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없는 복지는 모순… 公約의 덫부터 풀어줘야"

입력 2013.08.13 01:26

[稅制 개편안 원점서 재검토… 경제 元老들이 전하는 해법]

복지공약이라는 성역 두면 경제운영 여지 없어져…
복지 조정·증세 논의 불가피성 국민에게 설득 시키는 등 국정운영의 기본 틀 바꿔야

정부가 발표한 지 4일밖에 안 된 세제 개편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중산층 증세라는 쏟아지는 비판에 백기를 든 것이다. 세제 개편안이 국회로 가기도 전에 정부가 수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뭘까. 또 '증세 없는 복지'라는 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정부가 정상 궤도로 돌아가는 해법은 뭘까.

본지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가나다 순) 등 경제 원로들에게 해법을 물었다. 원로들은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모순에 빠져 무리수를 남발하지 말고, 이제라도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라고 충고했다.

강봉균 前장관, 권오규 前부총,리 윤증현 前장관, 한이헌 前수석 사진
(사진 왼쪽부터)강봉균 前장관, 권오규 前부총,리 윤증현 前장관, 한이헌 前수석.
또 "비과세를 줄이는 것이지 증세가 아니다"는 말장난으로 국민을 자극하지 말고,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논의를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경제 원로들은 정부의 세제 개편안이 좌초된 것에 대해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모순된 정책 틀을 고집했던 불가피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한이헌 전 경제수석은 "세율을 올리지 않거나 새로운 세금을 만들지 않고 복지 혜택을 늘리려면 결국 이번에 정부가 내놓았던 세제 개편안 같은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다"며 "(증세에 따른) 불만을 다 무마하면서 복지도 늘리고, 공약을 다 지키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한 전 수석은 "지금은 새 정부가 대가 없는 복지는 없다는 교훈을 얻는 과정"이라며 "청와대를 포함한 정책 당국자들이 앞으로 복지와 세금 부담 완화 중에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제 개편안 어떤 과정 거쳐서 만들어졌나 일지표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이번 세법 개정안은 불가피한 증세의 첫 단추를 꿰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민적인 공감대 측면에서 아쉬운 면이 많다"고 했다. 권 전 부총리는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복지 확대까지 하려는 것은 무리"라며 "이번 세법 개정안은 앞으로 새 정부가 공약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의 전초전에 불과하고 정말 큰일을 하려면 국민적인 컨센서스(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제라도 증세 논의와 복지 공약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경제 부처 장관은 "이렇게 경기가 좋지 않은데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불가능한 약속에 매달리고 있다"며 "이제라도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공약 추려내 우선순위 조정해야"

이번 세제 개편안 번복 사태를 계기로 국정 운영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로도 있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통령과 경제부총리부터 큰 그림을 바꿔야 한다"며 "경제 운용에 '복지 공약'이라는 성역(聖域)을 두면 출구가 없고 경제 운용의 여지가 안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세수(稅收)가 줄면 정부 지출도 줄여야 한다. 세수가 안 나오는데 증세 없이 복지 공약을 모두 지키겠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안 되는 것은 미루고, 꼭 하고 싶은 복지 공약만 추려서 우선순위를 다시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이렇게 모순된 상황을 깨지 않으면 자꾸 정책의 엇박자가 난다. 현오석 부총리가 용기를 내서 대통령에게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자고 요구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무조건 공약을 실천해야 한다는 정책이 문제라는 데 공감했다. 강 전 장관은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약가계부까지 만든 정부로선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복지 공약은 일부 연기와 축소가 불가피하고, 증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증세의 경우 유럽 선진국은 복지를 늘리는 과정에서 부가가치세를 단계적으로 10% 수준에서 20%까지 올린 바 있다"면서 "법인세와 소득세에서도 다양한 대안이 있는 만큼 긴 안목을 갖고 사회적 토론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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