싸고 게다가 재수 없음.

    줄리아는 당연히 모른 척하고 남자에게 말했다. “파스타 좋아하시나 봐요. 맛있게 드시네요. 전 사실 파스타를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첫 만남엔 파스타가 여자를 위한 예의일 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처음 만날 때는 예의란 형식이 더 편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 다른 데서 만나요.”

    줄리아는 은근슬쩍 다음번에도 만나자고 말했지만, 남자는 그저 웃을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조금 조급해진 줄리아는 이어서 말했다. 급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남자와 꼭 잘해봐야겠다는 일념이 그녀의 합리성과 자제력에 균열을 일으켰다.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잠은 잘 주무세요?” 줄리아는 침실, 침대, 이불 등의 키워드로 다시 검색했다.

    728일 동안 연락 없었던 민정이란 여자와 주고받은 침대 데이터에 관한 종합 평가: 평균 7시간 침대 위에 있었음. 깊은 수면 4시간 30분. 섹스로 추정되는 큰 진동의 움직임 일주일에 평균 5회(5회 중 동일 대상 간의 섹스는 2.8회로 추정).

    줄리아는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부드러운 크림파스타가 까칠한 종이 뭉치가 되어 목구멍을 간신히 넘어갔다. 줄리아는 알고 있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서로 조금씩 기댈 수 있고 따뜻함과 위로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벌써 마흔다섯인 그녀는 인간과 인생에서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10년 후의 일상 | 편석준 지음
    근미래 소설 ‘10년 후의 일상'의 작가 편석준은 IT대기업을 다니던 회사원이었다가 스타트업 창업을 한 CSO였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작가로서의 시간을 올곧이 보내며 인공지능 시대의 IT소설집을 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최종심에 응모작 3편이 오른 적이 있다. 총 33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뒤의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을 담고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