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이 만들고 세계가 입는다] 동대문 1평(坪·3.3㎡)의 기적

입력 2014.01.09 03:06

[2]맨주먹에서 패션 巨商으로

- '형지' 최병오 회장
광장시장 1평 가게서 바지 팔아… 매출 1兆 패션그룹의 모태
- '뱅뱅' 권종열 회장
평화시장서 미싱 3대 놓고 창업, 독자 브랜드로 국내 청바지 1위
-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
종로5가 등산용품 가게로 시작, 아웃도어 시장 트렌드 이끌어
- '예신' 박상돈 회장
10代에 上京… 재단·봉제 배워 "동대문 정신이 오늘의 밑거름"

1982년 부산에서 상경한 서른 살 청년은 서울 광장시장에 3.3㎡(1평) 남짓한 자리를 얻어 바지를 팔았다. 인맥 없는 초보 장사꾼은 바지 샘플을 들고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의 시장을 떠돌며 영업을 했다. "한두 장 두고 가라"던 상인들이 나중엔 직접 광장시장으로 물건을 받으러 오기 시작했다. '크라운'이라는 상표를 붙인 바지는 매일 2000~3000장씩 만들어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광장시장 1평짜리 매장서 팔던 '크라운 바지'는 30여년 뒤 15개 의류 브랜드로 매출 1조원을 기록한 패션그룹형지의 '모태(母胎)'가 됐다. 그야말로 '1평의 기적'이다. 지난달 만난 최병오(61) 형지 회장은 동대문에서의 젊은 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옷을 보는 안목과 트렌드를 읽는 법, 사업에 대한 열정을 모두 동대문에서 배웠죠. 새벽 4시에 일어나 가게로 출근하던 습관은 지금까지 그대로입니다." 크라운 바지로 승승장구하던 최 회장은 1993년 어음 부도로 무일푼이 됐지만, 이듬해 남평화시장의 1평짜리 점포를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동대문 근성'에 브랜드를 입히다

동대문시장은 21세기 대한민국 패션을 주름잡는 '거상(巨商)'들을 여럿 키워냈다. 지난해 1조30억원의 매출을 올린 패션그룹형지를 비롯해 국내 청바지 1위 브랜드 뱅뱅어패럴, 매출 6500억원이 넘는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 토종 SPA 브랜드 '코데즈컴바인'의 예신그룹과 '버커루' 'TBJ'로 알려진 MK트렌드 등이 모두 동대문 단칸 매장에서 시작해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다.

최병오, 권종열, 강태선, 박상돈 회장 사진
박상돈(57) 예신그룹 회장은 동대문 재단사 출신이다. 1970년 여름 충남 예산에서 상경, 평화시장의 한 공장에 취직해 재단과 봉제를 배웠다. 밤새 손끝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연습해 3년 만에 재단사가 됐다. 그는 "동대문에서 배운 지독한 근면함과 근성이 지금까지 사업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장 옷도 '브랜드'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1986년 통일상가에서 탄생한 청바지 브랜드 '유겐트'를 시작으로 '옹골진' '이기' '마루' 등 20여개의 캐주얼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했다. 형지 최병오 회장도 "시장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나중에 브랜드 의류에 밀릴 수 있다는 생각에 '크라운 바지'를 나만의 브랜드로 만든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옷 장사 아닌 미래 트렌드 선점

동대문에는 현재 3만5000여개의 크고 작은 의류 매장이 있다. 동대문에서 기업을 일궈낸 창업자들은 공통으로 단순한 '옷 장사'에 만족하지 않고 의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앞서 읽어내는 '경영 감각'이 있었다.

패션업계 '동대문 1세대'인 권종열(87) 뱅뱅어패럴 회장은 1961년 평화시장 3평짜리 가게에 미싱 3대를 놓고 창업했다. 권 회장은 "청바지가 돈이 되겠다고 생각해 버려진 외제 청바지에서 구리 단추와 지퍼만 뜯어내서 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순조롭던 사업은 1980년대 수입 브랜드 청바지가 인기를 끌면서 어려워졌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시장 옷'이라는 선입견을 없애기 마케팅에 승부를 걸었다"고 했다. 권 회장은 은행권에서 8억원을 빌려 당시 최고 스타였던 전영록을 모델로 쓴 CF를 제작했고, 국내 청바지 시장을 석권했다.

동대문의 미래… 밤낮없이 24시간 돌아가는 동대문 상권은 수천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기업과 유명 디자이너들의 ‘모태(母胎)’가 됐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 패션 관계자가 동대문에서 울고 웃으며 미래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8일 롯데피트인 쇼핑몰에서 만난 ‘나무그림’ 박근복 매니저는 “내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대문의 미래… 밤낮없이 24시간 돌아가는 동대문 상권은 수천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 기업과 유명 디자이너들의 ‘모태(母胎)’가 됐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 패션 관계자가 동대문에서 울고 웃으며 미래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8일 롯데피트인 쇼핑몰에서 만난 ‘나무그림’ 박근복 매니저는 “내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블랙야크 강태선(65) 회장은 아웃도어라는 용어조차 없던 1973년 종로5가에 '동진사'라는 등산용품 가게를 열었다. 매장 일부를 공장으로 쓰며 '자이언트'라는 브랜드로 배낭을 만들고 텐트·등산화 등을 팔았지만, 매출은 신통찮았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는 속도에 비례해 등산 장비 시장도 분명히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6조원 이상으로 성장했고, 블랙야크는 스위스·이탈리아 등 아웃도어 본고장인 유럽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제도권 패션계 주름잡는 동대문 디자이너

동대문 출신으로 ‘제도권’ 패션 대기업에 스카우트된 디자이너들도 있다. 2011년 신세계인터내셔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노정호 상무는 IMF 외환위기 때 백수가 되면서 1998년 동대문에 입성했다. 잘나가던 의류업체 디자이너였던 노 상무는 처음 동대문에 가게를 열 때를 회상하며 “동대문은 싸구려 천박한 옷을 판다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매장에 진열한 옷을 정직하고 빠르게 평가해주는 동대문은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시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13년간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면서 ‘이 옷이 잘 팔릴지 안 팔릴지’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생겼다”고 말했다.

코오롱
스포츠 브랜드 ‘헤드’의 최범석(37) 이사는 최종 학력이 중졸이다. 최 이사는 1998년 동대문에 1평짜리 가게를 내고, 오전에는 디자인을 하고 밤에는 자신이 만든 옷을 팔았다. 그는 “하루에 2시간도 자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동대문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배우며 디자인 훈련을 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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