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차로 3시간 30분을 달리자 필리핀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자유무역지대가 나타난다. 한진중공업이 2009년 수빅조선소를 세운 곳이다. 언덕배기의 도로를 돌아나오자 삼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 위에는 이미 건조가 완료된 몇척의 선박이 떠있었다.
버스로 몇 분을 더 달리자 드디어 수빅조선소 육중한 정문이 보였다. 정문 뒤편으로는 건조가 거의 끝난 9000TEU급(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이 눈에 들어왔다. 필리핀의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지프니가 곳곳에 보이는 것만 빼면 흡사 거제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진규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사장은 25일(현지시각) 수빅조선소 안에서 진행된 오찬간담회에서 수빅조선소의 본격적인 도약이 시작되고 있다고 밝혔다.
안진규 사장은 “수빅조선소가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그동안은 영도 시절에 수주했던 작은 선박들만 건조했지만, 올해부터는 수빅으로 옮긴 뒤 수주한 대형 선박들이 본격적으로 건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한창 마무리 건조 작업이 진행 중인 9000TEU급 컨테이너선을 가리키며 대형선박 건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사장이 가리킨 곳에선 컨테이너선 2척이 한창 마무리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이 수주한 4척의 9000TEU급 컨테이너선 가운데 먼저 인도될 예정인 2척이었다.
인도를 한 달여 앞둔 컨테이너선은 도크에서 마무리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점심시간을 막 마친 필리핀 직원들이 버스를 타고 도크까지 이동해 서둘러 작업에 복귀하고 있었다. 도크 주변에는 적도의 뜨거운 햇빛과 우기의 비를 피하기 위해 마련된 가림막들이 있었다.
수빅조선소 안쪽으로도 여러척의 배가 건조 중이었다. 특히 한진중공업은 최근 건조가 시작된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을 강조했다. 한진중공업이 1만TEU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국내 3대 조선소만 가능했던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장 진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진중공업의 영도조선소는 부지가 협소해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가 없었다. 영도조선소에서 건조한 가장 큰 선박은 6000TEU급이었다. 도크 길이가 짧기 때문에 이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여력이 안됐다.
반면 수빅조선소는 길이 500m에 너비 135m에 이르는 도크 2개를 보유하고 있다. 도크 하나만 해도 1만8000TEU급 이상의 컨테이너선까지 건조할 수 있는 규모다. 이 2개의 도크에서 1만1000TEU급 컨테이너선이 건조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수빅조선소에서는 모두 15척의 배가 건조 중이었다. 암벽에 9척의 선박이 있었고, 도크 안에 6척의 배가 있었다. 수빅조선소 전체 넓이는 300만㎡로 규모만 놓고 봐도 국내 3대 조선소 못지 않다.
대형선박 건조가 가능해진 덕분에 수빅조선소의 수주 실적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수빅조선소는 완공 전인 2007년부터 선박 건조를 시작해 올해 10월까지 다양한 종류의 선박 68척을 건조했다. 육상플랜트나 해상플랫폼 7기도 인도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수빅조선소는 올해 8월에 누적 수주량 100척을 돌파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수빅조선소 누적매출액 50억달러도 넘어섰다. 10월말 기준으로 수빅조선소는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이 발표한 수주잔량 기준 전세계 조선소 순위에서 15위에 올라있다.
안 사장은 “앞으로 수빅조선소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조선부문 핵심사업장으로 육성하려고 한다”며 “영도조선소는 고기술 특수선에 집중하는 투트랙 전략을 통해 세계적인 조선사로 재도약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