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한 대낮, 사방엔 천적인 새들이 날아다니는데 보란 듯 나뭇잎을 기어오르는 정신 나간 애벌레가 있다. 몸 안에 침입한 바이러스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이른바 '좀비(zombie)' 애벌레〈사진〉다. 네덜란드 와게닝겐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배큘로바이러스(baculovirus)에 감염된 애벌레는 평소와 달리 빛을 따라 움직이는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배큘로바이러스는 주로 나방 애벌레에 감염하는 막대 모양의 바이러스다.

원래 애벌레는 빛을 꺼린다. 특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번데기가 되기 직전에는 땅이나 나무껍질 사이로 몸을 숨긴다. 반면 배큘로바이러스에 감염된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기 직전에 높은 곳의 나뭇잎으로 올라가 그곳에 매달려 죽는다. 애벌레의 몸이 녹아 흘러내리면 그 아래 다른 애벌레들이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연구진의 관찰 결과, 애벌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사흘 뒤부터 빛을 비추면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조명을 끄면 이동을 멈췄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애벌레의 빛에 대한 반응 형태를 바꿔 자손을 퍼뜨리기 쉽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햇빛을 따라가면 높은 곳으로 가기 마련이다. 빛을 따라가는 행동은 14시간 동안 지속됐다.

고공(高空)으로 행진하는 것은 좀비류의 특징이다. 버섯 포자에 감염된 좀비 개미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나뭇잎을 물고 죽는다. 버섯이 개미의 머리를 뚫고 나와 포자를 퍼뜨리면, 그 아래를 지나가는 개미가 다시 좀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