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코리안 쿨

조선비즈
  • 노자운 기자
    입력 2015.10.10 08:05

    유니 홍 지음|정미현 옮김|원더박스|319쪽|1만4800원

    2001년 여름,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는 질문에 “꼬레(Coreé·한국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왔다”고 하면 “그게 대체 어디 있는 나라냐”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서툰 영어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나라”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 했다. 그제서야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2003년 겨울 프랑스를 다시 찾았을 때였다. 이번엔 그들은 “North or South?”라고 물었다. 4년이 지난 2007년. 그곳 사람들 손에 삼성 애니콜이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들도 “이 제품이 한국산이라는 걸 안다”고 했다. 마침내 2013년. 너도나도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말춤’까지 춰보였다.

    한류(韓流)의 힘이다. 한류라고 하면 흔히 싸이를 비롯해 소녀시대, 빅뱅 같은 가수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92년 홍콩에 수출된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큰 인기를 끈 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때 한류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이 책은 한국 드라마 등 한류의 기원부터 케이팝(한국 가요)과 한식, 한국 영화 등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서술했다. 한국계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한류의 탄생과 발전 뒤에 있는 정치적 문화적 배경까지 알기 쉽게 썼다. 영문으로 나온 책임을 감안하면 외국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

    한국에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중 화장실마다 좀약이 걸려있고 학교 양호 교사가 촛불로 소독한 주사기로 단체 예방 접종을 했다. 저자는 그런 ‘개발도상국’이 어떻게 문화 강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는지 비결을 풀어낸다.

    저자가 제시하는 키워드는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한’과 ‘수치심’의 정서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 식민 지배 경험과 6.25 전쟁, IMF 사태 등 외환 위기 속에서 열등감과 콤플렉스라는 국민 정서가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혔다. 이 때문에 대중 문화 수출과 확산을 위해 한 마음으로 노력할 수 있었다는 것.

    저자는 “다른 나라가 이런 복잡한 정신적 구조를 흉내내기란 힘든 일이다. 한국이 뭐든 산산조각낼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선 최고의 성과를 올리며 무섭도록 의욕적인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 무려 5000년이 걸렸다. 솔직히 한국의 어마어마한 동력은 악마처럼 진을 친 과거와 현재의 역경을 보란 듯이 제쳐버리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썼다.

    저자는 정치적인 배경에도 주목한다.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직에 오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IT와 더불어 대중 문화에 역점을 두고 집중 육성에 나선 사실을 든다. 이런 정부 주도 대중문화 육성 정책의 한가운데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있었다.

    저자는 이 외에도 영화감독 박찬욱, 신형관 CJ E&M 방송콘텐츠부문 엠넷본부장(상무), 드라마 ‘아이리스’ 제작자인 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중국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인 제프 양 같은 국내외 관계자들과의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 해외에서 한류를 보는 시각도 소개했다.

    제프 양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한국다움’ 자체를 무기로 문화 강국이 됐다. 일본이나 중국이 자국 문화의 독특한 색채의 농도를 낮춰 ‘범아시아 형태로 자기네 문화를 수출하려고 했던’ 반면, 한국은 고유의 정서를 문화 상품에 그대로 녹여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

    한류라는 개념을 다각도에서 깊이 있게, 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서술한 책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 저자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이 글의 생생함을 배가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