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VIEW] 일본식 對 서구식… 父子 경영觀 차이가 갈등 키워

조선일보
  • 김덕한 기자
    입력 2015.08.01 03:03

    [롯데 계열사 기업 공개 놓고 신격호는 반대, 동빈은 적극적]

    신동빈 "롯데쇼핑 上場" 말 꺼내자… 신격호 "왜 회사를 남한테 팔아"

    -기업 공개 밀어붙인 신동빈
    증시서 확보한 자금으로 공격적 M&A, 기업 확장
    한국엔 상장 계열사 9개, 日 37개 계열사는 '상장 0'

    -'90代 현역' 신격호
    2011년 신동빈 회장 승진때 명예회장 추대 움직임에 화내
    그룹, 총괄회장 직함으로 대체

    "니 꼭 회사를 팔아야 되겠나?"

    2006년 롯데쇼핑을 상장하기 위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관련 보고를 하자 신 총괄회장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일본으로 밀항해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킨 신 총괄회장에겐 투자자를 공모하는 상장은 회사 일부를 매각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더욱이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슈퍼·세븐일레븐 등을 운영하는 대표 계열사다.

    하지만 신 회장은 내켜 하지 않는 아버지를 설득해 상장을 밀어붙였고 685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 돈은 이후 롯데그룹이 공격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밑바탕이 됐다.

    경영 스타일 비교해보니
    신격호·동빈 부자(父子)는 대조적인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보수적인 일본식 경영 스타일인 반면 신 회장은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8년간 근무하며 서구적 경영방식을 익혔다. 이런 차이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의 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아들한테 주식 얘기 하지 마라"

    기업공개를 싫어하는 신 총괄회장의 경영 스타일 때문에 일본 롯데그룹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국에는 상장돼 있는 계열사가 9개 있지만 일본 롯데그룹의 37개(2013년 기준) 계열사 중엔 상장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아무리 큰 기업도 상장하지 않으면 기업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는 일본법 때문에 일본 롯데 계열사들의 주주, 지분 구조는 일본 내 최고급 기업정보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롯데그룹의 고위 임원은 "일본 롯데의 지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총괄회장은 가족 간에도 지분 구조를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시한다"며 "'아이들한테 주식 얘기 하지 마라'고 말한 적이 많다"고 전했다.

    지분 구조를 가까운 가족들과 극소수 관리자들만 알고 있으니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대비한 경영 시스템이 공론(公論)화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 규모 기업의 지분 구조가 베일에 싸여 있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2003년 일본에 가보니 감사보고서조차 쓰지 않고 있더라"면서 "한국 롯데는 고속성장을 하면서 경영시스템을 현대화했지만, 일본 롯데는 전근대적 관행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오른쪽)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집무실로 보이는 장소에서 업무 관련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31일 KBS를 통해 공개됐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오른쪽)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집무실로 보이는 장소에서 업무 관련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31일 KBS를 통해 공개됐다. /KBS
    반면, 신 회장은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은 물론, 백화점·마트 점포를 매각한 후 다시 빌려 영업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 기법 등을 활용해 '한 달에 하나꼴'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활발한 인수합병 작업을 벌였다.

    "롯데는 뭉쳐 있어야 한다"

    "롯데는 함께 뭉쳐 있어야 한다"는 신 총괄회장의 신조(信條)가 형제 간 경영권 분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 상장된 계열사들의 경우,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거의 모든 계열사에서 비슷한 비율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동빈·동주 형제 중 어느 한쪽이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한다고 해도, 계열사들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롯데쇼핑의 경우, 동빈(13.46%), 동주(13.45%)씨의 지분이 거의 비슷하다. 어느 한쪽이 경영권을 잡아도, 다른 쪽이 외부 세력과 손을 잡아 공격에 나서면 언제든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완승(完勝)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롯데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총괄회장은 늘 '롯데는 힘을 합쳐 뭉쳐야 힘도 세지고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서 형제에게 비슷한 지분을 나눠줬다"며 "몇 개 회사를 묶어 분리시키자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개별 계열사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위험을 안고 있다.

    "'명예회장' 절대 안 된다"

    신 총괄회장이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高齡)에 이르기까지 현역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고 직접 경영을 하겠다는 지나친 의지를 보였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현역 욕심'은 남달랐다. 지난 2011년 신동빈 당시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그룹에서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겠다고 했다가 불호령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명예' 자가 붙으면 현역 은퇴를 뜻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룹에서는 오전 보도자료를 내면서 "두 분 다 회장"이라고 했다가 오후에 '총괄회장'이라는 말을 가까스로 찾아내 정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계열사 CEO들의 보고를 직접 받고 있다. 계열사 CEO들은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에게 두 번 보고해야 하는 것을 두고 "늘 시험을 두 번 치러야 한다"고 한탄했다.

    이 밖에도 신 총괄회장의 보수적 성향이 돋보이는 일화가 많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에게 조그만 계열사 하나 떼 주지 않은 것에서 보듯 신 회장은 남성중심적 성향을 지녔다. 신 이사장의 차녀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가 하버드대학에 합격하자 "여식아가(딸애가) 뭔 하버드고…"라고 했다고 한다. 반면, 신 회장은 여성 인재를 양성하자며 올 상반기 채용에서 40%를 여성으로 뽑으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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