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아 브랜드와 제품 이미지.


그 만남은 잘못됐다.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5년간이었다.
전통의 구두명가와 떠오르는 사모투자펀드(PEF)의 제휴는 결국 실패였다. 상처는 컸다.

지난 2009년 8월 전통의 구두 명가(名家) 에스콰이아(2011년 EFC로 사명 변경)는 사모투자펀드인 H&Q아시아퍼시픽(이하 H&Q)에 인수됐다. 인수자금은 약 800억원.

에스콰이아 투자 전까지만 해도 H&Q는 PEF 업계의 대표적인 모범생 중 한 곳으로 꼽히던 곳이었다. 국민연금의 자금을 투자받아 2005년 조성했던 1호 펀드는 원금대비 두 배가 넘는 수익을 내면서 조기 해산하는데 성공했고, 2010년 900억원을 투자한 하이마트도 2년 뒤 두 배에 가까운 1604억원에 되팔아 역시 높은 성과를 거뒀다. 1호부터 3호 펀드까지 총 11개의 회사에 투자해 6곳을 회수하면서 H&Q가 기록한 수익률은 연 평균 25%에 이른다.

문제는 두번째 바이아웃 투자(경영난에 빠진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인 뒤 높은 값에 재매각해 수익을 얻는 투자) 대상이었던 에스콰이아였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백화점과 직영점을 중심으로 한 판매망도 탄탄했고, 보유한 부동산도 많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다 알 만한 전통의 브랜드 가치였다.

50년간 구두를 만들며 쌓아온 기반에 그 동안 높은 투자성과를 냈던 능력있는 PEF의 경영능력이 어우러져 회사는 얼마 안 가 부활에 성공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PEF로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에도 회사는 줄곧 실적 부진과 부채 문제에 허덕이다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 50년 전통의 ‘토종 구두 名家’ 투자, 시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에스콰이아는 1961년 고(故) 이인표 창업주가 서울 명동에서 설립한 뒤 197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내 대표적인 토종 구두 브랜드로 올라섰다. 특히 여성용 구두에서 높은 이익 점유율을 기록했던 에스콰이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영에이지와 비아트, 소르젠떼 등의 신규 브랜드와 잡화, 젊은 층을 겨냥한 캐쥬얼 제품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회사 규모를 키워갔다.

H&Q가 처음 에스콰이아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던 것도 이 같은 전통의 브랜드 파워를 눈여겨 봤기 때문이었다. 한 제화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 부동산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면서 과도한 부채를 짊어진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실적이 악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충분히 회생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자산 가치도 눈여겨 볼 만했다. H&Q로 경영권이 넘어갈 당시 에스콰이아는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본사 사옥과 경기도 성남 소재 본사 공장을 포함해 수백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H&Q는 인수 이듬해인 2010년 성수동 본사 사옥을 300억원이 넘는 가격에 프로야구 선수인 이승엽씨(삼성 라이온즈)에게 매각해 부채 규모를 줄이기도 했다.

2010년 프로야구 선수 이승엽씨가 매입한 서울 성수동 소재 옛 에스콰이아 사옥 건물.

경영권 인수 뒤 초반에는 실적도 괜찮았다. 2009년 1024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이듬해 1516억원으로 늘었고 2011년에는 2000억원을 넘어섰다. 2009년 6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2010년에는 13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에스콰이아의 실적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1년 2036억원이던 매출액은 이듬해 1803억원으로 감소했고, 2013년에도 1562억원으로 줄었다.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냈고, 당기순손실 규모도 같은 기간 118억, 130억원으로 증가했다.

◆ 제화업계를 이해 못한 PEF & PEF를 믿지 못한 에스콰이아 사람들

H&Q 인수 이후 5년간 에스콰이아 실적 추이(붉은색 괄호는 손실)

H&Q의 에스콰이아 경영은 바이아웃 투자에 나서는 다른 PEF들의 경영전략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됐다. 보통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PEF들은 외부에서 능력있는 경영진을 새로 영입해 회사의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하는데, H&Q 역시 에스콰이아의 수뇌부를 외부에서 수혈해 새롭게 회사의 경영 방향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제화업계에서는 이 같은 H&Q의 경영진 교체작업이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주장이 많다. 제화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갖춘 인력이 아닌, 업종과 회사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타 업종의 경영진을 영입해 효과적인 경영전략을 짜는데 실패했고, 이로 인해 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분석이다.

경영권 인수 뒤 높은 가격에 되팔기 위해 단기적인 실적 개선과 규모 키우기에 주력했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 내부 직원들이나 하청업체 등과의 신뢰가 깨졌고, 결국 경영 실패에 이르고 만 것이다.

① 화장품 업체 출신을 CEO로 영입…禍가 된 홈쇼핑 판매

2009년 H&Q가 에스콰이아를 인수한 뒤 처음으로 CEO에 취임한 사람은 조원익씨였다. 생활용품과 화장품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LG생활건강에서 생산기술과 마케팅부문 임원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제화업계에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생산 관리와 마케팅에서 일한 경험을 눈여겨 보고 선택한 영입이었다.

조 사장은 취임 이후 매출액을 늘리며 회사 규모를 키우는데 성공했다. 그 동안 백화점과 직영 판매점 등에서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판매 방식을 변경, 홈쇼핑 판매를 시작하면서 판매량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판매량 증대를 위해 선택한 홈쇼핑 판매는 시작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구두는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사이즈를 재고, 제품을 사도 반품이 많아 재고율이 높은 품목에 속한다. 그런데 홈쇼핑을 통해 직접 구두를 신어보지 않고 구매한 소비자들로부터 반품 요구가 크게 늘면서 결국 판매량이 ‘반짝’ 증가한 뒤 재고 부담에 허덕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오프라인 매장에 비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 가까이 가격이 저렴한 홈쇼핑 판매로 인해 백화점과 직영 매장에서의 판매가 부진해지는 부메랑도 맞게 됐다. H&Q로 경영권이 넘어가기 전 경영진이 홈쇼핑 판매를 고심했지만, 결국 포기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결국 반품률이 50%를 넘어서게 되자, 에스콰이아는 2년여만에 홈쇼핑 판매를 중단했다.

조 사장 이후 새롭게 영입된 구원투수도 제화업계에서 경험이 적은 김락기씨였다. 김 사장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와 의류업체인 EXR 등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구두 브랜드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김 사장은 2012년 5월 CEO로 취임한 뒤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3년 1월 정휘욱 전무에게 다시 바통을 넘기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② 안 사람, 바깥 사람을 챙기는데 실패…노조·협력업체와의 관계 악화로

에스콰이아는 직접 생산과 하청 생산을 동시에 하는 회사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공장에서 주요 브랜드를 생산하면서 인근의 하청업체들을 통해서도 제품을 조달받고 있다. 이 때문에 생산 조직을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돼 있으며, 오랜 기간의 하청 생산을 통해 제품별로 생산업체들도 명확히 구분돼 왔다.

제화업계에서는 H&Q로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 이처럼 구획 정리가 돼 있던 생산 시스템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주장이 많다. 성남 공장에서의 생산 라인을 줄였고, 제품별 등급으로 나눠 관리했던 하청업체들도 등급과 관계없이 시기에 따라 하청을 주기 시작하면서 안정적으로 이뤄지던 제품 생산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에스콰이아의 한 퇴직 직원은 “H&Q는 경영권을 인수하고 약 3년이 지난 뒤부터 새로운 인수자를 찾기 시작하면서 구조조정 차원에서 성남 공장의 생산라인을 줄이기 시작했다”며 “그 결과 에스콰이아가 가장 강점을 갖고 있던 여성용 구두 생산라인이 사라지면서 제화업계에서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게 됐다”고 주장했다. 에스콰이아는 또 2013년에는 전 직원의 35%를 희망퇴직시키는 과정에서 노조가 파업을 벌이며 생산 중단에 이르기도 했다.

에스콰이아 하청업체 대표들이 금융감독원 앞에서 외담대 관련 시위를 하는 모습.

경영권 인수 전 오랜 기간 거래했던 하청업체들과의 관계에서도 몸살을 앓았다. 홈쇼핑 판매 후 단기간에 물건을 싸게 대량으로 공급받기 위해 새롭게 하청업체들을 모집하면서 기존에 물품을 공급하던 업체들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이다. 제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루에 업체별로 20켤레를 만들기도 버거운 고급화를 100켤레 가까이 찍어내는 중저가화 업체가 만들게 되면 제품의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홈쇼핑 판매 이후 반품율이 크게 높아진 데는 하청업체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 저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청업체들에 대한 대금을 ‘외상매출채권 담보 대출(외담대)’이라는 불안정한 방식으로 지급하면서 하청업체들과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외담대란 물품을 납품받은 기업(원청업체)이 '조만간 우리가 지급할 대금이 있다'는 일종의 보증서를 하청업체에 발급하면, 하청업체가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현금을 미리 대출받아 쓰는 금융상품이다. 원청업체가 만기일에 하청업체에 줘야할 물품 대금을 은행에 지불하면 거래가 마무리되지만, 만약 경영에 문제가 생겨 은행에 돈을 넣지 못하면 빚을 하청업체가 떠안게 된다. 실제로 에스콰이아가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약 160개의 하청업체들은 289억원에 이르는 외담대 폭탄을 맞았다.

③ 비용 절감의 실패…마케팅·R&D 투자 늘렸더라면

에스콰이아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H&Q의 비용 절감도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값싸게 대량 생산을 하는 방향으로 하청 시스템을 조정하고 홍역을 치르며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비용 절감에 나서긴 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에서 이렇다 할 명분이 없는데 돈을 쓰면서 제대로 비용 관리를 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에스콰이아는 2010년 성수동 본사를 매각한 뒤 한 동안 성남 공장을 본사로 썼다. 그러나 2013년 역삼동 건물을 임대해 본사를 이전했다. 제화업계의 특성상 유행을 가장 발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디자이너를 영입하는데도 용이한 강남을 본거지로 둬야한다는 것이 이전의 이유였다. 역시 성남 공장에 있던 물류창고도 비슷한 시기 경기도 여주로 이전했다.

역삼동 사옥과 경기도 여주 창고의 임대료는 매달 약 3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본사와 물류창고 이전 뒤에도 성남 공장의 빈 공간은 계속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상태로 남았다. 한창 비용을 줄여야 될 시기에 본사와 창고 이전으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매달 수억원씩 나가게 된 셈이다. 에스콰이아 법정관리인 측의 한 관계자는 “재매각을 해야 하는 PEF의 입장에서는 강남 사무실과 대규모 아울렛이 인근에 있는 여주에 창고를 두는 편이 회사 이미지를 개선해 새 인수자를 찾기에 더 쉽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PEF 업계에서는 H&Q가 무리한 홈쇼핑 판매와 인력 구조조정, 본사와 창고 이전 등에 투입했던 비용을 마케팅과 연구개발(R&D), 디자인 등에 투자했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냈을 수 있다고 보는 분석도 많다. 에스콰이아의 재무제표상 광고선전비는 2011년 15억원에서 2012년에는 8억9902만원, 2013년 8억7523만원으로 감소했다. R&D 비용이 포함된 경상개발비도 2011년 6억2907만원에서 이듬해에는 절반에 못 미치는 3억2528만원으로 크게 줄었고, 2013년에도 변함이 없었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 에스콰이아의 점유율이 줄어든 것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지나친 상품권 남발로 브랜드의 고급스런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라며 "H&Q가 인수 뒤 공격적인 마케팅과 R&D 투자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했다면 경쟁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끝나지 않은 갈등… "PEF 위기관리 능력 검증하는 계기 될 것" 관측도

지난해 법정관리가 결정된 이후 사실상 에스콰이아는 H&Q의 손을 떠난 상태다. 에스콰이아가 짊어진 부채 규모는 약 1100억원. 업계에 따르면 패션그룹 형지가 약 700억원에 에스콰이아를 사들일 예정이다. 채권단 가운데 은행은 물론 284억원의 외담대를 떠안은 하청업체들 역시 손실을 피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하청업체들로 이뤄진 채권단과 H&Q 사이에서는 법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하청업체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원이 H&Q가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받는 관리보수에 대한 가압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에스콰이아 투자와 경영 실패가 법정관리 이후에도 H&Q에 계속해서 오점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비록 에스콰이아에 대한 바이아웃 투자가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H&Q가 운용 중인 2호 펀드 전체가 손실을 입고 해산되는 것은 아니다. 수익률이 낮아지게 됐지만, 이전에 진행한 투자를 통해 이미 높은 성과를 거둔 상황이기 때문이다. H&Q는 지난 2010년 하이마트에 약 900억원을 투자한 뒤 2012년 지분을 매각해 원금의 두 배가 넘는 1806억원을 회수했다. 2호 펀드를 통해 투자한 메가스터디와 하나마이크론 등을 성공적으로 매각할 경우 성공적으로 펀드를 해산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PEF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마트를 통해 높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에스콰이아 투자 실패로 2호 펀드가 큰 위기에 몰린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지분 투자 성공으로 쌓았던 평판에 큰 흠집이 생기는 것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이번 투자 실패가 PEF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다 면밀히 검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