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36시] 주당 100시간 근무…"환자 오면 자다가도 벌떡"

조선비즈
  • 이주연 기자
    입력 2014.04.07 10:53 | 수정 2014.04.08 09:32

    지난달 10일 파업에 동참한 전공의들이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모여 처우 개선과 의료 정책 등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DB

    “몇 년 전 방송국 막내작가가 주당 평균 70시간 넘는 노동에 시달리다 자살한 적이 있죠? 저는 일주일에 110시간 넘게 일하는데 잘못된 게 아닌가요? 지난달에 동기가 더는 못하겠다며 도망갔길래 잡으러 다녀왔어요. 한 명이 나가면 남은 사람들이 더 힘들어 지니까요.”(대학병원 레지던트 2년차 A씨)

    “보통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해요. 그런데 밤에도 매 2시간마다 입원한 환자 40여명의 혈압 등을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달려가야 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자는 게 아니죠. 겨우 밥 먹으러 갔다가도 다시 뛰어가요. 누군가 쉴 때 남은 사람에게 일 로딩이 많아지니까 쉴 수 없어요.”(대학병원 인턴 B씨)

    “바빠서 3일 동안 밥을 못 먹은 적이 있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시키는 걸 해야 하니까 정신이 몽롱해져 사고낼까봐 겁이 났죠. 근무시간이 정해지고 지켜져야 하는데 병원에서 전공의에게 시키는 일에는 제한이 없어요. 선배 의사나 간호사, 의료기사 등도 전공의는 막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대학병원 레지던트 2년차 C씨)

    “의사들 성격이 괴팍한 이유가 잠잘 시간도 없이 바빴던 전공의 시절 때문이란 얘기가 있어요. 환자가 엉뚱한 소릴 하거나, 간호사가 가벼운 실수만 해도 분노를 느껴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거죠. 이렇게 바쁜데 당신 때문에 귀중한 시간이 날라가잖아. 점차 상처를 받거나 성격이 나빠지죠.” (전문의가 된 내과원장 D씨)

    전국 1만7000여명의 전공의들은 지난달 의사 파업이란 태풍의 핵이었다. 집단 휴진을 강행한 대한의사협회에 면허 취소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서던 정부는 대학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파업 동참을 잇따라 밝히자 협상카드를 제시했다. 특히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빅5병원 전공의들의 동참이 주효했다.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파업하면 의료대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교수는 “대학병원의 진료는 팀워크로 이뤄지는데 초기 대응부터 수술 보조, 응급 처치 등을 하는 전공의가 빠지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져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응급환자나 중환자에게 매달리면 일반 외래진료는 닫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전공의들이 병원의 만류에도 파업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강도 높은 근로시간이 컸다. 주5일 근무가 보편화된 시대지만 국내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은 주당 평균 100시간에 달한다. 부르면 언제든 뛰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병원 근처에 산다.

    일반 근로자에게 오프(Off)는 휴일을 의미하지만, 전공의들에게 오프는 정규근무가 끝나고 퇴근했다가 다음날 출근하는 날을 말한다. 오프가 아닌 당직일에는 36시간 연속 근무를 한다. 예컨대 아침 8시부터 근무를 시작했다면 다음날 밤 8시까지 근무하고, 다음날 다시 8시부터 근무하는 것이다. 이런 당직을 대부분 일주일에 3번씩 오프-당직-오프-당직으로 ‘퐁당 퐁당’ 선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 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E씨. 이 병원의 외과 전공의 정원은 원래 8명이지만 지원자가 없고, 있던 이들도 중도 포기하고 나가 혼자 남았다. 1~2년차가 해야 할 일도 모두 그의 몫이다.

    E씨의 하루는 새벽 4~5시쯤부터 입원한 환자의 밤사이 상태 등 경과를 기록하고, 입원 병동을 돌며 소독을 다시 해주는 등 기본 처치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전날 수술한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등을 정리해 다른 의사들에게 나눠준다. 이를 토대로 컨퍼런스 회의가 열리고, 아침 7시가 되면 교수와 회진을 돈다.

    아침 8시부터는 본격적인 근무가 시작된다. 수술할 환자에게 다른 질병 등 문제가 없는지 살핀 뒤 관련 진료과 교수들을 찾아 수술해도 좋다는 사인과 보호자 동의서 등을 받아 수술실로 데려온다. 수술실에서는 기본 소독부터 교수의 수술 보조까지 다양한 일을 맡는다.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맡고 있든지 간에, 응급실이나 입원 병동의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이 오면 그때마다 달려가 처치해야 한다. 외래 진료와 수술이 끝나는 시간은 대략 오후 5~6시. 이때부터 맡은 환자에게 영상검사나 수술실을 허가해달라는 등의 요청을 한다.

    저녁 7시쯤에는 교수와 다시 회진을 돌고, 8~9시쯤 응급환자가 없다면 밥을 먹을 수 있다. 중환자실 안에 있는 의국에서 도시락을 주로 먹는다. 음식을 시켰는데 배달되는 동안 환자가 생겼다고 연락이 와서 못 먹는 일이 부지기수다. 여기 저기 뛰다가 밤 12시에서 새벽 1시쯤이 되면 잠시 잠이 들어갔다가 연락이 오면 다시 달려간다.

    E씨의 당직은 한달에 거의 30번. 그는 “중간 중간 선배 의사나 다른 진료과 전공의가 대신 당직을 서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제 책임이어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쉴 때는 저널이나 환자 케이스 발표 등을 준비한다.

    특별히 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등이 더 바쁘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는 혹독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전공의들이 이처럼 일하고 병원에서 받는 연봉은 5년간 평균 약 3000~3500만원 수준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의대 학부 6년을 거친 전공의들은 인턴 1년에 레지던트 4년을 거쳐야 한다.

    장성인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전공의들도 근로자인데 왜 노동법 기준을 따를 수 없는지 비정상이 아닌가”라며 “의료시스템과 기술은 세계 톱이지만 전공의 수련환경은 최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지던트 1년차의 중도 포기율은 2012년 6.3%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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