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문제아 對 군기반장… 세 남녀 전쟁에 세계경제 달려있다

입력 2015.07.01 03:06

[혼돈의 그리스]

벼랑 끝 전술 치프라스 총리 - 채무 탕감 공약으로 집권… 포퓰리즘으로 입지 넓혀
그리스 강남 좌파 재무장관 - 철강회사 아들 바루파키스, 가죽점퍼 입고 협상장 등장
철의 여인 메르켈 총리 - 그리스 총리 3명 낙마시켜… EU 분열 땐 정치생명 위험

그리스 시각 1일 오전 1시(한국 시각 1일 오전 7시)로 만기가 돌아오는 IMF(국제통화기금) 빚도 갚지 않고, EU(유럽연합) 채권단의 협상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티던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가 사실상의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몇 시간 앞두고 EU 고위 관리들과 막판 협상을 하겠다는 카드를 빼들었다.

그런데 그리스 정부는 왜 그동안 4개월 넘는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않고, 극단적인 길을 달려왔을까. 그 답을 알려면 그리스 디폴트 사태 중심에 있는 세 인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

'벼랑 끝 전술' 쓴 포퓰리스트와 게임이론 전문가

그리스 디폴트는 올해 1월 급진 좌파 정당 시리자 출신의 치프라스(41) 총리가 집권했을 때부터 반쯤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긴축의 고통에 지친 그리스 국민들의 마음을 읽은 그는 "기존 긴축 조건을 재협상하고 채무를 탕감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치프라스는 10대 시절 그리스 공산당의 청년 조직 '그리스 공산청년단'에 가입해 농성을 주도하는 등 일찍부터 강경 좌파 운동에 투신했다. 32세이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아테네 시장에 도전해 득표율 10.5%로 3위를 기록, 돌풍을 일으켰다. 3년 뒤에는 시리자의 전신인 '좌파연합' 대표로 선출됐다.

EU 문제아 對 군기반장… 세 남녀 전쟁에 세계경제 달려있다
이 시기 찾아온 경제 위기는 치프라스의 정치 경력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 노동인구의 26%인 13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임금은 2009년 수준에서 38% 하락했으며, 연금은 45% 깎였다. 긴축을 밀어붙인 유럽연합(EU)과 IMF는 그리스 국민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그러자 치프라스의 시리자는 일자리와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이뤄지기 힘든 달콤한 공약으로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갔고, 결국 지난 1월 조기 총선에서 제1당 자리에 올랐다.

사태가 더욱 꼬인 것은 치프라스가 바루파키스 전 아테네대 경제학 교수를 재무장관에 앉히면서부터다. 그리스 최대 철강 회사 사장의 아들이면서도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강남 좌파'다. 가죽 점퍼를 입고 협상장에 나타나고,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니며 소탈한 면모를 과시하던 그는 지난 3월 한 잡지에 자신의 호화로운 자택을 공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또 돈을 빌리는 처지이면서도 채권단에 오히려 일장연설을 펼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여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바루파키스 장관이 게임이론 전문가라는 점도 협상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게임이론은 상대의 전략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이다.

그리스 총리 세 명 넘어뜨린 철의 여제

상대가 호락호락한 인물이었다면 이들의 '벼랑 끝 전술'은 먹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인물은 '철(鐵)의 여제(女帝)'라 불리는 메르켈 총리였다. 독일은 EU 국가들 가운데 그리스에 가장 많은 돈을 꿔준 최대 채권국이다. 지난 2010년 그리스 구제금융을 비롯한 남유럽 위기 해결을 주도하면서 메르켈은 독일 안팎으로 거센 반대와 저항에 직면했다. 독일 국민들은 "독일인보다 후한 연금을 그대로 두면서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와 디폴트를 들먹이며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도 불사하겠다"며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그리스 국민들의 반발에 못 이겨 최근 5년간 그리스 총리 세 명이 줄줄이 낙마했다.

메르켈은 공산주의 치하 동독에서 태어나고 자란 보수주의자다. 그가 민주주의 발상지인 그리스 출신의 공산주의자 두 명, 즉 치프라스·바루파키스와 격돌하게 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긴축 찬성'이 우세하게 나온다면 메르켈은 그리스 총리를 네 명째 낙마시키는 셈이 된다. 반대로 유로존이 분열 위기에 놓인다면 메르켈의 정치 생명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적당히 타협하는 대신 정공법(正攻法)을 택했다. 영국 텔레그래프지(紙)는 "그리스 협상이 마지막 순간 채권단의 연금 삭감 요구로 틀어진 것은 채권단이 처음부터 그리스 좌파 정권을 퇴진시키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