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광주 지역 경제에도 수출 한파…'생산시설 해외이전·글로벌 경기침체'에 몸살

입력 2016.02.03 10:42

"수년째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물량이 감소하면서 회사 매출도 줄었고, 이 때문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놀고 있는 설비가 늘어나 아파트 내부 인테리어 자재 생산 등으로 업종을 바꿨는데도 공백을 메우긴 어렵습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 1캠퍼스의 입구. /한동희 기자
2일 오후 2시30분쯤 전라도 광주시의 한 산업단지에서 냉장고 마감재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협력업체 A사의 김모(가명) 대표를 만났다. 작업복인 남색 점퍼를 입은 김씨는 '쓰읍'하며 혀를 차더니 “삼성전자의 해외 수출 물량이 베트남으로 이전되고 내수만 남다보니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말을 이어가면서 불안한듯 손가락을 꼬았다.

◆ 삼성전자 광주공장 생산라인 잇따라 해외이전…협력업체 타격

또다른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의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수백억원을 투자하며 2010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는데, 지난해에는 매출이 700억원까지 줄었다”면서 “유휴설비를 농산물 골판지 박스 제작에 돌리고 있지만 매출을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삼성전자(005930)는 광주공장 냉장고 생산라인 3개 중 겨울철에 가동하지 않는 1개를 임금 등 비용이 싼 베트남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에 앞서 2014년에는 청소기 생산라인을, 2011년에는 세탁기 일부 라인을 해외로 돌렸다. 지난해 기준 광주 지역에 있는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는 50여개사이며, 2·3차 협력업체는 120여개사다.

광주시 미래산업정책관이 1차 협력업체 50개 중 35개 업체 대표와 면담을 통해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의 베트남 공장이 예정대로 올해 7월 가동되면 광주 협력업체 생산량이 평균 10%에서 최대 4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량 감소는 인력구조조정과 자금압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주요 협력사 중 10곳은 2011년 영업이익률이 11.1%에서 2014년 8.2%로 3%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투자와 생산 부진으로 광주지역 무역수지 ‘불황형 흑자’…주력 산업 가전·車 ‘흔들’

광주 지역 경제가 가전 등 생산라인의 해외이전에 따른 산업공동화와 세계 경기 침체에 의한 수요 부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광주·전남지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135억5000만 달러로 61%나 늘었다. 그러나 이는 수입 감소폭이 수출 감소폭을 크게 웃돈 이른바 '불황형 흑자'에 기인한 것이었다. 경기가 장기 불황기에 접어들면 투자와 생산 감소로 기계설비와 원자재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광주 지역 등 한국의 경제가 지금 이런 상황이다. 지난달 광주본부세관의 발표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의 지난해 수출은 2014년보다 95억6000만 달러 감소한 458억만 달러였고 수입은 146억9000만 달러 줄어든 322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광주 전남 지역 경제의 양대 축은 가전과 자동차다. 이 지역 경제에서 가전과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8%와 40%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이 지역 수출을 보면 반도체 정도만이 6.3% 늘어났고 자동차(5.2%), 가전제품(18.9%), 기계류(14.5%), 타이어(30.2%), 철강제품(8.9%) 등 주력 업종은 대부분 감소했다.화공품과 석유제품의 수출도 각각 18.7%, 35.0% 줄었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 경제의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타격을 받고 있다. 신흥국 경기의 둔화와 일본 정부의 인위적 엔화 약세 정책도 악영향을 미쳤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생산되는 주력 차종인 스포티지R, 쏘울 등은 북미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한 자동차 부품 협력사 설비가 작동하는 모습./ 한동희 기자
점심 시간을 넘겨 찾은 기아차 협력업체 H사의 공장. '쿠웅 칙' 거대한 팔과 같은 모양의 로봇팔이 바쁘게 움직이며 철제 틀을 옮기고, 거대한 도장같이 생긴 기기가 1초 간격으로 '쿵'하고 틀을 찍어냈다. 그러나 기기 앞에 있는 모니터에 표시된 공장 가동률은 40%대에 그쳤다.

H사 대표는 “지역경제의 40%가 자동차 산업에 기대고 있는데 해외 수요 감소로 올해 전망이 염려스럽다"며 “광주에서 만드는 차의 80%가 수출용이라서 더욱 걱정된다”고 말했다. H사는 예년 같으면 완전(풀) 가동할 시기에 1교대만으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 광주지역 제조업체 체불 임금 급증…광주시 대책 마련 고심

가전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침체로 지난해 광주지역 제조업체의 체불 임금은 전년보다 36% 늘었다. 번화가로 꼽히는 첨단지구는 점심 시간인 오후 1시쯤에도 길거리에 행인들이 뜸했다. 한 체인 음식점에 들어서니 300평 남짓한 가게에 손님이 앉아있는 테이블은 3개에 불과했다.

오병교 광주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은 "외환위기 때와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경기가 나쁘다고 말하는 회원사들이 많다"며 "심각한 불경기에 경총 회비마저 부담돼 가입을 철회하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단기 대책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제조업체들에 대한 금융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지역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지난 1일 광주 테크노파크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한 윤장현 광주시장은 "연초에 경기가 안좋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잠이 안온다"며 "현장 중심으로 기업과 관(官)이 협력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 첨단지구의 한 사거리.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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