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 “늦는다고 속상해하지 마.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래.”
자살 예방 캠페인으로 조성된 서울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공익 광고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광고설치 이후 마포대교를 찾아 투신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이전보다 6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2012년 9월 첫 공개된 ‘생명의 다리’ 공익광고는 마포대교 난간 위에 시민들로부터 아이디어를 공모 받아 선정한 이미지와 문구를 새겨 넣었다. 삼성생명과 서울시가 공동 기획했고 제작은 제일기획이 맡았다. 한강을 관통하는 다리 중에서 투신 사건이 가장 많아 ‘자살대교’로 불리는 마포대교의 오명을 씻고, 자살 시도자들에게 살아갈 힘을 보태자는 취지였다.
◆“밥은 먹었어?” 마포대교 자살예방 광고···1년후 뜻밖의 결과
저녁 시간대 생명의 다리 난간에 사람들이 다가가면 불이 켜지면서 ‘밥은 먹었어?’, ‘속상해 하지 마’처럼 가족이나 친구가 건네는 듯한 메시지를 볼 수 있다. 마포대교에 설치한 생명의 다리는 자살 예방 캠페인에도 도움이 되지만 세계 최초로 시도한 쌍방향 스토리텔링 다리로 알리지며 국내·외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아이디어 제안자인 제일기획은 지난해 이 광고로 해외 유수 광고제의 상을 휩쓸었다. 2013년 한 해만 생명의 다리 캠페인으로 스파익스 아시아 대상을 포함해 총 37개의 상을 탔다. 칸 국제 광고제에는 본상 9개를 받았다. 제일기획은 이를 두고 단일 캠페인으로는 국내 최다 칸 광고제 수상 기록이라고 전하며 상업적 캠페인의 느낌을 지우고 따뜻한 위로를 건냈기 때문에 캠페인의 진정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캠페인이 실시되고 약 1년 뒤, 투신시도자 수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3년 한해 마포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시도 건수는 총 93건이다. 생명의 다리가 설치됐던 해인 2012년(15건)보다 6배 이상 늘었다. 반면 투신시도 2위인 한강대교는 16건(2012년)에서 11건(2013년)으로 줄었다.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 5년간 마포대교에서는 108건의 투신시도가 발생했다. 자살을 막기 위해 생명의 다리를 설치하고 나서 한 해 투신시도 건수가 과거 5년치에 근접한 셈이다.
◆‘자살 명소’ 소문나며 오히려 투신자 늘어나···“물리적 안전장치 보완할 필요”
이처럼 자살방지 광고가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까닭은 뭘까.
전문가들은 과도한 홍보 효과 때문에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 본래의 의도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시 효과나 홍보 효과에 치중해 생명의 다리에 과도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오히려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는 ‘자살 명소’가 됐다는 분석이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죽음에 상징성이나 시의성을 부여하려는 심리가 있다”면서 “이들은 이름 있는 장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일본에서 자살의 숲으로 알려진 후지산의 주카이숲이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등도 자살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을 세계 각지에서 끌어모으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특정 장소에 자살자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곳에서 자살을 시도할 경우 사망 확률이 높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게 된다”며 “자살예방 캠페인을 실시할 때는 그 파급 효과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명의 다리가 실질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내려면 물리적인 안전 장치들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현 교수는 “메시지로 자살자의 마음을 돌리려는 심리적인 접근과 함께 다리 밑에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유리벽을 세우는 등 물리적인 접근을 차단하는 방법도 도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아치형 모형의 제1한강 철교의 경우 미끄러운 기름을 바르자 다리에 올라가 시위하는 사람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줄었다”고 예를 들었다.
생명의 다리에 새겨진 문구가 다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센터장은 “목숨을 끊으려고 절망감에 휩싸여 다리에 찾아온 사람에게 일상적인 말을 툭툭 던지면, 공감을 불러오기 보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최근 한강대교에도 제2의 생명의 다리를 조성하는 등 캠페인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조성에 앞서 예방 효과를 실질적으로 거두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