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출신 삼성 임원 "삼성 간 고위공무원, 3년 버티기 어렵다"

조선비즈
  • 안석현 기자
    입력 2014.02.21 11:11 | 수정 2014.02.23 16:49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지금까지 취업제한 대상 공무원 73명이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중 11명(15%)이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의원(민주당)이 지난해 9월 공개한 ‘퇴직 공직자 재취업 현황’에 담긴 내용이다.

    이 자료는 취업제한 대상(4급 이상, 경찰·소방·국세·관세·감사원 출신 등)만 집계했다. 그외 다른 공무원까지 더하면 이직 공무원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이 취업준비생 뿐만 아니라 퇴직 공무원에게도 ‘선망의 직장’이 된 것일까. 삼성은 이미 20년 전부터 경제부처 공무원을 집중 영입했다. 행정고시 출신 임원이 수십명이 넘었던 적도 있다. 조선비즈는 그동안 삼성으로 건너간 고위 공무원들의 행적을 따라가 봤다.

    ◆ 1993년 신경영 선언 뒤 공무원 영입 봇물

    삼성은 1994년 중앙부처 공무원을 본격적으로 영업하기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게 계기다. 삼성은 그 뒤 대규모 혁신을 단행했다. 인사부문은 외부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경제부처 과장 출신 삼성 상무는 “1990년대 그룹 자체 진단 결과 삼성은 공채 출신을 중심으로 한 순혈주의가 너무 공고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탓에 삼성과 관련이 없는 외부 인사 영입이 추진됐다. 고위 공무원 영입은 그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28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여사가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삼성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경제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들을 대거 영입했다. /안석현 기자

    삼성은 이때부터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을 본격 영입했다. 당시 삼성에 영입된 통상산업부 고위 공직자로는 홍순직 전주비전대 총장과 장일형 전 한컴 대표를 꼽을 수 있다. 홍 총장은 삼성SDI(006400)부사장까지 올랐고 장 대표는 삼성전자(005930)홍보팀장(전무)을 지냈다.

    홍씨는 1995년 통상산업부 수송기기과장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로 영입됐다. 2003년 삼성SDI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씨는 행정고시 14회로 1977년 서울시 사무관을 거쳐 통상산업부에서 주로 일하며 과장까지 올랐다. 삼성전자 기획팀으로 이직한 건 1996년이다. 삼성전자 홍보팀장을 거쳐 2005년에는 한화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화그룹 광고대행사인 한컴 사장까지 지내고 지난해 퇴직했다.

    재정경제부 출신 고위직 영입이 두드러진 것은 2000년 전후다.

    곽상용 전 삼성생명(032830)부사장은 재무부와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 관료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002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제기구과장을 끝으로 자산PF운용팀 상무로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상무와 전략지원팀 전무, 삼성생명 법인영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삼성으로 건너간 고위 공무원들. (사진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순직 전 삼성SDI 부사장, 장일형 전 삼성전자 홍보팀장, 곽상용 전 삼성생명 부사장, 주우식 전 삼성전자IR팀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 /조선일보DB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은 행정고시 25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와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2003년 삼성증권 상무로 영입됐다. 앞서 삼성증권(016360)에서 경영전략담당 임원, 투자은행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김병기 서울보증보험 사장 역시 재정경제부 출신으로 삼성에 몸담은 이력이 있다. 김 사장은 행시 16회로 재정경제부 산업관세과장, 재정융자과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으로 영입됐다. 그뒤 4년간 머무르다 포스코(005490)사외이사를 거쳐 서울보증보험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우식 현 전주페이퍼 대표 역시 재정경제부에서 삼성으로 옮긴 케이스다. 그는 행시 24회 출신이다. 삼성전자에서 10년 가까이 IR팀장을 맡아 ‘삼성전자의 입’으로 불렸다.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과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지역경제과 과장(서기관)을 역임했다.

    ◆ ‘고시 출신 과장→삼성그룹 상무’

    삼성은 공무원 인력을 대규모로 데려오는 만큼 영입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입 대상 공무원은 비서실이 비밀리에 접촉했다. 업계 경력직을 영입할 때 계열사가 접촉하는 것과 달랐다. 일부 영입 대상은 이건희 회장이 직접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직이 성사되기 직전 오찬을 겸해 이건희 회장과 면담이 있었다. 가벼운 식사자리인 줄 알았는데 3시간 이상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내더라. 삼성의 신사업과 관련해 성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검증에 재검증을 거친 인재 영입이었지만 모두가 전무 이상 고위 임원까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고시 출신 중앙부처 과장이 삼성그룹에서는 신임 임원인 상무로 영입됐다.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95년 이후 중앙부처에서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공무원은 최소 2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전무 이상 고위직에 오른 케이스는 손에 꼽는다.

    전직 공무원들이 삼성그룹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벽은 ‘실적 지상주의 문화’였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자리 보전 여부가 결정되는 사기업에서 생존이 녹록치 않았다.

    재정경제부 출신 인사는 “공무원일 때는 큰 시스템 안에서 내 역할만 하면 됐지만, 삼성에서는 목표 이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며 “직장 생활 20년 만에 실적 압박을 처음 받다 보니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공채 출신 임원들 사이에서 텃새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통상산업부 출신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계열사 간에도 ‘갑을(甲乙) 관계’가 있다. 우리(공무원 출신)가 하면 안될 일이 공채 출신 임원이 얘기하면 일이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외부에서 왔다는 이유로 견제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대관(對官) 창구 악용 지적도
    조정래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

    단기간에 중앙 부처 공무원들이 삼성으로 대거 건너가자 일각에서는 이들이 대관 창구(부처 관련 업무)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삼성으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 통상산업부·재정경제부 등 소위 ‘돈줄’을 쥐고 있던 부처 출신이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셈이다.

    실제로 공무원 출신으로 삼성에 몸담은 이들 중에는 대관 업무에 동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 직장에 남아있는 선·후배를 통해 각종 정책 관련 정보를 수집하거나, 업무에 입김을 불어 넣는 식이다.

    조정래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에는 이 같은 대기업의 행태를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기업 일광그룹의 문화개척센터(비서실) 소속인 주인공은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을 영입하기 위해 연봉 10억원과 고액의 스톡옵션을 제안한다. 이 공무원은 자리를 옮긴 뒤 자신이 속했던 부처 고위직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 받는다.

    재정경제부 출신 한 인사는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퇴직 공무원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추진 중인 정책 관련 정보는 비교적 용이하게 취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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