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대표 건축가 승효상, 서울 곳곳 숨은 작품은?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7.27 09:00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21번지.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옮긴 뒤 조성된 마로니에 공원이다. 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아르코 예술극장·미술관, 샘터 사옥, 예총 회관과 고(故) 박길룡 건축가의 경성제국대학의 본부(현 예술인의 집)로 둘러싸인 이 공원은 서울의 문화 중심지인 대학로의 건축 성지이자 도심 속의 오아시스다.

    마로니에 공원 뒤편은 딴판이다. 그야말로 번화가다. 드문드문 구석에 박힌 소극장이 옛 기억을 밝힐 뿐, 강남역·명동과 다를 바 없다. 천편일률적인 상가건물이 가득 찬 골목은 낮에는 간판이, 밤에는 네온사인이 점령한다.

    각종 상호로 뒤덮인 건물들 사이로 뻘겋게 탄듯한 박스형 건물이 보인다. 간판도 없고, 창문도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공장을 연상시키는 녹슨 듯한 건물 표피는 ‘최신’을 자랑하는 여타 건물을 압도한다. 뻥 뚫린 출입구로 들여다본다. 내부는 냉기를 뿜는듯한 노출콘크리트로 또 다른 느낌이다. 대학로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 건물은 이 시대 대표 건축가로 손꼽히는 승효상(61)의 ‘쇳대박물관’이다.
    쇳대박물관 전경./이로재 제공
    승효상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1975년 졸업하고, 공간(空間) 건축에서 15년간 김수근의 제자로 건축 실무를 익혔다. 그는 김수근이 타계한 지 3년 뒤인 1989년 건축설계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세웠고, 현재 환갑의 나이에도 현장을 누비는 한국 건축계의 원로다.

    특히 승효상은 건축가로서 1970년~1980년대 독재와 산업화를 거쳐 시장 원리가 지배하고 사회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재를 모두 거친 한국 건축계의 산증인이자, 한국의 건축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 명장으로 꼽힌다.

    승효상이 자신의 건축철학 ‘빈자(貧者)의 미학’을 발표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깃든 건물은 지나간 세월만큼 우리 주변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 회백색의 공간, 90년대 노출 콘크리트 작업

    대학로에는 쇳대박물관과 더불어 승효상의 초기 작품인 ‘대학로 문화공간’(1994·설계연도)이 있다. 요란한 장식과 여러 색깔로 범벅된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이 노출콘크리트 건물은 진지하고 사뭇 폐쇄적인 느낌이다. 공연 및 전시가 이뤄지는 장소답게 번잡한 거리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갈 때의 분위기 전환을 돕는 설계가 돋보인다.
    대학로 문화공간./이로재 제공
    특히 건물 몸체에 직접 출입구를 두지 않고, 낮은 계단과 테두리처럼 두른 콘크리트 담장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 짓는다. 또 5층 높이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건물 몸체에서 밖으로 빼 건물의 옥외공간을 좀 더 풍성하게 한다.

    공연장을 찾은 김준수(29)는 “주말마다 북새통인 대학로지만, 이곳은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기에 적당한 외부와의 거리감이 느껴진다”며 “내부 공간도 층마다 분리된 느낌이 아니어서 돌아다니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로 문화공간 외에도 승효상은 노출 콘크리트를 통해 많은 작업을 이어갔다. 서울 광진구 중곡1동의 ‘천주교 중곡동 성당’(1997)은 붉은 벽돌 등으로 수없이 답습된 고딕 양식의 성당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회백색의 건물 몸체는 성당이라는 종교적 분위기와 결부돼 대로변에 있음에도 강렬한 힘을 드러낸다. 다소 차갑고 삭막해 보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건물과 건물을 잇는 수평 통로를 지나 만날 수 있는 중정(中庭)이 건물을 풍요롭게 한다.
    중곡동 성당./이로재 제공
    승효상은 “노출 콘크리트는 가장 종교적인 재료”라며 “상징과 장식을 걷어낸 노출 콘크리트는 성당의 주체인 사람을 가장 잘 부각시킨다”고 말했다.

    ◆ 사람을 닮은 건축, ‘웰콤 시티’와 ‘휴맥스 빌리지’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장충체육관 사거리에서 퇴계로 방향의 오르막길을 가다 보면 쇳대박물관과 같이 붉게 탄 듯한 4개의 건물 몸체가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깔끔한 노출 콘크리트 기단 위에 서로 다른 각도로 동국대학교를 마주 본 이 건물은 승효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웰콤 시티(welcomm city)’(2000)다. 광고대행사 웰콤의 사옥으로 업종에 맞게 감각적이고, 크리에이티브(creative)한 느낌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우선 건물 앞에 서면 장벽처럼 느껴지는 웅대한 노출콘크리트 기단이 압도적이다. 매끈하게 뽑힌 회백색 콘크리트와 붉고 거친 느낌이 생생한 코르틴 강(cor-ten steel)이 대조를 이루며 단단하고 엄격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내부는 딴판이다. 오밀조밀 이어지는 복도와 계단은 마치 미로를 연상시키며, 각 공간은 반복 재생산되면서 미묘한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건물 외부 공간은 승효상 특유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건물 몸체와 몸체 사이에 이어지는 길과 계단, 문득 마주치는 한 그루의 나무, 조약돌 등이 그것이다.
    웰콤 시티./이로재 제공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는 “웰콤 시티의 내부는 단절되고 복잡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외관의 첫인상은 명쾌하다”고 평했고, 건축 비평가 리처드 잉거솔(Richard Ingersoll)은 “코르틴 강으로 인해 다소 경직될 수밖에 없는 공간이 다른 휴식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강렬한 이미지의 웰콤 시티와 달리 ‘휴맥스 빌리지’(2002)는 산뜻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 건물은 세계적인 셋톱박스 업체로 성장한 국내 1세대 벤처기업 휴맥스의 사옥이다. 지하 6층~지상 12층의 커튼 월(curtain wall·유리마감) 오피스다. 건물 정면은 전형적인 오피스 건물이지만, 건물 양 측면은 거뭇한 현무암 패널로 마감돼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이 건물은 외부에서는 진가(眞價)를 알 수 없다. 내부가 백미다. 효율성의 미명아래 성냥갑처럼 구획된 여느 오피스와 달리 전 층을 관통하는 휴식공간은 층과 층,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다. 길·공원·광장의 느낌을 이 휴식공간에 녹여 거대한 오피스 내에 또 다른 마을(village)을 만들어 놓았다.
    휴맥스 빌리지./이로재 제공
    장지철 휴맥스 총무팀 사원은 “타 회사 건물을 보면 사무공간과 똑같은 휴게실이 전부거나, 밖으로 나가기 위한 동선이 복잡한 경우가 많다”며 “이 건물의 경우 전 층 어느 사무실이나 복도에 나오면 바로 외부 공기가 통하는 휴식공간이 있어 답답하지 않다”고 말했다.

    ◆ ‘숨은 듯 은은한’, 종로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사거리는 가로길과 세로길의 분위기가 완연히 다른 곳이다. 전통적으로 상권이 발달한 종각 가로길은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종로타워빌딩과 보신각이 마주 본 지역부터 각종 상가가 벌집처럼 들어차 있다. 그러나 안국동 사거리로 통하는 우정국로쪽은 조계사와 더불어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조근조근 모여 있어 경건하고, 스산한 분위기마저 나는 길이다.

    이 길에 들어선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2007)는 조계사 맞은 편에 들어선 승효상의 작품이다. 승복(僧服)을 연상시키는 짙은 회색빛 건물은 인근 건물에 비해 규모가 크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건물 전면의 창은 최소화한데다 1층을 유리로 마감한 전시공간을 둬 맞은 편 조계사에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이로재 제공
    건물 측면에 둔 외부 계단은 마치 수행길을 연상시킨다. 계단이 건물의 가장자리를 사선으로 관통한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걸으면서도 바람을 느끼고 바깥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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