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兆 손실에도… 생산직은 구조조정 無風지대, 사무직만 희망퇴직

입력 2015.09.08 03:06

[강성노조 버티는 대기업 생산직… 사무직은 역차별]

-소수이지만 조직화된 생산직
감원 못하고 호봉제 유지, '고용 세습' 특혜까지… 정치권에서도 손 못대

-사무직은 임금 조정 1순위
현대차도 내년 사무직만 임금피크제 도입 검토
"용접봉 잡았어야" 자조도

대우조선해양은 이달 중으로 부장급 이상 사무·연구직 직원 최대 400명을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 형태로 내보낼 예정이다. 올 2분기 해양 플랜트 부문 등에서 발생한 3조원대 손실 여파로 부장급 이상 1300여명 가운데 약 30%를 한꺼번에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직 7000여명에 대한 구조조정은 검토조차 않고 있다. 노조가 강력 반발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생산직 감원을 추진했다가 자칫 회사가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선박 중개업체 대표는 "요즘 국내 조선소에서는 일감이 없어 시간만 보내는 근로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면서 "지금 제대로 체질 개선을 못하면 우리 조선업이 중국에 완전히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기업별 직원 자녀 우선·특별 채용 규정. 직원 자녀 우선·특별 채용 조항이 있는 기업 현황. 국내 3대 조선업체 구조조정 추진 현황.
국내 주요 대기업이 최근 실적 악화 속에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애초부터 생산직을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기업들이 적잖다. 지난해부터 올 2분기까지 총 8조원대의 누적 손실을 기록한 국내 3대 조선업체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반면, 사무직은 구조조정의 표적이 돼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산직은 구조조정 '무풍지대'

현대중공업은 2012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올해 초에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사무직 1400여명이 회사를 떠났지만, 생산직은 희망퇴직자가 거의 없었다. 지난 2분기 1조5000억원대의 손실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임원 20여명을 내보낸 데 이어,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역시 생산직에 대한 감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대기업들이 생산직 구조조정을 꺼리는 것은 노조의 반발로 회사가 폐업 직전의 위기에 처한 경우를 적지 않게 봤기 때문이다. 수주 감소로 생산직 감원을 추진했다가 2011년 시민단체의 '희망버스' 연쇄 시위에 시달린 한진중공업, 2009년 2000여명 이상을 정리해고하려다 금속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 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이달 4일 부분 파업 후 본사 노조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이달 4일 부분 파업 후 본사 노조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노조는 올해 임협에서 사측이 제시한 기본급 동결안에 반발해 부분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대형 조선업체의 고위 임원은 "가뜩이나 실적도 안 좋은데 파업까지 발생하면 수주가 아예 끊겨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서 "사무직 사이에선 '펜을 잡을 것(사무직)이 아니라 용접봉(생산직)을 잡았어야 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는 소수이지만 정치적으로 조직화가 잘돼 있어 정치권 등에서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직은 임금 체계 개편 1순위

생산직과 달리 사무직은 어느 대기업에서나 구조조정이나 임금 체계 개편의 1순위 대상이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하지만 노조의 반대로 아직 노사 협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18개 노조는 7일 울산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피크제 도입 철회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최고 경영진 퇴진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내년부터 1만5000여명의 사무직을 대상으로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 체계에서도 사무직은 역차별을 받는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임금 체계를 성과급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과장급 이상 사무직에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생산직에 대해선 호봉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삼성·LG·포스코 등 다른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도 사무직은 연봉제, 생산직은 호봉제를 적용하는 이중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도 생산직에게 유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대기업이 단체협상에 임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고용 세습'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주로 생산직 직원들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생산직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가 우리나라의 일자리를 줄이고 다같이 공멸(共滅)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다"면서 "구조조정 문제는 차치해 두고라도 최소한 임금피크제는 생산직 노조가 자신들의 권리를 좀 더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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