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최근 전력 분야와는 무관한 인사 3명을 사외이사에 선임하면서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3명 중 2명은 국회의원을 지냈고, 법조인 출신인 최교일 전 서울지검장도 전력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임원의 낙하산을 막겠다고 근절대책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전력만 구태로 역주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 전력 경험 無 낙하산 사외이사 우르르 선임한 한국전력
한전이 이번에 새로 선임한 사외이사는 최 전 서울지검장, 조전혁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이강희 전 의원 등 3명이다. 이들 3명은 모두 전력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조 교수는 경제학자 출신으로 선경경제연구소 금융경제실장, 인천대 동북아경제통상대 경제학과 교수 등을 지냈었다. 이후 뉴라이트 정책위원회 위원을 거쳐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18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긴 경력 어디에서도 전력산업과의 연관성은 찾을 수가 없다. 국회에서도 전력산업과는 관련 없는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이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이 전 의원은 인천항운노동조합에서 활동했고,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도 지냈다. 한국반공연맹 인천지부 운영위원도 지냈는데, 이후 인천남을에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노조 활동 경력을 살려 국회에서도 노동위원회 활동을 했고, 15대 때 다시 한번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대선 때는 전직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할 때 동참했다. 이 전 의원도 전력산업 경험이 전무하다.
최 전 지검장은 전형적인 법조인이다. 사법시험(25회)에 합격한 후 청주지검 검사, 속초지청장, 서울지검 형사 7부 부장검사 등을 검쳐 서울중앙지검 검사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력산업이나 한전과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전력산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외이사 3명이 한전의 경영혁신을 주도하거나,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을 제어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에너지 업계의 평가다.
한전은 부채가 95조원에 이르는 대표적인 방만경영 공공기관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의 대상이다. 하지만 한전은 인력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 등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개혁보다는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두 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해 1조519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한전이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다시 요금인상을 추진할 경우, 전력산업에 문외한인 이들 사외이사가 논리적으로 반대의견을 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전력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서 단 한 번도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없다. 오히려 정부·여당 내에서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한 한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만 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이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가장 큰 이유는 친여권 인사들을 방패막이 삼아 공공기관 개혁 정국을 돌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휘두르는 공기업 개혁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친여권 사외이사들을 대거 선임해 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가 선임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선임 기준을 알 수가 없다”며 “사외이사 선임 결과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좌우도 없다…정권 바뀌면 낙하산도 교체
한전의 ‘낙하산 사외이사’는 역사가 깊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는 친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한국전력 사외이사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강응선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경제2분과위원장과 황석희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본부 부본부장, 양승숙 열린우리당 충남도당 중앙위원이 2005년에 한국전력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2006년과 2007년에도 곽배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사회언론팀 위원, 김재규 민주당 부산 금정을지구당 위원장 등이 노무현 정부 때 한전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후보 언론특보단 활동을 했던 김종완 전 동아일보 부국장과 민정특보단 활동을 한 신재현 변호사 등이 대표적이 경우다. 이외에도 한국전력 내부 출신인 정동락(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살리기 특위), 장석효 전 도로공사(대통령직 인수위 한반도대운하TF팀장), 이기표(불교 뉴라이트연합 사무처장) 등도 대표적인 낙하산 사외이사에 꼽힌다.
역대 한국전력 사외이사 중에는 공무원 출신도 많았다. 조선비즈가 지난 10년 동안 선임됐던 한국전력 사외이사 40명을 분석한 결과, 공무원 출신 사외이사가 15명이었다. 전직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7명이었고, 법조인도 5명이나 된다. 이들 대부분은 전력 산업 경험이 없다. 전력 분야를 경험해본 인물은 40명 중 6명에 그쳤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한국전력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도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연봉은 3000만원 가깝다”며 “정부 입장에선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포상처럼 주는 거고, 한국전력 입장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친 정부 인사를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손해볼 게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