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북] 알고 보면 재미있는 현대 미술

입력 2015.07.25 08:01 | 수정 2015.07.27 08:52

“예술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주제라는 점에서 일종의 게임과도 같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상도 기본적인 규칙과 규정을 알고 나면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다.”(윌 곰퍼츠)

사방이 먹자판 같다. 두 명 이상 모이면 주된 화제가 맛집 이야기고, TV에서도 ‘먹방(먹는 것 방송)’에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일색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예술 문화에 대한 취향도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미술에 대한 관심이다. 전시회가 다양해지고 많아진 데다 찾는 사람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주말이면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듯 시내 미술관을 찾곤 한다.

다만 여기에 걸림돌이 하나 있다. 미술 작품 감상은 맛집 탐방이나 먹방 시청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 특히 현대 미술로 올수록 그렇다. 보기만 해도 얼추 이해가 되는 이전의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을 왜 저렇게 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모르고 보자니 답답하고 아는 체하는 것도 고역이다.

이런 부담을 얼마간 덜어줄 만한 책이 국내에 번역돼 나와 있다. 윌 곰퍼츠의 ‘발칙한 현대미술사’(알에이치코리아). 원 제목은 ‘What Are You Looking At?’이다. 책 첫 장을 펼치면 지하철 노선도 같은 게 나온다. 모던아트의 계보를 다윈의 진화 계통수처럼 그려 놓은 지도다.

1870년대 인상주의부터 시작해서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팝아트, 개념주의, 행위예술, 미니멀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거쳐 동시대 예술(contemporary art)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복잡다단한 지형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런던 교통청 허가를 받고 시내 지하철 노선도를 참조해서 그렸다고 써놨다.

저자는 책을 쓴 취지를 앞에다 뚜렷이 밝혔다. “150년에 걸친 현대 미술의 역사 속에, 기본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모든 것을 담았다... 이 책을 읽고 현대미술관에 가게 된다면, 전보다 덜 겁먹고 더 흥미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빈말 같지가 않다. 현대 미술 작품 전시로 유명한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디렉터를 거쳐 현재 BBC 아트 에디터로 있는 영국인이다. BBC 본관 사무실로 찾아가 현대 미술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 미술사를 포괄한 책인데 내용이 알차면서도 재미있더군요.

되도록이면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쓰려고 애썼습니다. 예술사에 관한 학술서들은 이미 좋은 게 많이 나와있습니다. 곰브리치가 쓴 고전 ‘서양미술사’ 같은 책이 대표적이지요.

저는 그런 정통 학술서들과는 달리 제가 예술 현장에서 경험하면서 얻은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책들도 참고를 했고, 어떤 대목은 제 상상을 더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했습니다.

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나면 대단히 멋집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현대미술관에 가게 됐을 때는, 전보다는 겁을 덜 먹고 흥미를 더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잡한 미술 사조와 예술가들의 개인사들을 뜨개질하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가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첫 책이라구요.

책을 쓴 것은 처음입니다. 벌써 20개국어로 번역됐다는 게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첫 출간은 2013년 9월이었다.) 각 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책마다 제목도 표지도 달라지고 하는 게 제 눈에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럼으로써 저도 그 나라의 문화에 참여해서 일부가 되는 셈이니까요. 생각만 해도 아주 신나는 일입니다.

책은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어요. 제 생각이나 주관적인 의견보다는 예술계의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들을 소개하고 독자들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원래 미술을 전공했나요?

(빙그레 웃으며) 아니요. 저는 열여섯 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그 뒤로 정규 교육 과정은 거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문제아(naughty)’였지요.(웃음) 학교는 좋아했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는 너무너무 재미없었어요. 저랑 안 맞았어요. 그래서 일찍 학교를 떠난 거지요.

그 후에는 자잘한 문화 예술 관련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직접 회사를 차렸어요. 시각예술에 특화된 온/오프라인 출판사(publisher)인 shots.net을 차려서 운영했어요. 잡지, 단편 광고, 동영상 같은 것을 제작했는데 꽤 잘 됐어요. 70개국에 진출했지요.

그 다음에 테이트 갤러리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게 2002년이니까, 제 나이 서른일곱 살일 때였어요. 16세에 학교를 나와서 차린 회사 치고는 20년 사이에 꽤나 성공한 거지요.

-그림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정규 과정으로 미술을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구요. 그냥 제가 미술 작품 보고 책도 보고 공부하고 글을 썼어요. 일종의 독학으로 큐레이터가 된 거지요. (그의 미술사 이야기가 왜 문외한에게 쉽게 이해가 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디렉터로 오래 일했더군요.

테이트에서는 미디어 담당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테이트는 관장(the director) 밑에 7명의 디렉터들(directors)이 함께 미술관을 운영합니다. 운영위원 중 한 명이었지요. 공공프로그램, 출판, 웹사이트 전략 같은 것을 담당했습니다. 제 역할은 예술가들의 아이디어와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죠. 주제를 골라서 알기 쉽게 해석해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런던 템즈강변의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테이트 모던 갤러리 입구 전경
7년 동안 테이트 갤러리에서 일하면서 세계 곳곳의 멋진 미술관, 컬렉션들을 둘러봤습니다. 예술가들 저택도 가보고 부호들 소장품도 감상할 수 있었지요. 엄청난 액수를 불러대는 미술 경매를 지켜보기도 했지요.

그러다 2009년 BBC 아트 에디터로 오게 됐어요. 지금은 예술 담당 선임 에디터입니다. 온라인 기사나 리뷰도 쓰고 방송 리포트도 하고 신문에 기고도 합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해서 내게 됐지요?

일간지 가디언을 위한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흔히 예술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한 글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술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는 이유에 대해 썼죠.

그러다 2009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도 했어요.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으로 현대미술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내용이었어요. 누가 저보고 코미디 쇼 무대에 나가서 사람들 알기 쉽게 미술사 강의를 해 보면 어때, 하고 제의했었죠. 저는 코미디가 진실을 즐겁게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 반응도 좋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저보고 ‘왜 예술에 관한 책을 직접 쓰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때 쓴 것에다 예술가들 일화도 더 넣고 해서 보다 자유로운 문체로 써봤습니다.

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관람객들의 생각이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직위를 떠나 비공식적으로 자유롭게 생각을 전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막상 책으로 내기까지는 2년이 걸렸어요. 원고를 볼 때마다 더하고 더하고 덧붙일 게 생겨서 그렇게 됐어요. 읽기 쉽게 쓰려고 애썼습니다. 많은 정보를 담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흐름을 갖고 쉽게 읽히게 하려니까 어렵더군요.

영화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런 말을 했지요. 자료 조사를 열심히 많이 하고 나면 그걸 다 영화에 넣으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 가면 잘못이다. 조사 후에 오히려 덜어내고 일관성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공을 더 많이 들여야 한다구요.

-현대 미술(modern art)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모던 아트’라면 시점을 언제로 잡나요?

1850년쯤에 시작됐다고 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활동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평가 샤를 보들레르가 예술가와 근대적 삶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

‘현대적 삶 속의 화가’라는 에세이였는데, 보들레르는 이 글에서 그때부터 예술가들이 고전 그림이나 옛날 것들을 보기를 중단하고 자기 주변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선언했지요.

그때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던 시기예요. 예술가들은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우리가 하는 예술은 저런 사진과 뭐가 다를 수 있나? 자문하기 시작했지요. 그 고민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책의 첫 장을 마르셀 뒤샹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을 뒤샹 이야기로 끝냈더군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뒤샹은 예술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재정의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지요. 예술의 해방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단지 회화뿐만 아니라 돌이든 뭐든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지요. 거대한 진전이었어요. 그로 인해 예술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예술을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후로 관객들은 현대 예술 작품을 두고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써야만 하게 됐지요.

마르셀 뒤샹 ‘샘(Fountain)’ 1917년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그런 점에서 뒤샹은 사실상 관객들에게 혼동을 안겨준 사람이었지요. 그것 때문에 예술 작품 앞에서 오히려 위축이 되게 됐지요. 작품을 보고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게 된 겁니다.

가령 이전의 예술 작품을 보면 풍경이든 인물이든 그림을 보고 누구라도 이해를 할 수가 있었어요. 별 어려움이 없어요.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예술 작품이 어떤 예술가의 생각이나 관념을 담은 것이 되면서 우리로서는 훨씬 이해하기가 어렵고 복잡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전문가)으로서는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해졌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뒤샹은 예술의 규칙(rule)을 바꾼 예술가이고, 가장 중시해야 할 화가입니다.

하지만 보다 선구적인 의미에서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는 세잔이라고 생각해요.

-왜지요?

폴 세잔(1839~1906)
현대미술은 1865년 세잔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잔은 처음으로 두 눈을 써서 그림을 그린 화가”라고 데이비드 호크니(1937~. 영국 화가)가 말했지요.

카메라는 하나의 렌즈로 모든 것을 담지만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짜라는 거지요. 그는 “우리는 인간이다.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했어요. 그전과 다른 관점에서 본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세잔은 예술품을 마치 부동의 렌즈 하나로 보는 것처럼 그리는 것이 당시 예술의 문제라고 봤어요. 진짜 모습이란 단일한 시각이 아니라 적어도 두 가지 시각에서 본 것인데 그 점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 거지요.

그게 바로 현대미술의 시작이었어요. 그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거기서부터 입체파로도 가고 나중에 초현실주의로도 가고 했지요. 그런 점에서 세잔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잔이 없었으면 뒤샹도 없었어요.

-그 뒤 예술사도 간단치가 않은데, 큰 흐름을 요약해주실 수 있나요?

19세기 후반 파리의 예술가들은 지금과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 같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거든요. 지금 우리가 디지털 혁명을 겪는 것과 아주 유사한 격변의 시기였지요. 예술가들은 그런 일련의 거대한 사회 변화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대응합니다.

당시 예술가들도 어떻게 세계를 보고 그것을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 당시 산업혁명이나 기술 혁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그런 시대에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로 고민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해 굉장히 열광하기도 했지요.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 1887년경
세잔은 그전까지의 풍경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어요. 풍경의 모든 것에 초점이 고르게 가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봤어요. 자신이 풍경화를 그린 후에 이것이야말로 내가 본 대로라고 했어요.

그는 일련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상으로 풍경을 파악한 거지요. 그게 진실에 가 닿는 방법이라고 본 거지요. 디테일들은 무시를 했어요. 가령 어떤 그림은 집에 초점을 두었어요. 그밖의 잔디와 들판, 나무 같은 것은 초점 밖이었어요. 초점 이외의 다른 모든 정보는 밖으로 추려낸 거지요.

점점 시각적인 단서들을 제거해 가면서 추상화가 시작된 거지요. 자신들이 본 전체적인 진실, 느낌에 치중하기 시작했어요. 그 집약이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이라고 봅니다. 격자 모양의 굵은 선에 세 가지 색상으로 표현했지요.

피트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C(No. III)’ 1935년
그 후 세계 대전이라든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을 겪으면서도 예술가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선언으로 대응했어요. 러시아에서는 해체주의가 나오고, 공산화 후에는 볼셰비키를 옹호하는 유파가 나오고, 이와 유사하게 미국에서는 자본주의를 위한 예술들이 나왔어요. 팝아트 같은 것들이지요.

이런 현실적인 역사적인 맥락과 유리된 채로 현대미술을 그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으로만 볼 경우에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예술의 진면목은 우리의 실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거든요. 현실 세계를 그리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 나라 미술관을 찾아 가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관심이 다 담겨 있습니다.

-현대 미술(modern art)과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슬고리처럼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차이라고 한다면 단지 시간이라는 변수 정도지요. 대체로 현대 미술이 끝난 시점은 1970년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폴락과 워홀, 다쿠닝 같은 예술가들이 많이 세상을 떴어요. 동시대미술가라고 하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 데이미언 허스트와 중국의 아이웨이웨이 같은 작가들이 되겠지요.

아이웨이웨이 ‘한나라 왕조의 자기를 떨어뜨리기’ 1995년
-현대 미술이 점점 ‘아트테인먼트(art+entertainment)’가 돼간다고 썼더군요.

아티스트는 늘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에 대한 우리의 관계도 변하고 있구요. 그게 꼭 부정적이라기보다 ‘삶의 현실(fact of life)’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예술은 우리에게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우리는 쉴새없이 무언가로부터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하지요. 예술은 생산품(product)이 됐고 상품화했고, 생산 유통 소비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앞다퉈 미술관을 짓는 것을 보세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 로마 국립21세기미술관(MAXXI), 이 모두가 1997년 이후에 설립됐어요. 중국만 해도 최근에 엄청난 현대 미술관을 새로 지었지요. 그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마크 로스코 ‘빨강 위의 황토색과 빨강’ 1954년
과거 현대 미술은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즐기는 여가 생활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현대 미술과 그보다 대중적인 영화나 연극, 관광 같은 여가 활동 들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졌어요.

예술도 레저 활동의 일부가 된 거지요. 사람들은 TV를 보고 영화관에 가듯이 미술관과 전시장에 갑니다. 세상의 그 많은 전시 공간들을 채워야하기 때문에 또 엄청나게 많은 예술 작품들이 곳곳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쏟아져 나오는 예술 작품들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본래 정말 좋은 작품은 드물기 마련이니까요. 실제로 미술관에 가보면 좋지 않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문제는 점차 해소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전반의 현상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보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작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처럼 많은 예술 작품들이 대량으로 생산된 적이 없어요.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먹고 살고 있어요.

이 숱한 작품들 속에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중 일부는 장래에 아주 중요하게 평가받을 것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흥미롭지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지금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더라도 나중에는 외면당할 수 있다는 뜻)

-현대 예술가들 중에는 대놓고 상업성을 내세우거나 사업가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 고흐 같은 예전 화가들은 가난 속에서 자기만의 이상을 추구했던 것 같은데 반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글쎄요. 꼭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반 고흐도 예술가이면서 엄연한 사업가였습니다. 예술은 사실 언제나 상업적이었습니다. 루벤스 같은 옛날 화가를 볼까요.

그는 17세기 화가였는데 공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수도 있었고. 작품을 만드는 공정 체계가 있었어요. 유럽에서 자신의 작품을 파는 유통망도 있었고요. 일본의 경우에도 과거에도 예술 작품은 상품에 가까웠어요.

반 고흐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아주 일찍 사망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그의 인생 이야기가 아주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는 동생 테오를 통해 자기 작품에 대한 사업을 했어요. 아마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크게 성공해서, 동생과 함께 아주 큰 부자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요. 그래서 더 극적으로 보이는 겁니다. 사망 후 10년 뒤부터 그의 작품은 알려지기 시작했고, 20년 후에는 좀 더 유명해졌고, 3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요. 그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여생을 살 수 있었다면 아마도 큰 돈을 벌었을 테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사뭇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예술가와 작품의 관계는 변한 게 없다는 얘기인가요?
물론입니다. 기본적인 구조는 변한 게 없어요. 다만 지금은 예술품에 대한 수요가 훨씬 더 많아졌지요. 예술 시장에서의 판매 기회가 어느 때보다 커요. 예술품에 대한 구매 수요가 역대 최대가 된 거지요. 많은 예술가들이 시장을 위해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이런 일이 그 전에는 많지 않았어요. 이제 예술가들은 시장을 위해, 좋은 집을 사기 위해 작품을 생산합니다.

왼쪽 그림 외젠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년)을 재창조한 제프 월 ‘파괴된 방’(1978년)
-오늘날 유명 미술품은 천문학적인 값으로 거래되고 갑부들의 축재 수단이나 투자 상품으로 유통됩니다. 마치 금덩어리를 사뒀다가 가격이 올라가면 되팔듯이 하는 풍경도 봅니다. 부유층의 재산 보전이나 탈세, 상속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논란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부자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부자들은 재산 관리에 능숙합니다. 자신의 부를 보존하고 자손에게 안전하게 물려줄 방법을 기어코 찾아내고 맙니다. 세계 어디나 그런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사실 부자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지요. 당신이 그런 자리에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예술가들마저 너무 상업적이고 돈에 타락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예술 세계는 타락(corrupt)했습니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술가의 전시회를 가 보면 그 전시관 브로셔에는 찬사 일색입니다. 예술가에 대한 비판은 조금도 없습니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리뷰란 것은 대개 칭찬과 함께 비판도 나오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모든 작품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들 뿐입니다.

사실은 그럴 수가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게 타락했다는 뜻이지요. 그 이유는 돈 많은 작품 수집가들이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이사회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들이 예술작품 후원가들이자 투자자이기도 합니다. 그 말은 그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됨으로서 생기는 가치의 수혜자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아주 깊이 타락해 있지요.

데이미언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년
(그의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기업가정신을 가진 예술가가 되면 업계 다른 사람들처럼 몸을 사리고 편리주의라는 철학을 받아들이는 한편, 이따금 악마와 손을 잡게 된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과 한 배에 오른 이상, 위선을 피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미술관에서 보란 듯 준비한 정찬 모임에 참석했더니 옆자리에 투자은행의 우두머리들이 앉아 있는데 우연하게도 그들은 당신의 작품을 사들이는 수집가이자 고객임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심원하면서도 반자본주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최근 25년간 걸출한 작가들은 이 사회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 앞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명성과 돈을 최고로 치는 승자독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의 없었다. 세계화, 디지털미디어의 영향력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가장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시기였을 때에도 분노에 찬 시선보다는 건방진 미소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는 조직적 운동이라기보다는 즐거움을 염두에 둔 것이다. 너무도 분명하게 혜택을 누리고 있는 와중에 어떻게 이 사회의 부당함을 조망하는 회화나 조소를 만들 수 있겠는가? 본인이 속해 있는 기득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데이미언 허스트 ‘살아 있는 누군가의 마음에서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 1991년
-예술계가 타락한 상황에서도 좋은 예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인간 존재가 타락해 있지 않은 적이 있던가요? 예술 작품도 인간이 구성하고 제작한 것입니다. 타락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 위대한 예술 작품은 스스로 그것을 넘어섭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타락한 예술 세계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합니다.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지요.

작품 자체가 진심(sincerity)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흔들림 없이 견고합니다. 그 어떤 것도 훼손할 수 없습니다. 부자 무기상이 샀든 돈 많은 미술상이 부당한 방법으로 샀든 작품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그것과는 무관합니다. 누가 가지고 있든지 위대한 작품은 위대한 작품일 뿐이지요.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예술을 하려고 해도 집안이 부자여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합니다. 재능 있는 지망생이 경제 사정 때문에 꿈을 꺾기도 합니다.

저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 있다면 결국에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가령 인상주의 화가 모네도 아주 가난했어요. 잭슨 폴록도 마찬가지였고요. 영국의 요즘 유명한 화가들만 봐도 그랬어요.

한스 나무트 ‘ ‘가을의 리듬’을 그리는 잭슨 폴록, No. 30’ 1950년
1990년대 1980년대 후반, 트레이시 예몬, 데미안 허스트, 새러 루커스, 이들 모두가 가난한 집안 배경에서 나고 자랐고 돈이 없이 출발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엄청난 부자가 됐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주 재능있는 예술가가 돈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편입니다. 예술 유통의 체계에 대해 알고 나면 재능을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기성 제도권 미술계의 미적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보는지가 결정적이 되지요. 거기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게 바로 17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기존 콩쿨에 맞서 혁명을 일으킨 배경이기도 했어요. 그 뒤 구성주의자들이 한 것이나 뒤샹이 한 것이 모두가 제도권에 맞선 것이었어요. 대개는 돈이 없는 것보다 제도권에 의한 검열권 행사가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세라 루커스 ‘계란 프리아 두 개와 케밥’ 1992년

트레이시 에민 ‘나와 동침한 모든 사람, 1963~1995’ 1995년
-최근 예술계에는 제도권이나 주류에 맞선 움직임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뱅크시(Banksy, 생몰년 미상)는 풍자를 곁들인 스텐실 벽화로 일약 유명인사가 됐지요. 그는 키스하는 경찰, 벽돌담 아래 거리에서 먼지를 쓸고 있는 것 같은 호텔 메이드 등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른바 거리 예술가들이지요.

이들은 세계 전역에서 체제 밖에서 활동합니다. 그래피티나 영화 제작 아티스트들입니다. 다른 미디어들을 활용해서 제도권 예술가들과는 다르게 작품 활동들을 하는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뒤샹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거리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책에 썼지요?

시장과는 아무런 연줄이 없이 그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거리예술가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잃을 게 없습니다. 과거에는 하층민의 불법 행위로 치부되던 거리예술과 그래피티가 이제는 현대 미술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현대미술품 중 상당수에 뒤샹 특유의 우상파괴적 성격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JR ‘도시의 주름’ 일부 2011년
(그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2008년 테이트 갤러리 건물 북쪽 정면에 세계 각국 예술가들이 제작한 거리예술품 여섯 점이 걸렸다. ‘JR’(생몰년 미상)로 알려진 프랑스인 젊은 예술가의 작품도 포함됐다. 자신을 포토그래퍼(Photograffeur)로 칭하는 JR은 정치적 편향을 보여주는 흑백 이미지들을 제작해 변화인 양 건물에 붙인다. 그의 작품 중 태반은 정식으로 허가받지 않고 전시된다. 공식적으로 청탁 받은 작품도, 돈 많은 후원자가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제작됐을 법한 작품도 아니다. 판매도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기업 후원을 받아 제작되는 상업적인 현대미술품과는 대조적이다. 거리예술은 원시시대 동굴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거리예술은 확산성을 가진 네트워크 수단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면서 영향력과 인기를 얻게 됐다.)

-동시대 미술의 특징으로 참여를 꼽았는데요.

팝 페스티벌이나 심지어 정치 시위 운동인 ‘월가 점령’ 운동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 대한 반작용 같은데 가상 공간에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페북, 트위터를 통해 한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과 이야기하며 연결 맺고 대화합니다. 아주 외로운 존재로서, 체험을 공유하려는 아이디어가 예술 형태로 호소력을 갖는 거지요.

예술가들도 이 점에 착안해 작품화하고 관람객이 거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요. 그게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행위 예술입니다. 작품에 참여해서 그 순간 작품의 일부가 되려는 거지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어떤 작품을 볼 때, 가령 어떤 작가가 거대한 어두운 진홍색 바탕에 회색을 그린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을 갤러리에 봤을 때 외로움이나 슬픔을 느낍니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 예술가도 외로움과 슬픔을 느꼈다는 얘기니까. 그게 모든 예술 작품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한 개인이 다른 인간 존재와 소통하려고 하는 시각 언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경우에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는 그림에 그려진 대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생각(idea)을 상대하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수 년 전에 유명한 큐레이터가 학위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현대 예술에 대한 해설이나 평가는 속임수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모든 예술이 일종의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상(illusion)이지요. 예술품은 리얼이 아니라 일루션입니다. 캔버스 위에 그린 집은 집이 아니라 캔버스입니다. 집인 척하는 무엇이지요. 거기서 우리가 집을 볼 뿐입니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년
모든 예술은 실재(real)인 것처럼 제시되지만 실재는 아니지요.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유명한 그림 ‘이미지의 배반’이 있지요. 여기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This is not a pipe)’라고 쓰여 있지요.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사기라는 말을 함축한 거지요. 나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은 어디까지나 실체가 아닌 지각이니까요.

영국 작가 중에 줄리언 반스가 한 말이 있어요. “예술은 아름다운 거짓말의 형식으로 말해지는 정확한 진실이다(art is an exact truth told in the form of beautiful lie).” 멋지지 않나요?

-그러면 예술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지요?

예술은 그 핵심이 상상력에 의한 아이디어가 됩니다. 개념적인 것(conceptual)이지요. 예술가는 그런 것에 뛰어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두뇌의 그런 영역을 활성화하는 데 뛰어난 사람들이지요. 기계가 감히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는 창의력 말입니다.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화한 세계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들 수 있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아마도 그게 다음 운동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예술가가 정치인, 영화제작자, 교사도 되는 거지요. 모든 인간 활동이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은 예술인가요? 그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거지요?

바로 당신한테 달렸지요. 당신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당신을 감동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느끼게 하고, 당신의 상상과 영혼을 자극하고 활성화하는 게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같이 느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류를, 다른 사람은 저런 류를 좋아할 수 있어요. 그래도 무방합니다. 일정한 잣대는 없습니다.

제프 쿤스 ‘메이드 인 헤븐’ 1989년
-요즘 산업 제품에서도 디자인과 미학을 강조합니다. 디지털 기기들도 예술 작품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가령 아이폰의 미학이 바로 세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된 단순한 진리를 구하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들을 제거한다고 했지요. 그 연장선에서 조너선 아이브(애플의 디자인 최고 책임자)가 애플 기기들을 디자인한 겁니다.

그러니까 세잔에서 시작된 추상주의와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얻은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예술에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폰이 예술인 것은 아닙니다. 기능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 이상의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더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거나 빠르게 작동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존재할 뿐입니다.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이폰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예술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이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에는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 보시는지요?

생각보다는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대중)가 그동안 디지털 시대에 반응해온 방식에서 그것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직접적인) 체험을 더 많이 공유하는 것을 열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요. 그 결과가 행위 예술(Performance Art)에 대한 높은 인기입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무용해질 거라고들 합니다. 예술은 어떻게 될까요?

아직 기계에게는 없지만 우리만 가진 것이 상상력입니다.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지요. 이것이 인간을 특별하게 합니다. 그럴 경우 다음 단계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예술가의 사고 방식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건축, 정치, 영화, 비즈니스를 포함해 모든 분야로 말이지요.

앞으로는 예술가들의 사고 방식을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필요로 하고 적용하게 될 것입니다. 뒤샹의 생각, 즉 어떤 것이라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한 차원 올라가는 거지요. 예술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단계로 말입니다. 큰 변화가 될 것입니다.

-당신 책에서 말하는 현대 미술은 서양 미술에 치중돼 있습니다. 현실의 반영인가요?

물론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 전시장 대부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게 미술계의 진짜 현실은 아닙니다. 현대 미술은 그보다 훨씬 더 폭이 넓고 다양합니다. 다음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룰 생각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현대 미술에 관한 서구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문화 전역에 그만큼 심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지요.

-그런 현실은 예술이 돈뿐만 아니라 영향력과도 밀접히 관련돼 있음을 뜻하는 건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한국의 현대 미술이나 작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물론 잘 압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을 아직 가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을 조만간에 바로잡고 싶군요.

-테이트 모든 갤러리에 백남준의 작품이 따로 상설 전시돼 있는 걸 봤습니다. 하지만 당신 책에서는 그가 함께 활동한 플럭서스(Fluxus)를 다루면서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더군요.

저 자신이 백남준의 열렬한 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는 다루지 못했어요. 그 외에도 제가 높이 평가하는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을 다 다룰 수는 없었습니다. 한 권의 책에 모두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체할 거라고들 합니다. 예술 분야는 어떨까요?

중국은 이미 예술계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십년 내에 점점 더 중요한 주자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봅니다.

-당신이 보기에 가장 유망한 예술가 몇 명을 말해줄 수 있나요?

모든 예술가들이 사실상 유망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여전히 현대 미술은 이해하기도 즐기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요?

먼저 제 책을 읽으세요.(웃음) 그리고 예술가들을 (사기꾼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 진의를) 믿으세요.

-다음 책을 낼 계획이 있나요?

네, 이제 막 집필을 마쳤습니다. 제목이 ‘What is Creative?’입니다. 예술가들은 창작 과정에서 어떤 사고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상상력을 활성화하고 구현하는 것, 그것을 좀 더 낫게 하는 방법에 관한 책입니다.

첫 책이 예술가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방법에 관해 썼습니다. (이 기사를 출고하기 직전 아마존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그의 책이 올라있었다. 제목이 살짝 바뀌어 있었다. ‘Think Like an Artist’.)

◆윌 곰퍼츠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7년간 디렉터로 지낸 후 지금은 BBC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여러 매체에 글도 쓰고 있다. 테이트 갤러리에서 일하는 동안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코미디쇼를 직접 제작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선보였다. 현대미술의 대중화 노력과 역량을 인정받아 BBC 아트 에디터로 발탁되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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