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나이 따지지 않고 모였다, 창업 도전이 시작됐다

조선일보
  • 이인묵 기자
    입력 2014.10.17 03:08

    대학생 모여 SW 개발하는 '해커톤' 행사
    소프트웨어 실력 나누자는 취지서 시작
    카이스트 등에서 선발된 186명의 대학생
    한달 동안 서로 도와가며 서비스 개발

    대부분 주목한 것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
    실제 경험서 나온 아이디어로 큰 성과

    한 무리 대학생들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서두르자는 고함이 터져나오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서울 역삼동 구글 코리아 사무실에 퍼졌다. 이들은 대학생 소프트웨어 개발 동아리 '멋쟁이 사자처럼'이 주최한 해커톤에 참여한 학생들이었다.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긴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행사를 이르는 말이다. 모임에 참가한 140여명의 학생들은 지난달 27~28일 이틀 동안 하루에 8시간씩 16시간에 걸쳐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대학생 소프트웨어 개발 동아리 ‘멋쟁이 사자처럼’이 개최한 해커톤이 서울 역삼동 구글 코리아 사무실에서 열렸다. 참가한 학생들은 2일에 걸쳐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학생 소프트웨어 개발 동아리 ‘멋쟁이 사자처럼’이 개최한 해커톤이 서울 역삼동 구글 코리아 사무실에서 열렸다. 참가한 학생들은 2일에 걸쳐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어수웅(아주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 제공
    ◇내 개발 실력 나누자는 생각에 서울대에서 시작

    '멋쟁이 사자처럼'은 서울대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두희씨가 만든 동아리다. 이씨는 이른바 '김태희 사진 해커'로 유명하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시절, 교내 컴퓨터 시스템 약점을 지적하기 위해 배우 김태희씨의 학적부 사진을 해킹했기 때문. 그는 2013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방한해 서울대에서 강연을 했을 때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자퇴하는 게 나은가"라는 질문을 한 후 게이츠 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원을 자퇴한 후, 멋쟁이 사자처럼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시작했어요. 대학원을 관두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가진 소프트웨어 개발 실력을 다른 아이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에 학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한 열 명 모일까 싶었죠."

    하지만 이씨의 예상과 달리 수많은 학생이 몰리기 시작했다. 30명 제한에 200명이 몰렸다. 지난해 서울대 안에서만 운영한 1기 모임은 자기소개서 작성 도우미 서비스 '자소설닷컴', 대학생 과외 찾기 사이트 '스누티처' 등의 서비스를 낳았다. 학생들이 실제로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주효했다.

    ◇SW 공부하려는 사람보다, 뭐든 만들고 싶은 사람 모집

    올해 이씨는 구글 코리아의 후원을 받아 2기 모임을 시작했다. 서울대 포함, 수도권 대학과 카이스트 등 10여개 학교에서 148명 학생과 이들을 가르칠 38명의 학생 교사를 뽑았다. 전공, 나이, 성별 그 무엇도 따지지 않았다. 선발 기준은 하나. "뭔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씨는 "막연히 소프트웨어 개발을 배우고 싶은 사람보다, 만들고 싶은 것은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몰라서 못 만드는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7월부터 학교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모여서 전공자인 선생들이 총 16차례에 걸쳐 소프트웨어를 전혀 모르는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9월부터 직접 서비스 만들기를 시작했다. 이날 해커톤은 한 달 남짓 걸린 개발을 마무리하는 모임이었다. 학생들은 공들여 만든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공을 들였다.

    ◇한 달 만에 서비스 완성… 일부는 창업으로 이어져

    28일 오후 6시. 학생들은 이틀에 걸친 해커톤을 마무리하고 자신들이 만든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학생들이 만든 서비스는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비전공자가 단 두 달을 배워 한 달 만에 개발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목표를 가지고 만들다 보니 막연히 소프트웨어를 공부하는 것에 비해 훨씬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이 대부분 주목한 것은 또래 대학생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였다. 세입자들이 직접 자신이 살아본 원룸을 평가하는 서비스 '룸코멘터'를 만든 백경(서울시립대 제품디자인과)씨는 "부동산이나 집주인이 하는 좋은 말에 늘 속다 보니, 진짜 거주자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집 구하면서 고생한 경험을 살린 것이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만 이미 창업을 생각하는 팀도 나타났다. 서울대·연세대 연합 팀이 만든 '대학 축구 리그' 서비스는 대학 내에서 이뤄지는 축구 리그 관리 서비스다. 경기 결과를 기록하고, 개인별 성적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이미 서울대 축구 리그와 계약을 마치고, 내년 2월 서울 시대 다른 대학 리그와 연결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 서비스를 기획한 강현욱(서울대 사회학과)씨는 "이 모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디어밖에 없던 것이 실제 개발자를 만나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과 진로 정보 시스템 '잡켓'을 만든 경희대팀도 창업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

    모임을 후원한 구글 코리아의 권순선 부장은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투자자를 만날 기회도 만들어 줄 것"이라며 "하지만 이들이 굳이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모임에서 쌓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가 어디에 가서든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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