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작가 김탁환 '소설의 순간'

조선비즈
  • 윤예나 기자
    입력 2015.04.25 08:27 | 수정 2015.04.25 09:18

    14일 오피니언마이닝워크숍(OMW)에서 강연 중인 김탁환 작가/다음소프트 제공
    “누가 와서 ‘소설가가 될까요, 영화 감독이 될까요’ 하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토요일, 혼자 식당에 가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아, 나는 행복하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 그걸 못 견디고 친구들한테 전화하고 카톡하고 해서 다 불러 모아 밥 먹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소설가도 혼자 산다는 게 특징입니다.”

    “소설가는 혜성이기도 합니다. 핼리 혜성이 1759년 조선시대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달 동안 빛났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한 달 동안 빛나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75년하고 몇 달 동안은 어둠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소설가도 그런 것 같아요. 75년하고 몇 개월 동안 소설가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소설을 쓰다가 책을 내고 나면 한 달가량 밖으로 나옵니다. 그 기간에 자기가 낸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소설가의 진면목은 75년 몇 개월의 그 어둠에 있다는 거죠. 골방에, 어둠 속에 틀어박혀 책 쓰고 있는 인간. 그게 소설가의 진면목입니다.”

    그렇게 ‘골방’에 박혀 한동안 책쓰기에 몰두했던 작가가 모처럼 밝은 무대로 나왔다. ‘오피니언 마이닝 워크숍(www.omw.or.kr)’. 소셜미디어에서 오가는 단어들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과 홍보, 기술 분야의 전문가 모임인 오피니언마이닝워킹그룹이 주최하고 다음소프트가 후원한 행사다. 올해는 10회째를 맞아 지난 14~17일 나흘에 걸쳐 서울 한남동 파트너스하우스에서 열렸다. 주제는 ‘사람, 사람을 바라보다’. 소설가, 심리학자부터 물리학자와 뇌과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연사로 나섰다.

    올해 장편 역사추리소설 ‘목격자들’(민음사)을 출간한 김탁환 작가는 행사 첫날 연단에 섰다. 강연 제목은 ‘인간을 아는 세 가지 방법’.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물론 여느 자리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날 2시간 가까이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던 강연 내용과 문답을 소개한다.

    인간을 아는 세 가지 방법

    반갑습니다. 쑥스럽네요.(웃음) 왜 쑥스러운가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부터 몇 권의 책을 소개해 드릴 건데, 제 책은 사실 필요가 없구요, 다른 책들은 좋은 책이니까 사셨으면 합니다.(웃음)


    이 책은 제가 2010년에 쓴 소설 ‘밀림무정’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포수가 호랑이 잡는 이야기입니다. 원고지로 한 2500매 되는 소설인데, 다 쓰고 난 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소설가는 호랑이와 같은 존재라고. 아마 오늘 저한테 틀림없이 “소설가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들 하실 텐데요, 그래서 미리 답을 드리는 겁니다. 소설가는 호랑이와 같은 존재라구요.(웃음)

    왜 소설가와 호랑이가 비슷할까. 오랫동안 생각해봤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그 생각을 했습니다. 네 가지 정도 비슷하다고.

    첫 번째는, 호랑이는 혼자 있습니다. 사자는 모여서 작업들을 하는데 말입니다. 영화 하는 친구들을 보면 뼈저리게 느낍니다. 감독 곁엔 늘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거의 100명 가까이 됩니다. 밥 먹을 때도 몇 명씩 같이 다닙니다. 저 친구는 예술가인지 아니면 CEO인지 헷갈릴 정도로 몰려다닙니다.(웃음)

    하지만 소설가는 혼자죠. 쓰면 쓸수록 혼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낍니다. 누가 와서 “소설가가 될까요, 영화 감독이 될까요” 하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토요일, 혼자 식당에 가서 라면 먹으면서도 '아, 나는 행복하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 그걸 못 견디고 친구들한테 전화하고 카톡하고 해서 다 불러 모아 밥 먹는 사람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영화감독이든 뭐든 다른 사람과 같이 작업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소설가도 혼자 산다는 게 특징입니다.

    두 번째, 둘 다 방랑자라는 겁니다. 호랑이는 보통 수컷의 경우 반경 300~400킬로미터를 돌아다닙니다. ‘호랑이가 멈추면 그때는 죽을 때’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자기 영역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거죠. 소설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작품 마치고 나면 다음 작품, 또 다음, 또 다음 작품으로 계속 돌아다니죠. 그래서 방랑자 기질이라는 게 호랑이에게도 소설가에게도 다 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둘 다 추격자라는 겁니다. 호랑이를 보면, 사냥할 때 노루나 멧돼지 같은 먹고 싶은 목표물이 생기면 집요하게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나 호랑이야’ 하고 드러내 놓고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꼭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뒤를 계속 밟습니다. 굶어가면서까지, 보통 한 보름까지도 쫓아다니는 호랑이가 있다고 해요.

    굶으면서도 “나는 저 녀석을 꼭 먹고 말거야” 하면서 계속 그렇게 쫓아다닌다는 거죠.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쫓아다니는 호랑이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게 쫓아다니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들키는 거라고 합니다. 그걸 너무너무 싫어한답니다. 인도 북부 쪽에 가면 숲이 무성한 지역에 호랑이와 인간이 함께 사는 곳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생존 비법 중 하나가 뭐냐고 하면, 그곳 주민들은 탈을 쓰고 다니는데 그걸 얼굴 쪽이 뒤로 향하게 쓰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물가에 앉아있거나 하면, 호랑이가 다가오다가도 그 탈의 눈과 마주치면 ‘에이, 기분나빠, 들켰네’ 하는 식으로 다른 먹잇감 찾으러 간다는 거예요.(웃음) 그러니 최대한 자기 발소리도 숨기고 흔적도 숨기고, 밀림의 제왕이란 것도 숨기고 살금살금 찾아다닌다는 거죠.

    소설가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소재가 정해지면 한 달이든, 6개월이든, 몇 년이든 자료를 찾고 취재를 하고, 전문가를 만나고 답사를 가고, 계속해서 그걸 추격합니다. 혼자 추격하다 보면, 그게 멋지기도 하고 굉장히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요.

    마지막은 '포식자'란 거죠. 호랑이는 먹잇감을 최대한 몰아가서,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왔다 싶으면 점프를 합니다. ‘부웅’ 날아서 앞발로 멧돼지든 노루든 목뼈를 ‘빠악’ 내리칩니다. 한 방에 죽여야 해요. 한 방에 못 죽이면 먹잇감이 달아납니다. 호랑이는 지구력이 없어서 달아나면 다시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전까지 보름을 추격했다고 해도 한 방에 안되면 고생한 게 다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소설가도 항상 그런 걸 꿈꿉니다. 내가 독자들을 ‘한 방에 죽이겠다’고.(웃음) 끝내주는 문장으로 독자들이 책을 여는 순간부터 사로잡도록 만들겠다. 그래야 끝까지 독자를 확 잡을 수 있으니까. 그게 호랑이와 소설가의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5년 동안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1986년 촬영된 핼리 혜성/위키미디어
    올해 ‘목격자들’이란 소설을 냈는데, 이걸 쓰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소설가는 혜성이다.” 어떻습니까. 좀 있어 보이지 않나요.(웃음) 여기 보시는 사진은 핼리 혜성인데요, 이게 제 소설 속에도 나옵니다. 그냥 ‘멋지게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혜성이 1759년에 왔다고 하는데 그때 한 달 동안 빛났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1835년에도 한 달 동안 빛났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빛나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75년하고 몇 달 동안은 어둠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비티’ 같은 영화를 보면 어둠 속에 혼자 우주에 떨어지면 무섭고 공포스럽잖아요. 소설가도 그런 것 같습니다. 75년하고 몇 개월 동안 소설가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겠죠. 그러다 책을 내고 나면 한 달가량 밖으로 나옵니다. 그 동안 자기가 낸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고는 다시 75년 몇 개월의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웃음)

    그래서 소설가들은 같은 소설가를 보면 굉장히 애틋합니다. “어우, 책을 냈어? 어둠을 통과하셨군요” 하고.(웃음) 한 달 밖으로 나와서 만나면 독자들은 ‘아, 소설가는 저런 사람인가 보다’ 하시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죠. 소설가의 진면목은 75년 몇 개월의 그 어둠에 있다는 겁니다. 골방에, 어둠 속에 틀어박혀 책 쓰고 있는 인간. 그게 소설가의 진면목입니다.

    지금처럼 대중 앞에 나서서 떠드는 이런 상황이란 건, 소설가에게 있어선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란 거죠. 제 경우도 책 내고 한 달 딱 나와 있는데 마침 (이 행사를 기획한) 다음소프트에서 전화를 하셔 갖고(웃음)... 다음 달이면 아마 어둠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겁니다.(웃음) 그래서 저는 소설가가 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다음 소설 쓰고 나면 제 설명이 또 바뀔 것 같아요.(웃음)

    제가 오늘 말씀 드리려는 건 ‘인간을 아는 세 가지 수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란 소설에 나오는 겁니다.


    작가가 오랜 세월 쓴 소설인데, 회상록 형태의 소설로는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5명의 뛰어난 로마 황제 중 세 번째 황제입니다. 작가는 로마 시대 풍습대로, 당시 상황과 그의 목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작가라고 할 수 있죠. 박경리 선생과 비슷한 레벨의 작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들려 드리려는 것은 바로 이 작가 유르스나르가 작품 속에서 하드리아누스의 목소리로 하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을 아는 첫 번째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입니다. 왜냐, 나도 인간이니까. 나를 계속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게 뭔지 알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경상도 사람인데 경상도 말로 하자면, 자기 ‘꼬라지’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아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알게 된다는 얘깁니다.

    소설 중에도 사(私)소설이란 형식이 있습니다. 소설가의 자기 고백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노골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는 형식의 소설입니다. 그런 소설들을 보면 일종의 ‘자기 자신 들여다 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추악함부터 아름다움까지 모두 다 끝까지 들여다보는.

    저는 글쓰기 강좌 같은 걸 할 때면, 첫 시간에 수강생들한테 “여러분 인생에서 제일 부끄러운 모습이 뭔지 적어 오라”고 시킵니다. 그런데 수강생이 30명쯤 되면 20명 가까이는 안 써옵니다. “내 부끄러운 모습을 왜 당신한테 알려줘야 하나” 이런 거지요. 자기 자신에 대해 쓴다는 건 자신에게 굉장히 정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감추고 싶었던 것들까지 다 넘어와서 써야 하는 거지요. 이런 게 첫 번째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옆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 옆 사람이 외계인이나 애완견은 아니지요?(웃음) 옆 사람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가 하고 따지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세 번째 방법은 무엇일지는 금방 답이 나오겠지요? 바로 ‘그’는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어떤 인물이 굉장히 궁금하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직접 가서 만나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지요.

    가령 세종대왕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 무덤 앞에 가서 “안녕하세요”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을 아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라고 이 소설에 나옵니다.

    크게 보면 이런 틀들은 바뀌지 않는 게 아닌가, 지금도 유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되겠지요.

    올해 초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손기노카이르칸 지구에서 발견된 선승의 미라/시베리아타임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선승들이 많이 합니다. 이건(사진) 얼마 전 TV 뉴스에 나온 건데요, 200년 만에 발견된 참선하는 모습의 라마 선승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미라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이 스님이 참선 중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정말 나는 누구인가 계속 고민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공부 많이 하신 선승들 보면 사명대사나 서산대사 같은 분들은 글로 뭔가를 남겨 놓으셔서 연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승려 중에 아주 뛰어나다고 알려졌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글 한 자 안 쓴 경우도 많아요. 이런 분은 책도 안 봐요. 그 대신 면벽 수도를 하는 거죠. 그렇게 화두를 갖고 파고, 수십 년 수도해서 깨달음을 얻어요.

    그렇게 하고 나면 널리 알리고 가르쳐 줄 것 같잖아요? 안 가르쳐줍니다.(웃음) 대부분의 뛰어난 선승들은 깨우쳤다고 말만 하고 선문답 정도 하다가 그냥, 사라졌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통해서도 인간이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너는 누구인가. 요즘 서점에 가보면 대표적인 게 인터뷰집입니다. 그 중에서도 '너는 누구인가'를 다룬 게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인터뷰집은 저자가 두 명인 셈이죠. 인터뷰를 하는 '나'와 인터뷰를 당하는 ‘너’가 같이 ‘우리’가 되어 쓴 거죠.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가 모여서 책이 되는 겁니다.


    제가 최근에 본 인터뷰집 중에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가 ‘그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정혜윤씨가 쓴 인터뷰집입니다. 책 자체는 쌍용차 해고자 26명을 인터뷰한 겁니다. 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처한 상황까지 인터뷰해서 담은 겁니다. 아주 힘들었겠죠, 스물여섯 명. 하루에 한 사람만 만나도 한 달인데, 보통 한 사람당 서너 번은 만났을 테니까, 실제로는 100~150일 정도를 만났다고 볼 수 있죠.

    이 책을 보고 굉장히 놀란 게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면 목차가 어떻게 될까요. 보통은 나와 A, 나와 B, 나와 C... 이런 식으로 가지 않겠어요? 그게 제일 흔한 인터뷰집 구성 방법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목차가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이렇게 돼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싸운 5년 동안의 기간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26명을 만났는데 이렇게 목차를 구성했다니.

    너무 신기해서 제가 읽어보니까 이렇게 돼 있는 겁니다. 먼저 인터뷰를 다 한 후에 같은 시간과 장소에 인물을 다시 엮은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26개를 다 펼쳐놓고. 가령 2009년 1월 1일이라고 하면, 그때 한 사람은 공장 옥상에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대문에, 또 다른 한 사람은 밑에서 뭔가 만들고 있었다, 이런 식입니다.

    더 놀라운 건 26명이 책 출간 후에 뒷풀이를 할 때 저도 거기 가서 들은 이야긴데, 당사자들도 그때는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가 그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입니다. 인터뷰를 따로 다 해놓고는 날짜를 일일이 확인해서 장소를 맞춘 거니까.

    그래서 제가 저자한테 “혼자 한 것 아니지” 하고 캐물어 봤습니다.(웃음) 그런 뒤에 일단은 그냥 믿어주기로 하고, 이걸 왜 이렇게 엮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라는 게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이 계속 죽은 거지요. 저자가 하는 말이, 당시에 20명 이상이 여러가지 이유로 죽었는데, 한 명 한 명 정리를 하고 보니까 그 사람들이 각각 한 명으로 들어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곧 죽을 것 같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작품 속에서 이들을 한데 엮어 놓으면 서로 연결이 돼 있다는 게 나오니까 더 이상은 안 죽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겁니다.

    아, 그렇게 생각은 할 수야 있겠지만. 막상 그렇게 벌여놓고 작업을 감행한 건 우리 출판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걸 읽어보면 소설로도 읽힙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이, 아, ‘너’에 대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면 여기까지도 갈 수 있구나 하는 걸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그는 누구인가. 장편 소설가는 항상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여러 사람이 있는데 하필 이 사람을 썼냐”고 말입니다. 가령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이 있는데, 왜 하필 이 사람을 썼냐고. 이럴 때 제가 답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을 쓴다”는 겁니다. 어떤 인물의 삶을 쭉 봤는데, 내가 굳이 쓰지 않아도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가 간다, 그런 경우는 굳이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이순신 장군? 절대 이해가 안 되죠. 99명의 장수가 다 지는데 혼자만 계속 이겨요. 이해가 안 되잖아요. 이 사람은 신이다, 영웅이다 해버리면 해결이야 되겠지만, 사실은 그분도 한 명의 인간이지 않습니까. 남들은 다 지는데 어떻게 이 사람은 그렇게 이겼을까, 궁금한 거죠.

    제가 황진이를 소설로 쓴 적이 있습니다. ‘나, 황진이’라는 작품이죠. 황진이는 연애를 공식적으로만 열 번은 넘게 한 걸로 나옵니다. 그러고는 특A급의 시를 씁니다. 그러니 당시 조선시대 사대부가 보면 이 여자가 ‘창녀’처럼 보였겠죠. 기록에도 보면 ‘창기’ 황진이라고 써놨습니다. 이 여자 너무 난잡하게 논다, 사대부는 다 그렇게들 생각한 거지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황진이의 시(詩)도 언급을 안 하려고 하겠죠. 그런데 시를 너무 잘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정말 싫은데 시를 잘 쓰니까 어쩔 수 없다, 이런 거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의 고민이 지금 제 고민과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저런 고민을 하고 있네’ 이러면 글을 쓰기가 어려운 거죠. 내가 어떤 의미 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했고, 그런데 이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경우, 그런 때에 그 사람을 공부해서 이야기를 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장편 작가들은 질문을 먼저 찾는 작업을 합니다.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서 쓴다기보다, 어떤 질문을 할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단편은 하룻밤에도 쓸 수 있는데 장편은 최소 3년은 걸리니까요. 내가 이걸 쓰겠다고 결심한 뒤에도 쓰는 데까지. 길게는 10년도 걸리는 거지요. 토지 같은 건 30년이 걸린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갈 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질문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질문이 곧바로 책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그런 게 작가들이 고민했던 문제가 곧바로 제목이 된 경우입니다.

    제가 쓴 작품을 예로 들면,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이 있습니다. 작년에 쓴 책입니다. 그때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면 삼봉 정도전 선생과 저 사이에 틈이 있었습니다.

    소설가와 역사 속 인물 사이엔 세 가지 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틈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나는 살아있고 그는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그도 함께 살아 있다면 직접 만나서 물어볼 텐데 그게 안됩니다. 나는 작가인데 그 사람은 정치가이기도 하고.

    다음은 서로의 시간이 다릅니다. 나는 21세기, 정도전은 14세기 사람입니다. 나는 공화국 시대인데 그 사람은 왕조 시대니까 세계가 다릅니다. 그 다음으로, 나는 서울에 있는데 그 사람은 개성 혹은 나주, 영주에 있었다는 겁니다.

    소설에서 ‘정도전이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하고 나서는, ‘산책을 나갔는데 왼쪽에 뭐가 보이고 오른쪽엔 뭐가 보이는지’ 그게 분명하게 보여야 묘사가 가능합니다. 소설가로서는 그게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들은 별로 안 궁금하겠지만.(웃음) 왜냐하면 소설가는 인물의 일상 세계를 장악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은 당시 개성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휴전선 때문에 제가 직접 현장 답사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1300년대 정도전, 정몽주 이런 사람들이 개성에 살 때는 아침에 산책을 하면 왼쪽에 뭐가 보이고 오른 쪽엔 뭐가 보였을까, 이런 게 작가로서는 고민인 거죠. 이게 바로 틈입니다.

    이런 세 가지 틈을 메우면 소설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그걸 메우고 나면 ‘접신의 순간’이 옵니다.(웃음) 말하자면, 주인공과 작가가 ‘붙습니다’. 제가 학자가 아니어서 공식적으로 그 용어를 선택하지는 못하겠는데, 소설가들은 그냥 ‘접신의 순간’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정도전에 관해 책을 쓰면 사람들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답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붙었으니까.

    정도전의 초상과 소설가 김탁환/조선DB
    소설을 쓰는 어느 순간에 그냥 ‘붙습니다.’ 그러고 나면 (타이핑하는) 제 손가락에서 정도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황진이에 대해 쓸 땐 황진이 목소리가 나옵니다. 참 신기하죠. 막 아양 떠는 소리가 나오고.(웃음) 작업실에서 글을 쓸 땐 진짜 소리까지 내면서 씁니다. 그럴 땐 제 뇌가 여자로 세뇌되어 있는 거지요.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 땐 진짜 그렇게 나옵니다. 우스개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접신됐다가도 잘못하면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황진이를 쓰면서 굉장히 낭패였던 적이 있습니다. 한 1년쯤 고생해서 딱 붙었어요. 이제 손가락에서 여자 목소리로 막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갔어요. 그런데 제게 딸이 둘 있는데, “아빠~!” 하면서 뛰어나왔습니다. 다음날 작업실에 갔더니 황진이와는 다시 떨어지고 만 겁니다.(웃음) 그러니까, 전날까지도 서로 잘 붙어 있었는데 딸들이 제가 남자란 사실을 상기시키고 난 후에 딱 깨져버린 겁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들 합니다. 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도 자기 소설 속에 필요한 소도구들을 다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순수박물관. 같은 작가들은 왜 그러는지 다 이해합니다. ‘접신’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바로 이해하지요.

    그러고 나면 정도전의 눈으로 세상이 보입니다. 정도전의 눈으로 하늘이 보이고 땅이 보이고 동료들이 보이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그 사람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왜 그랬는지 알겠어’ 이런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정도전을 쓸 때인 2012년과 2013년에 제가 갖고 있던 문제 의식은 혁신이었습니다.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런 문제를 우리 역사 속에서 제일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이 정도전이고, 성공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놓은 사람도 정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한 혁명가였던 거지요.

    하지만 그런 인물에 접신돼 들어가더라도 모든 걸 다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소설가가 주로 선택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를 보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하루는 언제인가요?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한 인물 전체의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하루를 놓고 그 앞과 뒤를 편집하는 겁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하루는 기록되기도 하고, 기록되지 않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기록이 잘 안 됩니다. 다 지나고 난 후에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하루는 바로 그날이었어’ 이렇게 됩니다. 가령, ‘내가 그날 그 여자를 안 만났다면 내 인생이 피었을 텐데’라는 식이지요.(웃음) 그런 식의 결정적인 하루.

    하지만 그런 날이 꼭 기록으로 남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아주 가끔은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있을까요. 이순신 장군. 장군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들을 비교적 자세히 일기로 써놓았습니다.

    정도전의 경우에는 저는 1392년 4월 4일이 가장 핵심적인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주에서 1392년 4월 4일을 중요하다고 파고 있는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굉장히 행복하고, 또 고독하기도 합니다. 이날은 바로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암살당한 날입니다. 그날부터 급발진돼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집니다.

    중요한 게 정몽주와 정도전은 어릴 적 10대 말부터 의기투합해서 국가 시스템을 바꾸자 하고 30년 가까이 같이 커온 혁명 동지였습니다. 따라서 정몽주가 죽는다는 것은 정도전에게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러면, 정몽주가 죽을 때 정도전은 뭘 하고 있었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경상도 영주, 자기 집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죽었는데 말입니다.

    이럴 때 드라마 작가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도전을 개성으로 불러 올립니다. 역사적 현장인 선죽교에 서 있게 합니다. 그래야 극이 되니까요.(웃음)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이지만 정작 나는 모를 수도 있다. 그걸 쓰고 싶었습니다.

    아마 10년 전이라면 저도 정도전을 불러 올렸을 겁니다. 아마 막 난리를 쳤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영주 고향에서 묵묵히 지내는 정도전과 개성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몽주의 ‘틈’을 쓰고 싶었습니다. 날짜 별로 돌아가면서 하루는 개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하루는 영주에서 놀고 있는 정도전을 쓰고. 하루하루가 굉장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여러분도 돌아가시면 시대물이나 역사물을 볼 때 언제를 결정적인 하루로 삼았나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그냥 따라가지 마시고요. 어떤 날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책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습니다.

    잔다르크 같은 경우만 해도 영화가 열 몇 편에 소설이 수십 권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바라보는 시점이 다 달라서 그런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이해가 안되는 인물들을 가지고 백탑파 시리즈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쓴 게 담헌 홍대용입니다. 이름은 들어보셨지요? 하지만 뭐하던 사람인지 감은 잘 안 오지요?(웃음)

    간략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일단 이 사람이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습니다. 거문고를 갖고 다니다가 적당한 기회가 오면 척 내려서 연주를 하는 겁니다.(웃음) 지금으로 치면 신중현 선생 정도 될까요? 자기 밴드도 있었습니다. 악단을 조직해서 너댓 명의 악공들과 함께 연주를 했습니다. 남산에서 악회를 계속 열었습니다.

    이 사람이 악기에 심취하면 어떤 경지까지 가는가 하면, 누가 만든 악기가 맘에 안 들면 자기가 직접 악기를 만듭니다. 신중현 선생도 자신이 울림통을 줄이거나 줄을 늘리는 식으로 악기를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홍대용도 그랬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악기들과 합쳐서 ‘양금’이란 악기를 만듭니다. 그러고는 악공들을 불러 모아서 “이거 내가 만든 악긴데 이렇게 연주하는 거다” 하고 보여줍니다. 심상치 않죠.

    게다가 이 사람이 천문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집에 사설 천문대가 있어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했습니다. 또 수학자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여행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박지원이 북경에 제일 먼저 다녀온 것으로 알지만, 아닙니다. 홍대용이 제일 먼저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자랑을 막 하니까, 두 번째로 박제가가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지원이 간 겁니다. 어떻게 보면 박지원의 ‘열하일기’란 홍대용부터 시작된 그 여행에서 영향을 받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홍대용은 사회사상가였습니다. 아주 놀라운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정승의 자식이든 노비의 자식이든 일단 다 같이 공부를 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제일 잘 하는 애를 위로 올리자고 했습니다. 정승 자식이라도 공부를 못하면 농사를 시키고, 노비 자식이라도 똑똑하면 공부를 시키자고 했습니다.

    이런 건 1900년 정도나 돼야 갑오개혁 같은 데서 이야기되는 사상인데 벌써 1780년쯤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걸 다 동시에 한 사람이 바로 홍대용입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은 드뭅니다. 음악가이자 천문학자이자 여행가이자 사회사상가. 이런 점이 저는 흥미로운 겁니다.

    2014년에 제가 가진 문제 의식은, 이번 주가 공교롭게도 일주기인데,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세 가지 문제 의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가장 존귀하다고들 생각하는데 국가에 의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명이 없어지는 경우입니다. 전쟁이나 돌림병 같은 것에 의해서 말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죽은 사람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생중계로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함께 봤습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도 내상을 입은 겁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인간이라는 게 계속해서 너무 고통스러우면 안 보게 됩니다.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고통스러워서 안 보게 되니까 외면을 합니다. 그걸 극복하고 어떤 다른 인간으로 자기를 바꾸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세월호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게 된 겁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1780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봄에 다섯 군데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조운선이라는, 세금으로 내던 쌀을 나르던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동법이라고 해서 세금을 쌀로 냈습니다. 쌀을 소 달구지로 옮기면 너무 힘드니까 배로 옮겼습니다. 한 척당 쌀이 천 석씩 들어갔습니다. 한 척이 가라앉으면 쌀 천 석이 사라지고, 열 척이 가라앉으면 만 석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 재정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 해에 보니까 봄에 다섯 군데에서 배가 빠진 겁니다. 정조 초기인데 정조가 이를 조사하라고 합니다.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사하는지를 찾아보는데 잘 안 나옵니다. 그리고 11년 뒤, 1791년에도 법성창이라는 곳에서 또 배가 빠졌습니다. 왜 빠졌나 조사했는데 이게 재미있습니다. 하나는 과적 때문이었습니다. 천 석을 실어야 하는데 1500석씩 막 실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죽었어야 하는데 선원들이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다 살아 나왔습니다. (지금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조운선 침몰 사례를 다 모아봤습니다. 사실 이제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바로 장편소설을 쓸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십 년 지나면 세월호 관련 장편소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럴 때 장편 작가들은 뒤로 빠져야 합니다. 질문거리를 찾으면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가 뒤로 쭉 빠져봤는데 1780년대로 갔습니다. 조운선 침몰 과정을 쓰자고 했는데 그 중 밀양에 있는 후조창을 출발해서 영암 앞바다에서 빠진 그 사건을 다루려고 한 겁니다. 그래서 1780년 4월 5일 영암 앞바다 조운선 침몰을 ‘그날의 하루’로 잡고, 그게 어떻게 빠졌는지 조사하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작년 5월입니다. 12월까지 썼습니다.


    여지도 중 밀양부/민음사 제공
    주로 두 군데 답사를 갔습니다. (지도를 가리키며) 이쪽이 밀양이고 여기가 후조창입니다. 밀양이 큰 고을이니까 경상도에서 쌀을 다 거두면 창고에 먼저 모읍니다. 후조창이라는 이 곳에 쌀을 모으면 몇 만 석이 모입니다. 여기에서 마산 앞바다로 내려옵니다. 이게 올라가다 보면 강화도이고, 더 올라가면 광흥창입니다. 광흥창은 쌀을 다 풀어놓는 곳입니다. 그런데 배가 진도를 지나 올라가다가 침몰했습니다.

    동국지도 중 전라도/민음사, 범우사 제공
    배를 실을 때에 여러 부조리가 일어납니다. 가장 유명한 부정부패가 ‘화수’입니다. 500석만 쌀을 싣고 500석은 물을 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1000석이 되게 만들어서 싣습니다. 그게 ‘속대전’이라고 해서 법령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화수’를 저지르면 무조건 사형이라고 적어 놨습니다.

    ‘고패’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1000석을 실어야 하는데 500석만 싣고 일단 출발을 합니다. 광흥창에 이르면 500석이 부족하게 되니까 혼이 나잖아요. 그러니 중간쯤 가다가 일부러 배를 침몰시킵니다. 고의로 빠뜨리는 거죠. 그렇게 사고가 나서 못 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이런 죄를 저지르면 사형이라고 법령까지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 부분 답사를 하고,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요컨데 ‘결정적 하루’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태도’ ‘문제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 장편 작가의 작업 방식이자 보편적인 작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줄은 모르셨죠?(웃음)

    제가 요즘 좀 다르게 고민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께 좀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시리즈 작가’의 어려움입니다. 단행본 작가의 경우에는 어떻게 사느냐 하면, 장편 하나를 쓰고 나면 그 다음 작품 쓰기 전에 앞에 썼던 걸 다 잊어버립니다. 뇌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까. 다 털어버리지 않으면, 가령 지금 신사임당을 써야 하는데 황진이가 막 나오고, 인물들이 마구 섞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앞 작품은 빨리 잊습니다.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독자는 어떤 독자냐 하면, 15년 전쯤 쓴 소설을 어젯밤에 감동적으로 읽고 와서는 “이 사람은 왜 이래요?” 하는 분입니다. 사실 저는 기억이 안 납니다.(웃음) 제가 썼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저한테 그러시면 안 됩니다.(웃음)

    요즘 문제가 생긴 게, 제가 탐정 캐릭터를 하나 만든 게 있습니다. 2003년에 ‘방각본 살인 사건’을 쓴 걸 시작으로 ‘열하광인’ ‘열녀문의 비밀’ ‘목격자들’을 이어서 썼습니다. 그러고 난 후 독자와의 만남을 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 작품을 띄엄띄엄 써왔는데 1주일 만에 그걸 다 읽은 독자가 저한테 와서는 질문을 하는 겁니다. “2003년에 (탐정 주인공) 김진이 이렇게 말하는데 2015년에 말하는 건 다르다. 왜 그런가?” 제가 확인해보니 진짜 조금 차이가 나는 겁니다. 제가 기억을 못한 거지요.

    지금 제가 그런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한 2년 후에 책을 또 낼 텐데 열다섯, 스무 권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 전엔 망각하는 게 소설가의 즐거움이었는데, 앞으로는 이걸 다 어떻게 기억하지, 큰일났네,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억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렸습니다.


    소설가들 사이에서 기억의 제왕이라 불리는 작가가 마르케스입니다. 이 사람의 자서전이 700쪽 정도 되는데, 이 책은 읽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이 다른 사람 자서전 읽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이 사람이 이 작품을 어떻게 쓴 걸까, 어떤 작업 방식으로 작품을 썼을까’ 궁금해서입니다. 저도 ‘백년 동안의 고독’을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샀습니다.

    그런데, 가령 이런 식입니다. 읽기 시작해서 150쪽쯤 됐을 때에야 비로소 마르케스가 태어납니다. 350쪽쯤 가서야 습작을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500쪽쯤 가서는 어디에 투고했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600쪽에 와서 초고를 고치고 있습니다. 700쪽쯤 와서 그제서야 “나는 이제 소설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첫 작품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웃음) 엄청난 자신감 아닙니까. 700쪽은 내가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만이고, 아마 그 뒤에도 또 700쪽을 쓰려고 했을 겁니다. 이 책 앞 부분을 보면 자기가 얼마나 기억을 잘 하는지 자랑하고 있습니다.

    삶은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써놨지요. 자기는 기억을 잘 한다는 이야기입니다.(웃음)

    여기서 아이러니가 무엇이냐. 첫 번째 책을 쓰고 마르케스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는 못 썼습니다. 그 뒤를 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또한 소설가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갑자기 치매가 걸려서 한번에 가는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질문들이 나오게 됩니다. 내 삶을 미완성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끝내 완성하지 못할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마르케스의 삶을 보며 하게 됩니다. 이런 질문까지 하게 됐으면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반전이 있습니다.

    저는 시리즈 작가의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게 있습니다. 뭐냐 하면 백탑파 시리즈 앞에 정도전 혁명까지 열 권의 책을 냈습니다. 어느날 이 책을 낸 민음사 출판사가 3년 전에 제안을 한 겁니다. “당신이 20년 동안 쓴 소설을 보니 조선만 34권이다. 그걸 다 묶자”고 말입니다. ‘김탁환의 조선’이란 걸로 묶고, 앞으로 20년 동안 20권 이상 더 써서 60권짜리를 낸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고 제안이 온 겁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나. 그런데 책을 여러 종류의 출판사에서 내다보니 정신이 없더군요. 관리도 안되고. 15년, 20년 전 것은 절판도 되고 그 출판사가 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다 모아서 시리즈로 쭉 낼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시리즈로 내기로 했습니다.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내기로 한 겁니다. 지금까지 10권이 나왔고, 2034년까지 60권이 목표입니다. 저는 60권으로는 완성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마 그렇게만 내면 독자들이 전화로 “이 인물은 안 다뤘잖아요?” 할 것 같습니다.(웃음) 60권으로 조선왕조를 다 쓸 순 없잖아요.

    그런데 작가는 반복을 싫어합니다. 60권을 계속해서 하나의 문체로 쓰는 게 아니라 각 인물에 맞춰서 서로 다른 문체로 문제 의식을 갖고 써 나가는 겁니다. 2014년, 2015년, 2016년, 김탁환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문제 의식과 과거 문제 의식을 거울처럼 놓고 작품으로 해 나갈 거라는 거지요. 지금 정신을 차리고 하고는 있는데, 10년 동안 30권 정도가 나온다고 하면 독자들이 30권 다 기억하고 막 질문을 하고, “선생님의 30번째 작품은 12번째 작품의 5번째 줄과 비슷하지 않나?” 이런 질문을 할까 봐 무서운 겁니다.(웃음)

    저로서는 요즘 해마다 2, 3월이 되면 조선왕조실록 신작을 내면서, 또 예전에 쓴 것 개정판을 내면서 앞으로 20년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이런 삶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질의응답>

    -소설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호기심? 관찰력? 끈기?

    다 필요한데, 끈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장편 작가니까. 원고지 8500매짜리를 쓰면서 하루에 열 장씩 쓴다고 쳐도 850일입니다. 저로서는 매일 A+로 다 쓰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을 B+로 다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쓰는 것. 정해진 시간에 끈질기게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소설을 계속해서 쓰게 만드는 매력은?

    여러 가지 매력이 있지만 가장 큰 매력은, 글 쓰기는 자꾸 쓰면 는다는 겁니다. 시인은 (소설가와는) 좀 다른 부류의 인간입니다. 천재도 있고. 음악가도 천재가 있습니다. 15세 이런 때 머릿속에 선율이 막 지나간다거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편 작가는 처음에 쓴 장편이 제일 위대하냐, 그런 것 없습니다. 태평양으로 치면 다 건너가다가 중간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다른 것 같습니다.

    장편을 쓴다는 건, 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양적인 부분도 감당해야 합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 보면 27, 28세 때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원고지 100매도 못 썼어요. 그 정도도 왜 이렇게 긴가 하고 허덕댔는데, 4, 5년 지나니까 500매쯤 쓰고, 더 지나니까 1000매, 2000매도 쓰고, 남자 아닌 여자 이야기도 쓰고, 시간도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문제를 쓰게 되더군요. 저는 지금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측면이 있는데, 가령 ‘불멸의 이순신’을 쓰면서 확 늘었습니다. 등장인물이 120명쯤 되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 제가 아침마다 이 친구들 출석을 부르는 겁니다. 한 사람씩 보면서 얘가 누구였고 어떻게 생겼고 성격이 어떻고 뭐 이런 것 있지 않습니까. 앞의 삶은 어땠고 이런 걸 정리하면서 계속 봅니다. 안 그러면 계속 뒤섞이니까요. 제 맘대로 핸들링을 하는 겁니다.

    소설이란 게 가장 어려운 게 그런 거지요. 영화감독은 배우들을 쭈르륵 세우면 되는데 소설가들은 자기 머릿속으로 120명을 해야 하니까. 처음엔 저 하나도 핸들링이 안 되고, 저 자신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싸움시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차츰차츰 한 명 두 명 여러 명, 이렇게 하다가 100명 넘게 만지다 보니까 계속 느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건, 이게 제가 세상을 살아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인물의 삶을 추적해서 내 문장으로 옮겨 나가는 것. ‘불멸의 이순신’을 850일 썼는데 이순신을 850번 고민했다는 얘기입니다. 하루 한 번만 고민한다고 쳐도, 자기 자신을 매일매일 850번쯤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한 삶에 대해 300일이면 300일, 500일이면 500일, 계속 고민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 중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소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홍대용도 이제 이해가 되는 겁니다. 홍대용이란 인물이 왜 그랬는지 제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거지요.

    -역사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이며, 조선시대, 그 중에서도 정조시대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조선시대를 좋아하는 건 소설가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에는 육체가 필요합니다. 어떤 시대를 생각하면 그때의 구체적인 상이 필요한 거지요. 고려나 신라 시대는 그게 많이 부족합니다. 김유신을 쓸 수야 있겠지만 당시 모습에 어떤 육체를 부여해서 쓸 수 있을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고려말 정도부터나 가능한 것 같습니다. 여러 자료를 통해 행동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고려나 신라도 쓰려면 쓸 수야 있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하고, 리얼리티 측면에서 훨씬 불리합니다.

    그리고 제 경우 일부러 조선시대만 다룬다기보다는, 보통 소설 속에선 ‘거리 두기’가 필요한데, 50년쯤으로 두면 6.25 전쟁이고, 100년 이상을 두고 들어가면 그 때가 조선시대가 됩니다. 거리 두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때 걸린 시대가 조선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영정조 시대를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굉장히 독특한 개성 넘치는 인간들이 집중적으로 나온 시기라서입니다. 인물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제 가슴이 뜁니다. 유득공 이런 사람을 보면, ‘발해고’를 쓴 역사학자로만 아는데, 이 사람 취미가 집비둘기 키우기였습니다. 자기 집에서 비둘기 100마리를 키웠습니다. 유득공 집에 놀러가서 문을 열면 비둘기 똥들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하나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으로 치면 ‘집비둘기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내용의 책을 썼습니다.

    이런 인물들이 한 스무 명 모여서 ‘놀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진짜 재미있게 놉니다. 제가 백탑파 시리즈를 쓰는 것도 ‘이 사람들이랑 나도 좀 더 놀고 싶다’ 싶어서 쓴 겁니다.(웃음) 자본주의 시대,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놀고 있는 걸 보면 제가 너무 즐거운 겁니다.

    서양으로 치면 이 때가 백과전서파들이 나오기 시작한 그런 시대로 보면 됩니다. 조선의 백과전서파였던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보는 겁니다. 학자들은 우리 근대의 시작을 영정조대로 보기도 합니다.

    -선생님 책을 보면 모든 장면을 마치 영화 보듯 잘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아까 말씀하신 개성 풍경 같은 디테일의 틈은 어떻게 메꾸나?

    저는 눈을 감았을 때 그 장면이 다 머릿속에 떠올라야만 쓸 수 있는 작가입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독자에게도 떠오르고, 영화 하는 사람들에게도 다 떠오르면, 그때 작품을 사러 오는 겁니다.

    왼쪽부터 이색, 이숭인, 정도전의 초상/조선DB
    아까 말씀드린 개성 풍경 이야기의 경우에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400년, 500년 전 장소에 대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개성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게, 우선 고려말 이색, 이숭인, 이런 사람들이 개성의 자기 집 앞을 묘사한 글들이 있습니다. 그런 걸 다 모읍니다. 고려가 망하고서 조선 초기에 어떤 유행이 있었느냐 하면, 망한 나라 수도에 여행가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초기 선비들이 다 개성에 놀러가서 기행문을 썼습니다. 그게 ‘유송도록’이라고, 기행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걸 다 읽었습니다. 진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개성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장소 하나하나에 이색은 이 장면에서 이렇게 말했고 하는 걸 다 붙여서 장소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한양보다 파리 풍경을 쓰는 게 훨씬 쉽습니다. 전쟁 통에 한양은 폭격을 맞아서 복원이 안됩니다. 반면, 파리는 제가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이란 소설을 쓰면서 가봤는데, 1890년의 벽, 1850년의 거리 이런 식으로 다 남아 있더군요. 그러니까 그쪽이 훨씬 복원이 잘 되는 겁니다.

    이건 우스개 소리인데, 현장 답사를 갈 때 작가의 마음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것이든 온전히 그대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차라리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엔 제 맘대로 쓰면 되니까.

    가장 애매한 게 ‘증축된’ 경우입니다.(웃음) 가령 1890년의 파리 노틀담 대성당을 보려면, 지금 상태에서 어디까지가 복원된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과거 모습인지를 찾아야 하니까.

    -장편을 쓰다 보면 처음 쓸 때와 끝에 가서 마음이 바뀌는 경우 어떻게 해결하는지?

    주인공은 당연히 바뀝니다. 그게 재미있습니다. 처음 설계도대로 절대 되지 않습니다. 최대한 자료 조사를 해서 쓰기 시작할 때는 이 인물과 이 인물이 붙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을지 예측만 하지 붙여보진 않았으니까요. 가령, 제가 생각할 때 C는 조연의 조연급 엑스트라였다고 칩시다. 그런데 얘가 자꾸 자랍니다. 그러면 작가로서는 미치는 거지요. 전체 구조가 흔들리니까.

    -민음사에서 주로 책을 내는데,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작가와 출판사의 관계는 편집자와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낸 ‘소설 조선왕조실록’ 10권의 책 편집자가 다 한 사람입니다.

    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내면 편집자가 두 세 사람이 되니까. 실수도 많아집니다. 서양의 경우 출판사에 메이저 작가가 있으면 평생 그 사람만 전담하는 편집자가 있어서 함께 갑니다. 20년, 30년. 그러면 서로를 너무 잘 아니까, 작가가 만약 이렇게 쓴다고 자랑하면 편집자는 “그거 15년 전에 쓴 거랑 똑같아, 바꿔” 이렇게 혼냅니다.

    편집자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는 첫 독자, 첫 비평가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한테는 출판사가 필요하다기보다 안정된 편집자 한두 명과 시리즈를 계속 할 수밖에 없으니까 파트너십으로 가야하는 측면이 있는 거지요.

    -작가로서 굉장히 전략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해 안되는 인물한테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을 보면, 마케팅에서 페르소나를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현실에 팔릴 수 있는 걸 만들 수 있는 접근법이다. 그런 건 어떻게 얻었나? 타고났나, 배웠나?

    음, 제가 전략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트렌드라고나 할까, 제 작품이 드라마가 되고 하니까, 어떻게 그런 걸 읽는지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트렌드를 안 읽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구상하는 건 보통 3년 전입니다. 이번 작품 ‘목격자들’은 오히려 특별한 경우입니다. 보통은 3, 5년 전에 생각하는 건데, 그런 문제들이 인간의 본질적인 의문 같은 걸 건드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얼마나 절망해야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할까, 이런 게 본질적인 질문인 겁니다. 이 공간에 살고 있는데 얼마나 멀리까지 가볼 수 있나, 이런 질문들.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기본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장르가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 멜로, 이런 건 추리, 또 이런 건 판타지로 가는 게 맞겠다거나, 그 형식에 맞춰서 대사를 바꾸는 겁니다. 저는 로버트 드니로 같은 배우를 닮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드니로를 보면 역할에 따라 눈빛부터 달라지고 손 동작이나 버릇도 달라집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 김탁환

    ‘치밀한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작가. 1968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해군사관학교 국어교수, 건양대학교 문학영상정보학부 전임강사,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부교수를 지냈다.

    기록에 입각한 고증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역사 소설을 많이 써 왔다. 주요작으로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노서아가비’ ‘허균 최후의 19일’ ‘압록강’ ‘독도 평전’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 ‘열녀문의 비밀’ ‘목격자들’ 등이 있다. ‘나, 황진이’ ‘불멸의 이순신’ ‘열녀문의 비밀’ 등은 드라마나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그 밖에 문학 비평집 ‘소설 중독’ ‘진정성 너머의 세계’ ‘한국 소설 창작 방법 연구’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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