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북] 2900원짜리 '도끼'가 탄생하기까지

조선비즈
  • 전병근 기자
    입력 2015.08.01 08:00 | 수정 2015.08.01 14:05

    신생 격월간 문예서평 잡지 Axt의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소설가 천명관 /촬영 백다흠, 은행나무 제공
    “한국문학은 대체로 자의식 과잉이다. 90년대 이후 줄곧 그래왔던 것 같다. 작가 자신의 내면적 자아가 투영되고 스토리 대신 작가의 직접적인 생각이 아포리즘으로 포장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것은 뭔가 특별한 예술가적 자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초라하고 누추하니까. 작가들은 언제나 그런 초월에의 욕구가 있다. 하지만 작품 안에서 작가의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흥미를 잃는다.

    작가의 내면적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 문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에겐 그것이 여전히 불편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에세이나 칼럼을 안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필자의 생각과 의견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니까. 그래서인지 소위, 본격문학이라는 걸 하는 데 점점 더 회의를 느낀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결국 나의 소설은 장르로 가지 않을까 싶다.”

    새로 나온 잡지에 실린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작가 천명관. 책 표지에 담배를 꼬나문 채 ‘뭘 봐’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의 흑백 사진이 시선을 잡는다. 인터뷰는 꽤 길다. 대화를 이끌며 물음을 던진 이는 이 잡지 편집위원 3인 중 한 명인 후배 소설가 정용준. 그는 천 작가를 불러낸 경위를 문답 중에다 이렇게 방백 투로 써놨다.

    “순수냐 참여냐. 순문학이냐 장르문학이냐. 이제는 그런 식의 구분은 낡고 촌스러운 것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선은 기이하고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이상하고 불분명한 기준이지만 실제로 굉장히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학의 수준과 깊이와 재미와 의미의 차이에 관한 담론을 이끌어내고 평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좋은 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내 나름의 단순하고 확고한 입장이 있다. 좋은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매력적인(재미있는) 소설이다. 이런 문제를 비판적 시각에서 공론화시켜볼 때 가장 뜨겁게 오르내릴 수 있는 작가는 천명관일 것이다. 그는 ‘그 기준’을 놓고 볼 때 분명 경계에 서 있는 작가다.”

    그 다음 단락부터 이 ‘경계에 선’ 작가의 생각이 활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Axt 인터뷰 기사에 함께 실린 천명관 사진 /백다흠
    “문단의 작가들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시선이냐 하면 바로 선생님들의 시선이다.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동안 선생님들의 엄한 눈이 등 뒤에서 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거다. 출발부터 그렇다. 대학을 다니며 교수들의 지도 편달과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등단을 할 때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심사, 청탁을 받을 때도 편집위원 선생님들의 평가, 문학상 후보에 오를 때 또 심사위원의 평가, 하다못해 문예창작과 곤련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누군가의 심사를 받는다. 그러니까 문단생활을 한다는 건 내내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문학은 종교처럼 숭고한 태도와 정신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밥벌이는 천한 일이고 예술은 숭고하다는 식의. 이런 분위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학상 제도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대부분 단편에 주는 상인데 상은 여러 개이지만 문학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획일화되어 있다. 심사위원이 모두 같은 선생님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 헨리 문학상만 있고 브람 스토커 문학상은 없는 셈이다.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보단 단편이, 스토리보단 문장이, 서사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

    “한국사회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문단조차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문단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문단마피아라고 부른다.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다들 펄쩍 뛰며 노발대발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

    소설가 정용준과 천명관 /백다흠
    “우선 작가들이 먹고살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들이 먼저 숟가락을 거둬가야 한다. 편집위원이니 심사위원이니 하며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왜 선생님들의 지도편달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능하고 영민한 편집자가 필요할 뿐이다.

    거슬러 올라가 선생님들이 문단을 점령한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다.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뭔가 권위가 필요했고 그것을 대학에서 빌려왔는데 결과적으로 주객이 전도되었다. 지식인에 의해 예술이 점령당한 꼴이다. 다른 예술 분야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문학은 문학주의의 성채에 가둘 수 없는 역동성이 있다. 지금도 독자들은 재밌는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보라, 영화판은 대학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단도 당연히 작가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등단제도니 청탁제도니 문학상이니 다 때려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평가는 당연히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용의주도하게 문답을 끌고 가던 정용준도 이즈음에선 짐짓 불안한 듯 다짐을 받아 둔다. “오늘 이야기한 것 다 써도 되나?”

    역시나, 상대는 논스톱이다. “물론이다. 쓰라고 한 얘기이니까. 하지만 이런 소리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결국 아무것도 안 바뀔 테고 선생님들은 만수무강하실 테고, 나는 기껏해야 또 적이나 잔뜩 만들었겠지. 쩝.”

    이 화끈한 인터뷰 하나만으로도 이 신생 잡지는 창간호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름은 Axt(악스트). 책 제호 바로 밑에 ‘Art & Text’라고 해놓은 것을 보면 ‘예술과 텍스트’를 조합한 단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독일어로는 Axt가 한 단어다. ‘도끼’라는 뜻. 잡지 뒷표지에 보란 듯, 출처를 선언문처럼 박아놨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독일어 원문과 함께.

    천재작가 카프카가 21세이던 해 1904년 1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예술사가였던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글에 등장해 이제는 나름 유명해진 구절이다.

    여러 면에서 실험적인 이 잡지는 첫 호 발간 1주 만에 1쇄 5000부가 매진된 데 이어, 2주 만에 1만부를 향해 질주 중이다. 중견 출판사인 은행나무가 수익과 무관하게 한번 내보기로 했다는 소설 서평 전문 잡지다. 그런 것 치고는 주목할 만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물론 흡인력 강한 작가의 색깔 있는 인터뷰를 앞세운 단단한 콘텐츠와 더불어, 2800원이라는 파격의 가격이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의 문학 잡지의 홀연한 등장에 무언의 지지를 보낸 이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잡지 창간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일찌감치 제작진과 인터뷰를 했다. 출간 전에 편집장인 백다흠씨를 만나 준비 과정을 들었고, 책이 나온 직후에는 편집위원 3명(백다흠의 친형이자 소설가인 백가흠, 같은 소설가인 배수아, 정용준)과도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으며, 끝으로 이메일로 추가 답변을 들었다. 차례로 소개한다.

    색다른 문예 잡지가 탄생하기까지 도모한 사람들의 생각과 염려와 기대를 읽을 수 있다. 굳이 주목하는 것은, 이 시대 소설은 물론 문학, 좀 더 확대하자면 지식 콘텐츠 생산자들이 지금 어떤 고민을 하는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백다흠 편집장과의 인터뷰. 창간호 출간 전에 이뤄졌다.>

    그는 대학 학부 때는 소설을, 대학원에서는 사진을 공부했다. 작가들 인물 사진을 잘 찍는 걸로 정평이 나있다. 이번 Axt 창간호의 사진 작업도 도맡았다. 편집자 경력은 10년쯤 된다. 이전 직장인 문학동네에 있으면서 계간지 편집장도 1년 반 했다. 은행나무로 온 지는 1년 반이 넘었다고 한다.

    Axt 편집장 백다흠. 사진도 맡았다.
    -이런 잡지를 내게 된 경위랄까 배경을 듣고 싶다.

    1년도 더 전에 사장님(주은선 은행나무 대표)이 일본에서 가져온 거라며 잡지를 보여줬다. 겐토샤(幻冬舍)에서 내는 ‘Pontoon’이라는 아주 얇은 무가지인데 거기에 장편소설만 연재하고 있었다. 원고 매수도 편당 30-40매 정도에 모두 11편을 실었다. 처음엔 신기했다.

    일본 출판 시스템은 우리와 달라서 소설가들 작품도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잡지도 문학적 이슈나 문단의 필요에 의해 나오는 게 아니라 출판사가 원고를 수급하고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방편으로 활용한다.

    처음엔 사장님도 이런 걸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나는 별 승산이 없다고 봤다. 오히려 외부에서 말만 많아질 것 같았다.

    -말이 많아진다니?

    너무 출판사의 상술이 보이는 기획 같았다. 장편 열 몇 편만 연재하는 잡지를 내는 것 자체가 그런 이미지를 줄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백가흠(친형)씨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던 중에, 소설가들이 편집위원이 되어서 소설에 관련된 잡지를 한번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작품이 실리거나 소설에 관련된 글이나 그 무엇이 실리는 잡다한 잡지를 구상했다. 그걸 세분화시켜 단순히 두세 개 코드로 기획을 해보자고 해서, 사장님께 의견을 냈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일본의 그 무가지는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발행하고 있는 건가?

    출판사 입장에서는 장편 원고를 수급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연재 지면을 주는 셈이다. 지금 국내 문학 계간지들도 연재 란이 있지 않나. 이게 출판사에 원고를 쓰게 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일본 폰툰은 그걸 극대화한 셈이다. 판형도 작고, 인쇄비만 들어가니까 비용도 높지 않고 몇 천 부만 찍어서 뿌리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리 출판 현실과는 안 맞을 것 같았다. 문인들한테도 슬쩍 떠보니 대부분 반응이 안 좋았다. 왜냐하면 국내 소설가들은 문단이 갖고 있는 어떤 헤게모니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안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식 소설 무가지는 굉장히 이질적인 변종이기 때문에 작가들이 선뜻 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안전한 창비나 문학과지성이나 민음사 같은 곳에서 만든 안전한 문예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연재하기를 바라지, 그렇게 새롭게 출현하는 헤게모니의 변종에 쉽게 따라오지 않을 거라고 봤다.

    -출판사의 영향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긴가?

    그런 것도 섞여 있다.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은행나무 나름의 좋은 이점도 있다. 변종을 시도해 볼 수 있고 새로운 것을 해볼 위치에 있다. 역설적으로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에서 우리보고 ‘문학 출판사의 후발주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썩 맞는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기획 의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에 있으니까 악스트를 이렇게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문학계에서도 그동안 조금은 다른 어젠더를 품거나 바라온 사람이 조금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존 문학 계간지들. 왼쪽부터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자음과 모음, 세계의 문학
    -잡지의 성격이나 방향은 어떻게 결정이 됐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사장님은 발행인으로서, 편집위원들은 위원들대로 각각의 생각이 있었다. 사장님의 조건은 기존 문학잡지가 가진 무거움을 많이 덜어낼 것, 감각적으로 가벼워지든지 문학성에서 아주 날렵해지든지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편집위원들은 아카데믹한 국문학의 이슈를 뺀 순수 소설 관련 콘텐츠만으로 된 잡지를 원했다. 나는 텍스트가 전부가 아닌, 약간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요소도 들어 있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것들로 소설을 리뷰하는 방법이 있었다.

    사실 국내에는 리뷰 잡지가 활성화 돼 있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에서는 서평 잡지가 활발한데. 거기도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필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어차피 소설가들로 꾸려졌고 소설을 말하려고 만드는 잡지이기 때문에 결국엔 소설 리뷰에 조금 비중을 두자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아카데믹한 국문학적인 이슈는 기존의 문예지들이 너무나 잘 구현해 내고 활발히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가자는 쪽으로 윤곽이 잡혔다. 그러고 준비를 한 게 1년 반쯤 된다. 그동안 여러 기획안이 일어났다가 엎어지곤 했다.

    -지금 와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우리 잡지에 새로 실을 소설을 청탁할 때는 다른 문예지에서 나오는 것과 달랐으면 했는데 받고 보니 비슷했다. 결국 작가들은 원고 청탁을 받으면 실리는 잡지에 맞춰 작품을 구상한다기보다는 그냥 시기적으로 맞으니까 여기 주고 저기 주고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개성을 부여해주기를 바랐는데 거기에 맞게 작품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 같다.

    -잡지 성격을 어떻게 설정하고 청탁을 했길래?

    사실 그게 말하기도 참 애매하다. 그냥 우리는 신생 잡지라는 점을 이야기한 건데.

    -실험적인 것을 요구했나?

    아니다. 실험적이란 말을 쓰면 안된다. 그럴 경우엔 모든 작품이 다 실험적인 것만 나올 수 있으니까. 그냥 좀 더 재미있게, 그 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봐도 좋습니다, 이런 정도였다. 알아서 생각해주기를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큰 변별 같은 게 안 보인다. 이건 앞으로 편집위원들과 이야기하면서 작가군을 적절히 안배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의식했든 아니든, 기존 문예지들이 다루지 못했던 틈새를 겨냥한 것 같다. 기존의 창비나 문학동네 것은 어떻다고 보나?

    기존 문학 계간지들은 어떤 규정된 틀이 있다. 그러니까 어떤 문학적인 이슈들이나 화제, 국문학적인 시각과 문학 비평의 관점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화제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창비가 60년대부터 문학잡지를 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문학 계간지의 기본 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뒤이어 문학과지성사가 70년대 중반부터 나왔고, 그다음 문학과 사회가 약간 바꿔서 나왔다. 그리고 문학동네가 약간 후발주자로 들어와 있고. 자음과 모음도 들어와 있다. 그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본 구성도, 담론을 생산하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도 사실은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평론가들은 많다.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해서 문학 공부를 오래 해온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중에서 서로 맞는 사람 몇 명이 모여 약간의 공통 화제를 만들고 하면 계간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이미 너무나도 잘해오신 분들이 있다. 우리는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그냥 소설가들이 모여서 우리가 재미있게 마음대로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해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작가 세 명이 모인 것이다.

    -첫 호는 어떻게 짜였나?

    신작 소설을 장편과 단편 각 3편씩 실었다. 그리고 소설 서평이 국내외 합쳐서 16편이다. 서평 필자들로는 소설가와 시인, 번역가들이 참여했다. 외국 소설 서평의 경우 번역자에게 맡겼다. 또 화가가 소설 작품을 그림으로 평하는 그림 리뷰 코너도. 젊은 소설가들의 일기, 패션에디터이자 시인인 이우성의 ‘세상의 모든 리뷰’도 색다른 시도다.

    -해외 서평을 번역자에게 맡긴 이유는? 역자 후기 같을 수도 있을 텐데.

    독자에게 자신이 옮긴 책을 소개도 할 겸 맡겨봤다. 글 나온 걸 보면 역자 후기와는 다르다. 각각 스타일도 다르다.

    -평론가는 다 배제됐네? 원칙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다음호 원고로는 한두 명 청탁해 뒀다. 이번호에는 한 명이다.

    -가격을 2900원으로 매긴 이유는?

    유통과 관련된 건데, 서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격을 매겨야 했다. 무가지는 서점에 못 들어가니까.

    -하필 왜 2900원인가?

    그 문제는 내 소관이 아니어서 모르겠다. 나도 처음엔 2900원이나 3900이나 4900이나 차이가 뭔지 궁금했다. 아마 사장님은 3000원이 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난 무가지로 가고 싶었다.

    장편 소설을 열두 편만 연재하는 것에는 반대지만 지금 형태로 가는 잡지라면 무가지에도 찬성이었다. 콘텐츠가 살아있으니까. 동시대적이고 읽을거리가 있고 많은 소설가들을 불러내고 있으니까 피드백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은행나무 출판사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글쎄.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게 주된 고려 사항은 아니다.

    -무가지일 경우에는, 요즘 콘텐츠 무료화나 저가 공세가 초래하는 폐단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을 텐데.

    사실 작가들은 웬만한 소설가들 빼고는 대부분 무명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그런 사정에서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들을 좀 널리 퍼뜨려주고 싶은 거다. 독자들이 책을 보는 데에 있어서 가격이 걸림돌이 된다면 이 걸림돌을 없애면 좋지 않을까 하는 거다. 심심할 때마다 그냥 보고 버려도 좋다. 그런 식으로라도 접점과 반경을 늘리는 거다.

    -콘텐츠 생산자에게도 보수를 줘야 하지 않나? 출판사는 그 비용을 마련해야 할 텐데. 자선 사업도 아닌 다음에야.

    거기에 모이는 원고를 가지고 단행본으로 내는 방법도 있고. 그런 문제는 사장님 복안이 있겠지.(웃음) 광고를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고. (악스트 창간호는 광고를 하나도 싣지 않았다. 심지어 출판사나 책 광고도.) 나는 원론적으로 답할 뿐이다. 소설이 많이 안 읽히는 상황에서, 소설가들이 모여 좀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거다.

    -소설 독자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라면 이해가 간다. 소설이 많이 안 읽히는 상황에서 잠재 독자층을 발굴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을 들일 만하니까.

    그렇다. 우선은 소설을 읽는 독자를 유지하고 키우는 게 문학 출판계의 관건이 아닌가 싶다.

    -우려되는 점은 콘텐츠 제작자는 심화학습으로 가기를 바라는데, 대중은 공짜나 싼값으로 편하게 맛보기 단계에만 머물러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잡지를 봤다고 해서 소설 독자로 많이 건너 가지는 않을 거다. 잡지가 성공하면 좋겠지. 하지만 설사 실패하더라도 이것대로 정당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 나는 다른 계간지 제작에도 관여했었는데 볼 때마다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의 물성이나 시각적 비주얼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기존의 것들은 너무 무겁고 글이 많다는 생각이다. 그 글들이 다들 쓸데없지도 않다. 굉장히 좋은 글들이 많이 실려있는 거다. 그걸 읽으면 문학적인 접점의 날을 성숙시켜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잡지가 좀더 대중친화적이었으면 했다. 어떤 저항감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악스트의 독자가 거기에 실린 작품 다 안 봐도 좋다는 생각이다. 몇 개만 소화하고 쉽게 버려졌으면 좋겠다. 물론 서가에도 꽂히면 바랄 게 없겠지만. 평소 문학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보다가 좀더 정보를 얻고, ‘어라 이런 사람도 있네’ 하는 정도만 돼도 내가 지향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 아닌가 싶다.

    -요즘 전반적으로 책 소비가 줄고 있다고 한다. 소설은 어느 정도인가?

    더 많이 안 좋다. 국내 소설에 대해서는 이상한 선입견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국내 한 신문에서 편집장들 상대로 설문조사한 게 있었다. 거기에 “왜 해외 소설은 팔리는데 국내 소설은 안 필린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이 있었다.

    답은 쉽게 나온다. 해외 소설이 재미있으니까. 왜냐? 요소들이 이질적이고, 흔히 상상하지 못했던 서사를 많이 시도하고, 낯선 것이 주는 약간의 아우라도 있으니까. 그 반대로 생각하면 국내 문학이 안 팔리는 데 대한 답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국내 문학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데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문학이라고 하면 어떤 저항감이 있다. 그 저항감이란 게 약간 아카데믹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그 아카데믹한 느낌이야말로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다. 그걸 깨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도외시하고, 그런 이상한 헤게모니 같은 게 있다.

    -독서 시장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그걸 혼자서 깰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조금 진입 장벽을 낮추고 조금 더 감각적으로 예리하고, 무겁지 않은 잡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물론 콘텐츠는 어려울 수도 있다. 쉽고 재미있게 써달라고는 얘기하지만, 필자들이 글을 쉽게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격월이면 다음호도 이미 기획 단계이겠네?

    그렇다. 다 청탁했다. 일단 5호까지 기획은 어느 정도 마쳤다. 단편과 장편도 1년치가 준비돼 있다. 서평은 신작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서평용 책 선정은 기준이 있나?

    특별한 제한은 없다. 이번 창간호에도 1970년대 작품인 박상륭의 ‘잡설품’ 리뷰가 포함됐다. 자유롭다. 책을 낸 출판사도 상관하지 않는다.

    <다음은 편집위원들과의 방담. 창간호가 나온 직후 편집 회의를 한다기에 찾아가서 잠시 이야기를 들었다. 백다흠 편집장과 편집위원인 백가흠, 배수아, 정용준.>

    -세 사람이 다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잡지에 대한 생각이나 기대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백다흠: 사실 우리들이 다같이 잡지 발간 취지에 대해 합의를 먼저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마 세 사람 다 잡지나 문학에 대한 생각은 다를 것이다. 창간호에 세 사람의 개성이 다 드러난 것도 아니다.

    배수아: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일이 커진 것 같다.(웃음)

    소설가 백가흠
    백가흠: 잡지가 나오고 난 뒤에 일어난 오해랄까, 바로잡고 싶은 게 있다. 우리는 기존 문학에 대한 저항이라든가 그전에 있던 문학잡지에 대한 경쟁 차원에서 이걸 낸 게 아니다. 이전 문예잡지들은 그것대로 효용성이 있다.

    우리는 좀 더 친숙하고 쉽고, 좀 더 확대하면 좀더 즐길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취지로 모인 것이다. 편집위원에 비평가가 없는 것도 우리가 비평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기왕에 비평하는 잡지들은 많이 있고, 우리는 지향하는 초점이 그것과 다르다 보니 작가 셋이 모인 거다.

    좋은 소설이라는 책을 대중에게 보다 쉽고 재밌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걸 1년 내면 120권 정도, 2년 하면 240권에 대한 리뷰가 쌓인다. 이런 양서들이 사람들에게 잘 읽히고 팔렸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다. 그렇다고 소설 리뷰만 실을 수는 없으니까 소설 신작도 좀 넣고, 볼거리도 좀 있었으면 하는 아이디어를 모은 정도다.

    정용준: 다른 분들과 비슷한 생각인데, 뭔가 사전에 합의를 해서 합류한 거라기보다 먼저 제안이 들어왔고, 내 경우에는 잡지에 대한 기대감이랄까 사적인 마음이 든 것은 제목이 정해진 후부터였다.

    배수아 선배가 ‘악스트’라고 정하면서 그때부터 그것에 대한 정서적 합의 때문에 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다른 선배들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서로서로 기대가 없었다기보다는 애매했기 때문에. 분명히 각자 생각은 있었을 텐데.

    내가 기대했던 것은 문예지가 아니라 잡지라는 점이다. 카페 같은 곳에 예쁘게 비치돼 있어서, 누가 나한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이런 데 글도 싣고 여기에 내 글이 있다는 걸 바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잡지를 상상했다.

    소설가 정용준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볍거나 잡스러운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소설적으로 다룰 수 있는 풍성한 내용의, 예쁘고 우아한 잡지를 꿈꿨다. 비평 담론에 대한 반발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소설가들이기 때문에 비평언어와는 또 다른 좋은 언어들로 소설을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 점에서는 우리 잡지가 많이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악스트가 출간되고 난 뒤 갑자기 사람들이 여기에 대한 기대를 펼치고 나서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있다.

    -시기적으로 묘하게,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발언(맨 앞에 인용된 천 작가의 인터뷰 속 말들)이 부각되면서 처음 의도와 상관없이 ‘악스트’의 성격이 규정된 감이 있다.

    백가흠: 우리 잡지에는 비평이나 시론 같은 것도 없다. 그나마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작가 인터뷰 커버스토리와 맨뒤에 아주 짧게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후기가 전부다. 우리가 어떤 입장이나 담론을 표방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작가의 인터뷰 속 말로 문학이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할 수는 있는 것이다. 이 작가의 말이 비평이나 시론을 대신할 수는 있다고 본다. 천 작가는 평소 생각을 이야기한 거다. 시기가 미묘하게 겹쳤을 뿐이다.

    -천명관 작가를 창간호 커버에 올린 것은 대중에게 가까이 가려는 의도와 맞는 것 같다. 어떤 생각에서였나?

    정용준: 인터뷰에도 실었는데, 나는 그가 경계에 서있는 작가라고 썼다. 경계라는 것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는데, 설명할 수 없는 경계라는 게 있지 않나. 아카데믹과 그렇지 아닌 것 사이, 혹은 순수와 장르 문학의 사이.

    하지만 독자들은 그냥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나. 결국 그것을 허물거나 그것의 무의미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천 작가는 구분을 넘어서는 것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문학에서도 충분히 주목하고 있으니까.

    -문답 내용이 공교롭게도 마치 지금 표절 파문이나 문단 권력 논란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적중했고 구체적이었다. 그만큼 문단에서는 누적돼온 문제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백가흠: 그래서 굉장히 부담스럽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런 논의도 필요하다고 해서 한 건데, 본의 아니게 그런 사건들이 터지고 창간호의 천 작가 발언 내용이 겹치니까. 마치 우리(잡지)가 앞으로 무슨 큰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 같은 형국이 됐다.

    정용준: 마치 이때다 하고 발표한 것처럼 돼버렸다.

    소설가 배수아
    배수아: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시류에 편승한 것 같은 모양이 돼버린 듯한 인상을 주니까. 본인(천명관)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지나친 자의식 아닌가?

    배수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면, 우리가 마치 천 작가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어서 그런 이야기를 끌어낸 것 같은 인상을 준 모양이다.

    백가흠: 이번에 천 작가를 인터뷰에 올린 것도 그 자체가 ‘비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새로운 권력을 탐내는 권력자라는 얘기다.(웃음)

    -막상 창간호가 발행돼 나온 후의 소감은?

    정용준: 내 욕심은 대중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무작정 그쪽으로 다가간다기보다 좀더 독서를 많이 하는 다른 독서가의 독법을 대중이 체험함으로써 독서의 폭이 넓어졌으면 한다.

    백가흠: 소설보다는 리뷰에 더 방점이 있다. 사실 국내에 변변한 서평지가 없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 선택 폭도 줄어들었다. 그걸 넓혀보려는 것이다. 이 잡지가 좋아지려면 리뷰가 가진 힘을 믿어야 하고 비중을 더 늘렸으면 한다.

    배수아: 감각적인 것과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을 강조한다고 해서 콸러티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가져가야 한다.

    <이메일 문답: 방담 때만 해도 편집위원들은 ‘문단 권력’ 논란의 여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말을 아꼈다. 결국 이메일로 보충 의견을 듣기로 하고 헤어진 후 나중에 이메일 질문을 보냈다. 아래와 같이 편집위원 공동 명의의 답을 보내왔다.>

    -잡지의 정체성은 정리가 됐나?

    소설가들을 위한, 소설 독자를 위한, 소설을 위한 잡지.

    -앞으로 방향은?

    기본 문예지와 차별을 내세운 만큼 감각 있고 균형 잡힌 문학잡지를 지향한다. 나아가 독자와 소설가들을 잇는 가교 역할도 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을 느낀다.

    -구체적으로 염두에 둔 독자는?

    기존 문학 독자와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대중 독자.

    -창간호에 대한 자평은?

    약 70% 정도는 의도했던 대로 모양을 갖춰 나왔다고 생각한다. 관건은 나머지 30%인데, 앞으로 나올 호에서 최대한 보완해갈 생각이다.

    -어떤 부분을 보완할 생각인가?

    악스트는 완료형이 아닌 현재수정진행형이다. 앞으로 좀더 감각 있는 시각적인 오브제를 확보하고, 악스트에서만 읽을 수 있는 차별화된 텍스트, 친대중적인 기획, 새로운 소설가의 작품과 서평을 통한 묻힌 소설의 재발견 등이 우리가 할 일이 될 것이다.

    -현재 판매 현황은?

    1쇄 5천부가 1주일 만에 다 나갔다. 현재 2쇄 5000부를 찍고 1만부를 향해 가고 있다. 정기구독자도 500명 정도 된다. 창간 이벤트로 나간 물량을 감안하더라도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원래 수익을 목적으로 찍은 것은 아니지만 반응이 생각보다 좋다.

    -예상 밖의 좋은 성적은 어떻게 해석하나?

    창간 전부터 기존 문예지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기대 섞인 입소문이 났고, 잡지가 나온 후에 받아본 독자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된 것이 다시 입소문을 탄 것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디자인이나 구성이 이전 문예지들과는 달랐던 점이 수용된 것 같다.

    -2호 준비는?

    창간호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했고, 많이 취합했다. 당장에는 어렵겠지만 차근차근히 반영해 수정해 나가려고 한다. 좀더 쉬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있었고, 편집도 좀더 신경쓰려고 한다.

    악스트 창간호의 마지막 페이지 편집자 후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우리는 우리이기 위해 도끼를 들었습니다. 조금 덜 지루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책 읽는 것 좋아하고 글 쓰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책의 운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도끼가 가장 먼저 쪼갤 것은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입니다. ‘Axt’는 지리멸렬을 권위로 삼은 상상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는 매혹당하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나눌 수 있는 쾌락을 나누고 싶습니다.

    (중략)

    이제 도끼를 들고 춤을 추어도 좋겠습니다.
    생각을 깨는 도끼,
    얼어붙은 감정의 바다를 깨는 도끼,
    ‘Axt’를 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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