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여년 걸어온 貧者, 승효상의 새로운 행보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7.27 09:00

    힘없던 건축계가 힘이 생겼다.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성토하던 건축가들이 그동안 묵혀놨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올 초 건축가 승효상을 비롯한 11명의 건축계 인사들이 올 2월 서울 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면서부터다. 특히 위원장직을 맡은 승효상은 가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도시, 우리가 사는 곳을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고 했던 말들이, 이제야 먹혀들어간다.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들은 체도 안 하던 공무원도 귀를 열었다.”
    승효상 건축가./허성준 기자
    최근 건축가 승효상의 행보가 발 빠르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 한강르네상스, 세빛둥둥섬, 용산역세권개발사업, 동대문디자인프라자, 철거방식의 재개발-재건축 등 오세훈 전 시장 시절 이뤄졌던 건축 사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던 승효상은 이제 박원순 시장과 손을 잡고 도시-주택과 관련한 정책에 직접 손대고 있다. 위원장 자리가 힘이 있기보단 재임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평가받는 박원순 시장과 ‘코드’가 통한 탓이다.

    2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2-8번지. 평일에도 젊은이가 가득한 대학로 골목에 있는 승효상의 설계사무소를 찾았다. ‘이로재(履露齋)’, 이슬을 밟는 집이란 뜻이다. 1000여권은 될 법한 서적과 몽당연필, 대형 책상이 자리한 집무실에 들어서자 승효상은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안경 뒤로 그리 크지 않은 눈은 환갑의 나이에도 번뜩였다.

    승효상은 20여년간 아파트 투기판이 된 서울을 염려했고, 흔적도 없이 밀고 맥락도 없이 들어서는 건물을 비판해왔다. 광화문 광장을 대형 중앙분리대라고 했으며, 세빛둥둥섬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공을 앞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쉬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열불이 난다”며 말을 이었다.

    “외국 건축가가 맡았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서울 성곽이 지나는 자리다. 옛 동대문 운동장 관중석을 들어내니 옛 유적이 쏟아졌다. 그런데 서울시는 설계변경도 안 했다. 그런 자리에 아무런 사회문화적, 역사적 맥락이 없는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서울이란 장소성에 반(反)하는 건축물이다. 우린 서울 성곽을 이을 기회를 잃었다. 낙산과 남산을 잇는 녹지 축도 지금처럼 잘린 채 살아야 한다.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최근 백지화 과정을 밟는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에 대해선 “아무도 그 사업이 잘 진행될 거라고 보지 않았다”며 “외국 건축가를 잔뜩 데려다가 80~90년대 방식으로 장밋빛 조감도를 걸어 넣고, 투기를 조장하는 방식의 사업이 망가진 건 참 다행인 일”이라고 했다.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의 부활은 승효상이 박원순 시장에게 직접 건의한 것이다. 유명무실에 가까운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 환멸을 느낀 승효상은 ‘이전 방식’의 도시·주택 개발 논리는 구시대적이며 미개하다고 박 시장을 설득했다. 건축가들이 직접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견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승효상을 필두로 확 바뀐 건축정책위원회는 굵직굵직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건축계의 숙원이었던 공공 발주 입찰제가 가격 위주에서 디자인 위주로 바뀌었다. 그동안 공공 건축물의 설계는 디자인보단 가격이 낮은 쪽이 따내는 경향이 컸다. 이 때문에 건축가들은 “공공 입찰은 자금력이 있고, 단가를 낮출 수 있는 대형설계사무소의 파이(pie)일 뿐”이라며 시도조차 못 해왔다. 대형 시공업체의 배만 불렸던 턴키(Turn-key·설계·시공 일괄) 발주 방식도 사라졌다. 그동안 설계와 시공이 일괄 발주되면서 설계사무소는 덩치가 큰 건설업체의 하도급처럼 전락했었다. 건설업체는 시공 단가를 낮추기 위해 마음대로 설계를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민간 건축가의 의견이 시(市)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면서 공공 건축물에 건축가의 생각과 손길이 닿을 기회가 많아지게 된 것. 현재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는 민간 전문가를 위촉한 올 2월부터 공공건축가 운영 개선방안, 서울시립대 음악관 건립계획, 문정 도시개발사업(컬쳐밸리) 기본구상,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 디자인 가이드, 서울재사용플라자 조성 설계 등등의 사안을 논의했다. 이전까진 건축가가 이와 같은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우리 도시에 대해, 우리 삶터에 대해 여태까지 잘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고치고 있다. 십수년간 건축가들이 물질만능주의의 산물로 이뤄진 수많은 건물이 우리 삶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던 것들이 이제야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장은 이런 노력이 현실로 드러나진 못하겠지만, 다음 세대엔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다음 달 예정된 ‘서울 건축 선언’으로 공식화될 것이다.”

    승효상은 서울 건축 선언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건축’에 대한 정의와 건축을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구현하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알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선언의 내용이 서울시의 공식 심의 지침이 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또 서울건축포럼을 신설해 서울에서 이뤄지는 건축행위에 대해 서울시 정책위원과 건축계가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승효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 상황은 인문학적으론 ‘다행인 일’이라고 했다. 실체 없는 돈이 돈을 만들고, 집이 사는(住) 곳이 아닌 투기처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그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불황은 그동안의 물질 추종적 삶이 낳은 결과라고 했다.

    “건축이 발달한 미학 중심의 서구에서도 2000년 윤리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공통의 토대)라는 단어도 나왔다. 건축의 본질, 삶의 본질을 모색하고 있다. 1992년 빈자의 미학을 내놨던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1952년생 승효상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공간 건축에서 실무를 거친 고(故) 김수근의 직계 제자다. 15년을 함께 했다. 김수근이 타계한 뒤 1989년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 이로재를 세웠고, 현재까지 연필을 놓지 않은 ‘플레이어(player)’다. 2007년 ‘대한민국 예술문화상’, 200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 2011년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총감독까지 했다. 지난해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선 아시아에서 초청된 단 두 명의 건축가 중 한명이었다. 어느덧 국내 건축계의 원로이자 대표 건축가가 됐다.

    승효상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은 ‘빈자의 미학’(1992년)을 발표한 지 20여년 만에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가난한 자의 미학’이라는 뜻을 담은 승효상의 자기 선언은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는 여전히 ‘비움’을 핵심으로 하는 건축을 이어가고 있다.

    승효상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의 불황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간 야합의 산물이 된 현 도시의 모습이 지금부터라도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는 것.

    그는 이어 105세까지 연필을 놓지 않고 설계에 매진한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를 예를 들었다. “나는 올해 61살이다. 아직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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