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큰손들]③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배워갔던 '백 할머니'

조선비즈
  • 하진수 기자
    입력 2014.10.31 07:02

    1970년대 말. 매일 증권사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노인이 있었다. 키는 어림잡아 150㎝ 정도 안팎으로 작고 뚱뚱한 노인이었는데, 노인은 한 손에 영국 타임스지(the Times)를 들고 증권사 객장에 앉아 한참 동안 시세판을 바라보곤 했다. 남루한 옷차림에도 영문 잡지를 술술 읽어내려가며 경제 흐름을 꿰뚫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백 할머니’라고 불렀다.

    본명보다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고(故) 백희엽 여사는 평양 대지주의 딸로 태어났다. 일찌감치 건설주를 사들였던 백 여사는 1970년대 중반 오일달러로 무장한 건설주들이 증권 시장에서 널뛰기하면서 단번에 증권가의 큰손 반열에 올랐다. 건설주로 이른바 대박을 거머쥐긴 했지만, 과거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백 여사가 아주 모범적인 투자가였다고 말한다. 요즘 말하는 가치투자를 몸소 보여줬다는 평가도 전해진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학생 때 따라다니며 배워

    삼보증권(현 대우증권) 회장과 증권업협회장을 지냈던 강성진 전 B&G증권 명예회장은 백 여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라고 회상한다. 강 전 회장은 “백희엽씨는 삼보증권의 단골 고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라며 “그녀는 반드시 우량기업에만 투자하고 한번 투자하면 적어도 2~3년은 보유할 정도로 아주 정석 투자자였다”고 말했다.

    강 전 회장에 따르면 백 여사는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같은 재무제표를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기업 관련 정보에 대한 해석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부동산과 같이 확실한 핵심 자산이 있거나, 순이익을 꾸준히 내는 기업을 좋아했다. 일찍부터 ‘자산주’나 ‘가치주’에 대한 투자를 즐겼던 셈이다.

    백 여사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박 회장은 대학원생 시절 백 할머니라는 분이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백 여사를 찾아갔다. 증권거래소는 1979년 7월 여의도로 이전하기 전까지 명동에 있었다. 이 때문에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이라고 하면 보통 주식 시장의 큰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박 회장은 백 여사에게 대뜸 ‘주식 투자를 좀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다음은 박 회장이 회고록과 과거 인터뷰 등을 통해 했던 말이다. “어찌어찌하다가 백 할머니 뒤를 따라다니게 됐습니다. 할머니 사무실로 출근하고 증권사나 기업체 방문 때 동행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분께서 정석 투자만 하는 거예요.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광화문 곰’(조선비즈 2014년 10월 24일 자 ‘한국의 큰손들’ 기사 참조)하고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 회장에 따르면 백 여사는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기업이나 수익성이 좋은 기업 주식만 골라서 사들였다. 한 번 사들이 주식은 2년이고 3년이고 기다렸다가 주가가 오르고 매수 대기자들이 나타나면 비로소 차익 실현에 나섰다. 박 회장은 백 여사의 이러한 투자 방법을 보면서 우량주는 반드시 제 몫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너덜너덜 해어진 옷에 자장면만 먹을 정도로 검소

    백 여사는 1960년대 말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백 여사는 대지주의 딸이었지만, 급히 피난을 오는 통에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백 여사는 첫 둥지를 틀었던 부산에서 페니실린과 같은 의약품을 판매해 종자돈을 마련한 후 대구에서 군복 장사를 통해 돈을 불렸다고 한다. 주식투자는 이때 사업을 해서 번 돈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1960년대에 이미 수백억원대의 현금을 보유했던 거부였으면서도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다. 강성진 전 명예회장은 “백 여사는 1970년대 초 삼보증권(현 대우증권)의 지분을 10%나 소유한 2대 주주였으면서도 점심은 항상 자장면만 먹을 정도로 검소했다”며 “광화문 곰과 백 할머니는 주식시장에서 현금 부자로 매우 유명했다”고 말했다. 백 여사는 수입 물품을 끔찍이도 싫어했다고 한다.

    백 여사는 백선엽 전 육군 참모총장 겸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의 사촌 누나이기도 하다. 백 여사의 장남인 박의송씨는 삼보증권 상무이사를 거쳐 1990년대 중반 우풍상호신용금고 회장을 지냈다. 증권가의 신화로 통했던 백 여사는 1992년초 중풍으로 쓰러진 뒤 병마와 싸우다 1995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백 여사가 타계했을 당시 언론에서는 백 여사의 실물자산만 200억원 규모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우량주에만 투자했기 때문일까. 백 할머니는 광화문 곰과는 다르게 크게 실패하지 않고 증권가를 떠날 때까지 그 명성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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