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사이드] "한국 펀드수 3400개? 펀드 장사꾼들만 돈벌어"

조선일보
  • 김은정 기자
    입력 2014.03.11 03:04

    [장기투자 전문가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여의도 떠나 北村 반지하에 둥지
    "기업 지배구조 나쁜 회사엔 절대 투자하지 않아요
    월급 모아선 노후대비 못해… 커피 먹을 돈 아껴 주식 사세요"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감사원 방면으로 1㎞쯤 올라가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북촌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한옥과 카페가 묘하게 어우러진 이곳에 지난해 말, '돈 굴리는 회사'가 은근슬쩍 둥지를 틀었다. 메리츠자산운용이다. 회사는 신축건물 반지하에 입주했다. 존 리(56) 대표는 책상 하나로 꽉 차는 조그만 방에서 일했다.

    "왜 모두 여의도에 모여 있어요? 소 보링(so boring·매우 지루하다). 우린 단타 매매에 관심 없어요. 본사(메리츠화재)에서도 제일 멀리 떨어져서 간섭 안 받아야 우리 철학대로 펀드를 굴릴 수 있잖아요. 처음엔 강원도에 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과격하다고 할까 봐 북촌에 왔어요. 임대료도 여의도 반값이고, 얼마나 좋아요?"

    1984년 미국 유명 투자회사 스커더인베스트먼트가 월가 최초로 한국 기업에 투자하려 만든 '코리아 펀드'를 10년 이상 운용한 존 리. 그는 2006년 고려대 장하성 교수와 손잡고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일명 장하성펀드)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라자드자산운용 전무까지 지내다 작년 말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맡으면서 6년 만에 한국에 왔다. 철저한 기업 분석을 통한 장기투자가 장기다. 기업지배구조가 나쁜 회사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는 철학도 뚜렷하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기업 지배구조가 나쁜 회사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며“그 회사에 직접 가보지 않고 투자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기업 지배구조가 나쁜 회사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며“그 회사에 직접 가보지 않고 투자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4개 자산운용사 가운데 수익률 기준 42위에 그쳤던 메리츠는 존 리 대표가 회사를 맡은 이후 3위로 수직 상승했다. /윤동진 객원기자
    "이게 정통 투자 기법인데, 한국에선 아직도 이게 특이하다고 그래요. 개인들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모여 한국 자산운용업계가 커졌지만, 펀드 장사꾼들 주머니로 돈이 다 들어갔어요. 국내에 출시된 펀드가 3400개(온라인 펀드 포함)가 넘는다니 말이 돼요? '0'이 하나 더 붙은 줄 알았어요. 한 회사가 한 개 펀드만 하고 철저히 책임을 져야지요."

    아직 판단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존 리의 메리츠자산운용은 성과를 내고 있다. 작년 수익률이 전체 44개 운용사 중 꼴찌 수준인 42위를 했던 메리츠가 연초 이후 3위(공모주식형 기준)까지 올랐다. 이 회사 대표 펀드이자, 유일한 펀드인 '메리츠 코리아 펀드'를 팔게 해달라고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들이 북촌 사무실을 찾고 있다.

    그는 '가치주' 펀드란 말도 꼭 맞지 않는다며, '베스트 아이디어 펀드'라는 새 장르를 들고 나왔다. 장기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사업구조가 지속 가능한지, 장기적으로 소외된 저평가 기업인지, 지배구조가 건전하고 경영진이 우수한지를 따져 기업을 고른다. 현재 펀드 설정액은 342억원 수준이다.

    "대한민국 1800개 회사 중에 우리 기준에 가장 좋은 회사를 60위까지 뽑고, 한 번 뽑으면 최소 5년은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른 펀드와 다르지요. 절대 고수하는 원칙은 회사에 직접 가보지 않고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거죠."

    최고경영자(CE0)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존 리와 함께 펀드를 운용하는 6명이 팀을 이뤄 연간 500~600개 기업을 직접 방문한다. 한 번 이상 가서 가장 위협이 되는 경쟁사는 누구인지 묻고, 협력사에 돈은 제대로 주는지, CEO 성품은 어떤지도 캐묻는다.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디스카운트(평가절하) 된다고 외치던 그의 눈에 최근 한국 기업 사정은 어떻게 비칠까. "6~7년 새 정말 많이 변했다. 예전엔 국민연금이 이 문제를 외면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고, 특히 오너들이 감옥 가는 것도 전에 없던 일 아니냐"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월급 모아선 절대 노후 대비 못 한다"며 이렇게 충고했다. "스타벅스 커피 사먹을 돈 아껴서 주식 사세요. 주식을 산다는 건 회사의 일부를 사는 거예요. 한국의 장래를 밝게 본다면 한국 기업 주식을 사야지요. 주식 투자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인데, 드라마에서 제발 주식하다 패가망신한 얘기 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존 리는] 월가 첫 한국펀드 운용 성공… 2006년 장하성펀드 운용도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난 존 리(John Lee·한국 이름 이정복)는 서울 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다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

    뉴욕대(NYU)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회계 법인 KPMG에서 7년간 회계사 경력을 쌓은 뒤, 유명 투자회사인 스커더인베스트먼트에 영입되면서 펀드매니저로 변신했다. 당시 월가의 첫 한국 투자 상품인 ‘코리아펀드’를 운용해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유명세를 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이 후진적 기업 지배 구조 때문이라면서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주목적으로 한 ‘장하성 펀드’ 운용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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