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커스] 四面楚歌(사면초가), 눈물 나는 정유업계

조선일보
  • 진중언 기자
    입력 2014.04.09 03:04

    [1분기 영업이익 65% 감소 예상, 최악 실적에 잔인한 봄날]

    美 셰일가스 열풍과 油價 안정에 한국 정유업계는 정제 마진 감소
    페트병 원료로 쓰이는 PX값 급락… 돈 되던 사업이 공급 과잉으로
    업계 "정부의 시장 개입 지나쳐"

    국내 정유업계가 심각한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주력 사업인 정유 부문(석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을 만들어 파는 사업)의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최근 투자를 집중한 석유화학 부문(합성섬유와 각종 화학제품의 원료를 만드는 부문)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중국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열풍도 국내 정유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거리로 나선 주유소협회… 한국주유소협회 소속 회원 1500여명은 8일 국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알뜰주유소를 통한 시장 개입, 거래 상황 주간보고 등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리로 나선 주유소협회… 한국주유소협회 소속 회원 1500여명은 8일 국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알뜰주유소를 통한 시장 개입, 거래 상황 주간보고 등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사면초가(四面楚歌)'를 연상케 하는 정유사들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은 실적으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은 모두 당기순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 1분기 상황은 더 나쁘다. 최지환 NH농협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3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5%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셰일가스 열풍이 불러온 실적 악화

    정유업계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과 원료인 원유의 가격 차이를 뜻하는 정제마진이 줄어든 탓이다. 두바이 원유의 복합정제마진은 2011년 1배럴당 5.79달러에서 2012년 5.34달러, 2013년 4.55달러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유사들이 "주유소에서 기름 팔아서는 먹고살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실제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 부문 영업이익(596억원)은 전년보다 78%나 줄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정유사업은 2012년부터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유 4사 전년대비 순이익 증감 그래프
    정제마진 축소는 글로벌 에너지업계에 부는 '셰일가스 붐'과도 관련이 있다. IBK투자증권 이충재 연구원은 "정제마진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셰일오일·셰일가스로 힘을 얻은 미국의 정유제품 수출 물량 증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초 "미국 정유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셰일가스가 국제 유가 하향 안정세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내 업계로는 정제마진 축소 등의 간접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페트병 때문에 우는 까닭

    정유사들의 고민은 석유사업 부진을 상쇄해주던 화학사업의 시황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라자일렌(PX) 사업이다. 화학섬유(폴리에스터)와 페트(PET)병 원료로 쓰이는 PX는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넘쳐 정유사들의 '캐시카우(Cash Cow·현금 창출 근원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정유 부문에서 돈을 까먹어도 화학 쪽에서 만회가 가능했다. 돈이 되다 보니 PX 사업에 투자를 집중했다"고 말했다.

    정유 4사 2013년 실적 정리표
    그러나 올해 들어 시장 상황이 급변했다. 작년 2월 1t당 1678달러를 찍었던 PX 가격이 올해 들어 급락하더니 7일 현재 1194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기 회복 둔화로 수요가 줄어든 탓에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 올해 국내 업체들은 총 330만t 규모의 PX 증설이 예정돼 있지만, 현재도 공급과잉으로 공장 가동률을 줄이는 상황이다. 삼성증권 김승우 연구원은 "PX 공급과잉 국면이 최소한 1년 정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개선해야"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실적 악화를 거든다는 의견도 있다. 알뜰주유소의 확대, 전자상거래제 도입 등이 기존 정유사들의 손발을 묶고, 석유 유통시장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주유소 간 거리 제한과 가격고시제 등을 폐지해 업계를 경쟁 체제로 내몰았던 정부가 이제는 알뜰주유소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주간거래상황 보고 등 규제만 강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독점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 시작한 석유 전자상거래제 역시 일부 수입사들의 탈세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알뜰주유소를 석유공사에서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키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