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극동서 모스크바까지 뚫은 '프리마 로드(동서식품 커피크리머 브랜드)'… 네슬레 제치고 年1만t 판다

입력 2013.10.21 03:06 | 수정 2013.10.21 05:50

['K 푸드' 시대… 한국이 만들고 세계가 먹는다] [4]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9288㎞ 이동하며 파는 동서식품

-러시아서 왜 인기 끄나
"커피 풍미 최대한 끌어내고 빵 굽거나 요리에 첨가했을 때
우유의 감칠맛 내는 배합기술… 글로벌 경쟁社들도 못 따라와"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가
러와 이웃한 중앙亞·중동서 미얀마·태국·베트남으로 확대

지난 1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市)의 바리센코 거리. 부산항에서 출발, 이틀 만에 도착한 동서식품 '프리마(Frima)'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을 컨테이너로 옮기는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20피트 컨테이너 8개에 담긴 프리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 주요 도시를 차례로 지나며 현지 도매상과 유통업자에게 전달된다. 종착지인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45일, 이동 거리만 9288㎞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프리마를 건네받는 러시아 도매상들은 이 길을 '프리마 로드(Frima road)'라 부른다. 중국에서 비단을 싣고 유럽으로 이동하던 '실크로드(silk road)'에 빗댄 말이다. 프리마 로드는 육송(陸送) 실크로드(약 6400㎞)의 1.5배에 이른다.

'프리마 로드'로 러시아 점령

프리마는 물엿과 야자유에 우유 단백질을 배합해 만든 커피 크리머(creamer)이다. 프리마는 러시아 주부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27개국에 프리마를 2만6859t 수출했는데, 대(對)러시아 수출량이 1만t(37%)으로 가장 많았다. 종이컵에 마시는 믹스커피 21억3000만잔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아이를 안은 러시아 여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한 대형마트의 프리마 전용 판매대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아이를 안은 러시아 여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한 대형마트의 프리마 전용 판매대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러시아 주부들은 빵을 굽거나 요리를 할 때 조미료처럼 프리마를 즐겨 사용한다. /이혜운 기자
러시아의 프리마 소비량이 유독 많은 건 프리마를 커피에만 타서 마시는 게 아니라 빵을 굽거나 요리할 때 조미료처럼 쓰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마트에서 만난 더치아나 세르게이 에드나(50)씨는 "카샤(우유죽)와 블린(핫케이크)을 만들 때 프리마를 넣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산다"고 했다.

동서식품 허강 수출팀장은 "러시아에선 밀가루 반죽에 우유 대신 프리마를 쓰는 식"이라며 "한국 주부들은 잘 모르는데 수제비 반죽에 프리마를 조금 넣으면 맛이 기가 막힌다"라고 말했다.

프리마가 스위스 네슬레의 '커피메이트', 일본 아지노모토의 '마림' 등 글로벌 커피 크리머 브랜드를 제치고 러시아인들을 사로잡은 핵심은 바로 '맛'이다. 김현수 동서식품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장은 "커피 본연의 풍미를 최대한 끌어내고, 요리에 첨가했을 때 우유의 감칠맛을 내는 유청(乳淸)분말 배합 기술을 경쟁사들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대형마트 1위 업체인 레미(REMI)의 이라이다 발레리예브나(44) 총괄매니저는 "우유 맛 나는 가루는 모두 '프리마'라고 부를 정도"라고 말했다.

프리마는 1992년 러시아에 처음 소개됐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한국을 드나들던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프리마를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 겨울이 긴 러시아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열량이 높은 크림이나 우유를 넣는 요리가 많지만, 우유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땅이 넓어 보존 기간이 짧은 우유를 전국적으로 유통하기 어렵고, 외국에서 우유를 수입하면 가격이 올라갔다. 보따리 상인들은 전지분유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프리마를 '가루우유'라고 선전했다.

지난 1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부들이 한국에서 건너온 동서식품‘프리마’를 컨테이너에 싣고 있다(맨 위 사진). 내수 판매 줄고 수출 느는 프리마. 동서식품 프리마 수출 현황. 러시아 '프리마로드'.
지난 1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부들이 한국에서 건너온 동서식품‘프리마’를 컨테이너에 싣고 있다. /이혜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보따리상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자 동서식품은 1995년 현지 지사를 만들고 본격적인 수출에 돌입했다. 재래시장 중심이던 판매처를 대형마트로 확대했고, 시식·경품행사 등 '한국식 판촉'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요리에 프리마를 많이 쓰는 것을 감안해 1999년부터는 우유 성분을 늘린 요리용 프리마를 '하이밀키(Hi-Milky)'라는 별도 브랜드로 출시했다. 프리마와 하이밀키는 현재 러시아 650개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고, 2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수요 줄었지만 수출로 만회

1974년 출시된 프리마는 국내에서 커피 크리머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러나 원두커피를 마시거나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2003년부터 프리마 국내 판매량이 줄기 시작했다. 2003년 5만7542t에 달했던 국내 프리마 판매량은 2012년 5만1263t으로 11%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서식품의 프리마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덕분이다. 프리마 수출액은 2003년 2015만달러(약 213억원)에서 2012년 5501만달러(약 583억원)로 배 이상 늘었다.

'프리마 로드'는 모스크바를 '종착지'로 삼지 않고, 갈래를 뻗어 중앙아시아와 중동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커피크리머 시장의 56%를 차지하고, 카자흐스탄(71%)과 타지키스탄(77%)에서는 시장점유율이 70%가 넘는다. 1980년대 첫 수출이 이뤄졌던 동남아 지역에서도 미얀마, 태국, 베트남 등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윤세철 동서식품 전무는 "해외에서는 제과·제빵이나 요리용 프리마 수요가 전체 수출량의 15%를 차지한다"며 "수출국과 물량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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