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충 잡고 생태계 살리는 '天敵 곤충 농업' 뜬다

입력 2013.04.10 03:00

화학 살충제만큼 효과 확실, 선진국선 오래전부터 상용화… 국내서도 30種 생산해 수출까지천적 농법 관심 높아졌지만 농약보다 2~3배 비싼 게 단점… 최근 정부 보조금 줄어 위축

지난 2일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선 한 농부가 토마토 잎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해충이 생겼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7년째 토마토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헌(51)씨는 "3년 전부터는 농약을 쓰지 않고 해충을 잡아먹는 '천적(天敵) 곤충'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다"면서 "살충 효과가 기존 화학적 살충제만큼 우수하다"고 말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 '착한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천적 곤충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한 농산물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늘고, 유통업체들이 농산물을 사들일 때 잔류 농약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면서 천적 곤충이 농약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업 선진국들도 농약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친환경 농업에 투자하는 선진국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 지방에서는 모든 파프리카 농가에서 농약 대신 천적 곤충을 이용한다. 토마토 농가의 80%, 오이·가지 농가의 40%도 천적 곤충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

이 지역 농민들이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은 작물에 남아 있는 잔류 농약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부터다. 스페인 농가들은 2006년 독일로 수출한 파프리카에서 기준치 이상 농약이 검출된 후 독일 수출이 중단되는 곤욕을 치렀다. 독일 수퍼마켓 체인에서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스페인은 지방정부가 나서 농약 대신 천적 곤충을 사용하는 것을 지원했고, 이제는 상당수 농가가 농약을 쓰지 않고 있다.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 지방정부는 매년 300억원을 '천적 곤충 농업'에 지원했다.

농업 강국 네덜란드는 1991년부터 10년 동안 농약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코퍼트(Koppert)는 천적 곤충 업계의 세계 1위 기업이 됐고, 전 세계로 천적 곤충을 수출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은 북미와 서유럽 지역 '바이오 농약' 시장 규모가 오는 2015년에는 2008년의 두 배가량인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화학 농약 기업들도 최근 세계적 친환경 농업 추세에 발맞춰 이 분야 사업을 강화하고 나섰다. 바이엘은 지난해 미국 기업 아그라퀘스트사를 4억2500만달러(약 4800억원)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천연 미생물을 이용해 작물에 피해를 주는 병원균과 해충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런 천연 재료는 특히 작물의 수정을 돕는 벌에게도 해가 없다. 거대 농업 기업인 스위스 신젠타는 지난해 포르투갈에 곤충을 기르는 시설을 새로 짓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친환경 농업 위한 정부 지원 필요

국내 천적 곤충 산업은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천적 곤충을 이용할 때 드는 비용이 농약보다 2~3배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적 곤충을 활용한 '친환경 농업'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존 농약(살충제)은 해충뿐만 아니라 천적 곤충을 비롯한 다른 곤충도 죽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단점이 있다. 살충제를 많이 쓰면 농민 자신은 물론 이를 먹는 소비자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또 해충이 살충제에 내성(耐性)을 갖게 되면 새로운 살충제를 개발할 때까지 속수무책이다.

국내에서는 동부팜세레스가 천적 곤충 30여종을 생산해 수출도 하고 있다. 딸기·참외·수박·오이·상추·시금치·배추 등을 망가뜨리는 해충인 진딧물의 천적 호랑풀잠자리, 토마토·파프리카·오이·고추 농사를 망치는 온실가루이를 제압하는 온실가루이좀벌 등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친환경 농업 보조금을 줄이고, 경기 불황으로 농가 소득도 감소하면서 국내 천적 곤충 시장은 위축된 상황이다. 하판정 동부팜세레스 천적생산팀 팀장은 "몇 해 전 정부가 천적 곤충을 이용하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면서 천적 곤충을 쓰는 농가가 급속도로 늘었던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이 지원이 끊기면서 다시 시장 규모가 줄었다"면서 "정부 주도로 친환경 농업을 정착시킨 농업 선진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근영 영업컨설팅부 팀장은 "농약을 쓰던 습관을 버리기 어렵지만 일단 천적 곤충 농법으로 바꾸고 나면, 농민 대부분이 다시는 농약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면서 "친환경 농산물을 공인 기관이 인증해 소비자가 믿을 수 있게 한다면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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