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 4사 "우리만 잘 나가" 작년 5조 이익 추정...글로벌 기업은 줄파산, 구조조정 몸살

조선비즈
  • 전효진 기자
    입력 2016.02.02 10:11 | 수정 2016.02.02 14:52

    글로벌 에너지 기업 셰브론(Chevron)은 2015년 애플(5위·1827억달러)과 GM(6위·1522억달러)보다 많은 매출액(2037억달러)을 기록한 초거대 기업이다.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2015년 세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에서 월마트, 엑손모빌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유가 급락으로 최근 3년 동안 매출이 매년 5~7%씩 줄었다. 작년 4분기 2002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반면 국내 3위 정유기업인 에쓰오일(S-OIL)은 2011년 이후 4년 만에 최대 영업 이익을 기록했다. 유가 급락으로 세계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적자로 돌아섰지만, 국내 정유 4사의 작년 영업 이익은 5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국내 정유 4사/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저유가의 칼날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을 구조조정으로 몰아 가고 있지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기업들은 조 단위의 이익을 내고 있다. 비결이 뭘까?

    에너지 전문가들은 “저유가 장기화로 싼 가격에 원유를 사와 생산비가 줄었지만 오히려 정제마진은 늘어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제마진이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운송비용을 제외한 순마진을 뜻한다.

    국내 정유 기업들은 원유를 채굴해 파는 글로벌 정유사들과는 달리 원유를 수입한 뒤 정제해서 되파는 영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유가가 원유 공급 기업들의 이익을 갉아 먹고 있지만 원유를 정제해 파는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 외국 에너지 기업 파산 속출...구조조정 한파

    2013년 배럴당 100~110달러 선에 머물렀던 국제 유가는 글로벌 원유 공급과잉과 세계 경기 둔화 우려로 2년 만에 배럴 당 30달러 안팎으로 폭락했다.

    글로벌 석유회사들은 석유자원개발 사업이 주가 되는 업스트림(상류) 부문과 원유를 투입해 정제한 뒤 석유 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하류) 부문 사업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업스트림 부문의 수익이 급감, 타격을 받고 있다.

    작년 유가 급락으로 전세계 58개 석유 회사가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고, 글로벌 메이저 석유 회사들도 2015년 3분기 실적이 2014년 동기 대비 40% 이상 감소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실적 악화로 고통받는 에너지 기업들은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셰브론은 올해 예산 규모를 작년 대비 24% 삭감했고, 직원의 10%(6000여명)를 해고할 계획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해 인수한 프랑스 알스톰의 에너지 사업 부문에서 6500명을 잘랐고, 영국 메이저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석유탐사와 생산 부문 인력 4000명을 감원키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셰브론, 브리티시페트리올리엄(BP)을 포함한 글로벌 4대 메이저 에너지 기업이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업체가 작년 1년간 거둬들인 매출액 대비 순이익은 평균 26%로 10년 전(35%)에 크게 못 미친다.

    2010년~2016년 1월까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 추이(위). 2015년 12월 이후 두바이유가 추이(아래)./전효진 기자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도 대폭 줄었다. 노르웨이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리스타드 에너지는 “원유와 가스 등 세계 에너지 업계의 투자는 지난해 5950억달러(703조원)에서 올해 5220억달러(617조원)으로 2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리스타더 에너지사의 뵤나르 톤하우겐 부회장은 "1986년 원유 값 하락 이후 2년 연속 투자가 준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 국내 정유사 정제 마진 늘어 흑자 ‘휘파람’...산유국에 석유제품 역수출 등 수출 다변화

    반면 국내 정유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유가가 하락하는 속도가 가파를 때는 재고 손실이 크게 늘지만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가격 하락 속도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정제 마진이 개선돼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고도화 시설에 집중 투자한 것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유 4사 중 가장 빨리 2015년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S-OIL)은 영업이익 8775억원을 냈다. 영업손실 2897억원이던 2014년 부진을 털어내고 흑자전환했다. 매출이 17조8900억원으로 2014년 28조5500억원 대비 37.4% 줄었지만, 당기순이익 규모는 6766억원으로 2014년(당기순손실 2878억원) 대비 흑자 전환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유가 하락에 따른 판매 단가 하락으로 매출은 줄었지만, 정제 마진이 강세를 보여 영업 이익은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복합정제 마진이 3분기에 배럴당 3.9달러에서 4분기 6.4달러로 늘어난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작년 영업이익이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작년 3분기까지 정유 4사는 4조893억원의 누적 이익을 기록했다.

    정제 마진 확대 뿐 아니라 석유제품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해외로 수출하는 우리 정유사들의 영업 구조도 이익 확대에 기여했다.

    대한석유협회는 2일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가 2015년 석유 제품 생산량 9.5억배럴 중 45.5%에 달하는 4.3억배럴을 수출했다”고 밝혔다. 수출 비중이 역대 최고치였던 2014년(45.8%)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출 대상국도 2014년 55개국에서 2015년 66개국으로 늘었다. 중국과 일본, 미국, 유럽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도 주요 석유 제품 수출 대상 국가들이다.

    원유 매장량 4위인 이란의 경제 제재 해제로 인해 원유 수입처 다변화가 가능해진 것도 국내 정유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유업계 한 전문가는 “이란의 원유 수출이 본격화되면 이란산 원유를 직접 수입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OPEC 국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널뛰기' 정제마진은 2016년 리스크 요인...성장둔화, 금리 인상 여부도 살펴야

    정유 4사가 지난해 실적 개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높은 정제마진 때문이었다.

    아시아 정제마진(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2011년 배럴당 15달러 수준까지 갔다가 2013년 3달러 밑으로 폭락했지만, 2015년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현재는 배럴당 10.3달러를 기록 중이다.

    권영배 미래에셋 연구원은 “앞으로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이 원유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IT) 대비 두바이유 가격이 더 떨어지면 정유사들의 마진은 더욱 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제품 비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월 이후 마진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중국, 중동, 인도가 정제 시설을 증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월 중순부터 난방유 성수기가 끝난다. 4월 말 휘발유 성수기까지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중국이 석유 제품 수출을 시작할 예정이고, 인도도 신규 정유 설비를 가동할 전망이어서 수익이 마냥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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