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인공지능 뜨니까 기업 모여라?…기업도 과학계도 ‘싸늘’

입력 2016.03.15 12:57 | 수정 2016.03.15 17:57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사회 전반을 강타하자, 정부가 인공지능 산업 진흥 정책을 급하게 들고나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들을 동원해 연구소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치 논란까지 불거졌다.

관련 기업들과 과학기술계는 “정부가 알파고와 인공지능 열풍에 편승해 단기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평가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K-알파고(한국형 알파고)’나 ‘코파고(Ko와 알파고의 합성어) 육성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댓글을 올리며 정부 행보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최양희 미래창조부장관은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첫 대결이 펼쳐진 3월 9일 대국 현장(서울포시즌즈호텔)을 찾아 인공지능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정부와 기업,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인공지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래부는 예산 3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최근에는 미래부 내부에 ‘인공지능 전담팀’도 만들었다.

미래부는 올해 초 발표한 업무계획에서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을 골자로 한 ‘지능정보기술’ 중점 육성 정책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당초 4월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알파고 열풍으로 발표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을 추진 중”이라며 “알파고 열풍으로 계획 발표를 좀 더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삼성전자·LG전자·SK·현대자동차·네이버 등 기업들에 지능정보기술연구소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조만간 AI 관련 기업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박근혜 대통령과 간담회를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계획에 대한 기업과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정부가 주도할 경우 그간의 전례를 봤을 때 단기 성과에 급급할 가능성이 있고, 정부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 기업과 연구자들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카이스트·포스텍 등 5개 대학이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과제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는 선언문을 작성하고 정부에 전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정부 지원 연구 과제를 평가할 때 계량적 평가에 치중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연구 개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국제 학술지 게재 논문 수를 평가하는 정량 평가 시스템보다 연구 업적의 질을 따지는 정성 평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연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예산을 받아 연구 개발하는 처지에선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좋은 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성과와 실적 내기에 치우친 나머지 연구자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설익은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연구과제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도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는 “이번 대국으로 정부 정책 전문가들이 받은 쇼크는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급하게 내놓은 정책이 인공지능 산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국내에는 인공지능에 쓸 만한 데이터가 많지 않은데, 공공 데이터부터 공개해 인공지능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는 어떤 아이디어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게 중요한데 무작정 ‘한국형 인공지능산업 육성’으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선진창조형 정책을 펴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모방추격형 정책을 펴고 있다”며 “알파고가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우리도 알파고를 개발하자고 나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인공지능 연구가 2년 뒤졌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며 “알파고로 인공지능의 강력함이 입증됐는데, 정부는 우리 사회가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준비해야 하고 민간 기업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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