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삼성물산]① 장 섰는데 안보이는 '래미안'…주택사업 접나

조선비즈
  • 이진혁 기자
    입력 2015.05.18 15:06 | 수정 2015.05.19 10:44

    삼성의 대표 스타 최고경영자(CEO)인 최치훈 사장이 지난해 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으로 부임하자,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최 사장은 글로벌 대표 기업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오랜 기간 CEO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사장이 선장을 맡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최근 해외 수주가 감소하는 등 부진을 겪고 있다. 모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한 국내 주택시장에서도 힘을 못쓰고 있다. ‘래미안’ 브랜드 포기설까지 나오는 삼성물산의 현재와 최 사장의 경영스타일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모처럼 장이 선 국내 주택 분양 시장에서 삼성물산이 사라졌다. 올해 주택 분양시장은 공공물량까지 포함해 40만가구가 넘게 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이후 9년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분양시장이라 건설업체마다 공급물량을 늘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아파트 수요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던 ‘래미안’을 공급하는 삼성물산만 거꾸로 가고 있다. 주택 공급물량도 늘리지 않고, 신규 택지 확보도 관심없고, 주택사업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 사이에서는 “삼성물산이 ‘래미안’을 접으려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올해 건설사들은 기대 이상의 분양 호조로 공급물량을 늘리고 있다. 장이 섰을 때 바짝 팔자는 것이다. GS건설의 경우 애초 1만7889가구에서 2만5139가구로 공급물량을 늘려 잡았고, 대우건설은 2만505가구에서 3만1580가구로 분양 물량을 확대했다. 현대산업개발도 1만5673가구에서 2만3480가구로 주택공급 계획을 늘렸다. 10대 건설사들이 올해 공급한 분양 물량은 연초 계획과 비교해 3만2000가구 이상 늘었다.

    그러나 시공능력평가 1위 업체인 삼성물산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 9개 사업장에서 1만1487가구를 분양할 계획이다. 이마저 대부분 주인이 정해진 조합원 몫이고 일반분양 물량은 3102가구뿐이다. 이들 사업은 모두 과거에 수주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으로 삼성물산은 올해 들어 단 한 건의 수주 실적도 없다. 경쟁사들이 올해 예정된 분양물량을 늘리고 있지만 삼성물산은 올해 분양계획에 변동이 없다. 올해 1분기 건설부문의 영업이익도 2014년 1분기보다 60%가까이 줄었다.


    삼성물산이 올해 3월에 광진구 자양동에 분양한 ‘래미안 프리미어팰리스’ 조감도. /삼성물산 제공
    삼성물산은 그동안 주력으로 해온 재건축·재개발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고 있다. 애초 두산건설이 시공할 예정이었던 서울 신반포6차 재개발사업은 조합이 수의계약으로 삼성물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삼성물산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 사업의 시공권은 GS건설로 넘어갔다. 방배동 도시정비사업에서도 주민들이 삼성물산에 시공을 요청했지만, 입찰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해 위례신도시에서 대규모 분양이 이뤄졌을 때도 경기도시공사와 함께 참여했지만 이후 이뤄진 3차례의 택지 분양에 참여하지 않았다.

    삼성물산의 소극적인 영업으로 재건축·재개발 수주 실적은 갈수록 줄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 강동구 명일삼익(2100억원)과 성북구 장위11(1900억원) 등 19곳을 수주했지만, 2011년과 2012년, 2013년에는 각각 단 한 곳의 사업장을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해에는 아예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수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체 사업을 위해 땅을 사는 것도 아니다. 삼성물산의 2014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토지 평가액은 3098억원에 그친다. 1년 전과 비교해 거의 달라지지 않은 수치다. 쉽게 말해 삼성물산이 1년 동안 새로 사들인 땅이 없어 평가액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경쟁사인 GS건설의 경우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토지 평가액은 6584억원이다. 1년 동안 857억원어치의 토지를 취득하고, 227억원어치를 팔아 630억원 정도가 늘었다. GS건설은 올해 민간택지를 사들이는 주택자체사업팀도 신설했다. 공동주택 사업이 가능한 부지를 물색해 자체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기 위해서다.


    삼성물산이 지난해 7월 분양한 ‘래미안 용산’ 조감도 /삼성물산 제공

    삼성물산은 주택사업부 규모도 계속 줄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주택사업부를 빌딩사업부로 통합시켰다. 래미안을 1등 주택 브랜드로 만들었던 부사장 이하 임원들은 2012년 대거 퇴임했고, 주택사업부 인원도 계속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지난해 350여명이 회사를 떠났는데, 올해도 600~700명 정도를 추가로 구조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인원이 1000명 안팎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 ‘래미안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며 주택부문 사업 철수설도 돌았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올 초부터 시작된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주택사업 부진이 최치훈 사장 등 경영진이 국내 부동산 시장을 부정적으로 판단한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지난해부터 분양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였지만, 삼성물산 측에선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주택사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민원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합 문제 등 위험요인이 많아 ‘1등 삼성주의’에 부담이 돼 주택사업 자체를 기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편에서는 건설 사업 경험이 없는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사장의 리더십 문제도 거론된다. 최근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로 재무통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건설업을 오랫동안 겪어왔지만, 최 사장은 건설업이라는 산업 자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최 사장은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항공기 엔진, 에너지 사업과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카드에서 사장 등을 지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내수가 중심인 카드회사와 수출과 내수를 함께 봐야하는 건설업의 사업구조가 많이 다르지 않겠느냐”며 “최 사장이 아직 건설업 흐름을 읽고, 동향을 짚는 눈은 모자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치훈 사장 부임 이후 삼성물산 건설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 /삼성물산 제공

    삼성물산의 올해 1분기 해외사업 매출액은 1조9446억원으로 26.7% 증가했지만, 국내사업 매출액은 1조1917억원으로 29.2% 줄었다. 이중 건설부문 영업이익은 485억원으로 전년보다 56% 감소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건설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래미안’ 브랜드를 포함해 공공사업과 주택 사업을 포기한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다”며 “구조조정과 수주 부진, 주택사업부 통합 등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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