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이디스와 하이닉스의 엇갈린 운명

조선비즈
  • 한동희 기자
    입력 2015.08.07 04:00

    지난 3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빌딩 앞.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 2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이 유니폼처럼 입은 조끼에는 "기술과 자본을 유출한 외국 먹튀 자본을 막아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이들은 하이디스라는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올해 초 회사가 갑자기 공장 폐쇄를 결정하는 바람에 대량 해고를 당하게 된 직원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한 직원은 "지난해 회사는 840억원의 흑자를 냈음에도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하이디스는 휴대폰 화면으로 사용되는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제조업체다. 하이디스는 현대전자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로 시작해 2002년 부도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를 분리 매각하는 과정에서 중국 기업 비오이(BOE)그룹에 매각됐다.

    BOE그룹은 인수 직후 기술공유를 명분으로 양사의 전산망을 통합한 다음 기술을 빼내갔다. 이렇게 확보한 기술로 BOE는 2003년 6월 중국에서 LCD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 결과 BOE가 빼내간 하이디스 기술 자료는 4331건에 이른다. BOE는 2007년 대만 ‘이잉크’에 하이디스를 매각했다.

    직원들은 "대만 이잉크도 BOE처럼 하이디스를 인수한 후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핵심 기술만 가져갔다"고 말했다. 2012~2013년 하이디스의 생산설비 투자액은 같은 기간 매출의 0.4%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적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반도체와 더불어 한국 IT(정보기술) 제조업을 이끄는 분야다. 하이디스와 마찬가지로 현대전자에서 분리된 SK하이닉스는 채권단 관리 후 국내기업을 주인으로 맞아 메모리 반도체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회생했다.

    하이디스는 지금도 한해 디스플레이 관련 특허료로 120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이 하이디스를 매각하지 않았다면 지금 쯤 SK하이닉스처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추격이 거센 요즘 하이디스 매각의 아쉬움은 더욱 크다.

    반도체 위탁생산 회사 동부하이텍도 중국에 팔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업이 경영난에 빠지면 서둘러 해외 매각에 매달리는 정부와 채권단은 이제 바꿔야 한다. 하이디스처럼 채권단이 단기 투자금 회수에만 급급해 기업을 해외에 팔아 버린다면, 한국의 제조업은 흔들리고, 제조업이 대량으로 고용한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하이디스 직원들은 "하이디스 정리 해고자들은 대만 이잉크에 고용유지 외에는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일자리 창출을 호소하고 있는 요즘, 하이디스 해고자들의 외침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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