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든 꿀 품은 꽃, 벌이 또 찾도록 기억력 조종한다

조선일보
  • 이영완 기자
    입력 2013.03.12 03:07

    '파블로프 조건반사' 실험으로 꿀에 들어간 카페인 역할 추적해보니…
    카페인이 든 꿀을 먹은 벌, 뇌 해마 해당하는 기억장소인 버섯체 신경세포 활발하게 작동
    꽃 향기에 대한 기억력, 일반 꿀 먹은 벌보다 3배 높아
    -화려한 꽃 색, 벌 부르는 광고판
    노란꽃, 자외선카메라로 촬영하면 꽃가루 있는 중앙 부분이 진해 자외선으로 감지하는 벌 유인책

    곤충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 자외선 카메라로 꽃을 찍으면(오른쪽) 우리 눈에 보이는 꽃(왼쪽)과 달리 꿀이 있는 중앙으로 갈수록 짙어진다. 꽃가루받이를 할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Bjorn Roslett 제공
    남쪽 지방에서 벌써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한다. 곧 전국의 산과 들이 알록달록한 봄꽃들로 가득 찰 것이다. 봄이면 꽃가루를 옮겨줄 벌과 나비를 하나라도 더 부르기 위한 꽃들의 경쟁이 시작된다. 벌과 나비에게 자기를 알리고 유혹하는 기법이 상상 이상이다. 벌과 나비에게만 보이는 자외선 무늬로 스스로를 장식하는가 하면, 네온사인 같은 전기신호도 내뿜는다. 심지어 카페인과 니코틴 같은 독성 물질까지 활용한다. 꽃에서는 이런 독(毒)도 벌이 그들을 잊지 못하게 하는 약(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카페인으로 벌의 기억력 조종하는 꽃

    벌과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은 꿀 때문이다. 꽃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달콤한 꿀을 제공하는 게 유리해 보인다. 그런데 커피나무 꽃이나 자몽, 오렌지 같은 감귤류의 꽃에는 꿀에 쓴맛을 내는 카페인이 들어 있다. 다른 식물들은 카페인으로 잎을 갉아먹는 해충을 물리친다. 달콤해도 모자랄 판에 왜 카페인을 꿀에 섞은 것일까.

    영국 뉴캐슬대의 제럴딘 라이트 교수 연구진은 이른바 '파블로프 조건반사' 실험으로 꿀에 들어간 카페인의 역할을 추적했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는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울렸다. 나중에 개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렸다. 실험에서 벌에게 꽃향기와 함께 꿀을 제공했다. 한쪽은 일반 꿀을, 다른 쪽은 커피 꽃이나 감귤류 꽃에 든 정도의 카페인을 넣은 꿀을 줬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꿀벌은 나중에 꿀 없이 꽃향기만 나도 주둥이를 뻗었다. 그런데 앞서 카페인이 든 꿀을 먹었던 벌은 24시간 뒤에 꽃향기만 맡고 주둥이를 뻗는 비율이, 즉 꽃향기에 대한 기억력이 일반 꿀을 먹은 벌보다 3배나 높았다. 3일 뒤에도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꽃향기를 잘 기억하면 그 꽃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크다. 꽃은 카페인으로 충성도가 높은 벌을 만들어낸 것이다. 라이트 교수는 지난 8일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연계에서 동물의 기억력을 조종하는 첫 사례"라고 밝혔다.

    카페인 함유 음료캔에 내려앉은 꿀벌(1). 카페인이 있는 꽃의 꿀을 맛본 벌은 그 꽃을 다른 꽃보다 더 잘 기억한다. 벌은 향기로 꽃을 기억한다. 향기는 더듬이에 있는 후각 수용체와 더듬이엽의 신경세포를 거쳐, 기억을 담당하는 버섯체로 전달된다(2). 버섯체에는 37만개의 기억담당 케년 신경세포가 있다. 벌이 꿀을 맛보는 보상을 받으면 이 신호도 배 쪽의 신경세포(VUMmx1)를 통해 버섯체로 들어간다(3). 카페인은 버섯체에서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증가시키고, 기억세포 기능도 높인다. 결국 벌은 꿀에 카페인이 있는 꽃의 향기를 더 잘 기억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연구진은 카페인이 벌의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밝혔다. 포유동물에서는 카페인이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에 작용한다고 알려졌다. 연구진은 벌의 뇌를 카페인이 든 액체에 담그고 전기 활동을 측정했다. 그러자 벌에서 해마에 해당하는 버섯체의 신경세포들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섯체는 후각신호를 기억으로 저장하는 곳이다. 영국 런던대의 라스 치트카 교수는 같은 날 사이언스에 실린 분석 논문에서 "꽃가루받이 체계는 벌이 꽃을 선택하는 생물계의 시장"이라며 "꽃은 화려한 시각적 디스플레이, 향기와 함께 정신에 작용하는 약물로 곤충의 기억력을 조절해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 불공정한 이득을 얻는 것"이라고 밝혔다.

    담배 성분인 니코틴도 카페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꿀에 카페인이나 니코틴을 미량 함유한 식물은 100종이 넘는다. 이스라엘 하이파대 연구진은 벌이 여러 종류의 꿀 중 선호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꿀벌은 순수한 꿀보다는 카페인이나 니코틴이 든 꿀을 선호했다. 카페인·니코틴의 농도는 1L에 1㎎으로 자연 상태와 비슷했다. 니코틴 농도가 아주 짙으면 순수 꿀을 택했다.

    ◇꽃 상태 실시간 광고하는 네온사인

    꽃잎의 화려한 색은 벌과 나비를 부르는 일종의 광고판이다. 꽃은 특이하게 자외선 광고판을 쓴다. 벌과 나비는 사람과 달리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전체가 노랗게 보이는 꽃도 자외선으로 비추면 가운데 부분이 진하다. 벌과 나비를 꽃가루가 있는 가운데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꽃엔 기체가 전기를 띠면서 빛을 내는 네온사인 같은 전기광고판도 있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대니얼 로버트 교수는 지난달 21일 사이언스 인터넷판에 "꽃잎이 벌의 일종인 뒝벌에게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리는 전기신호를 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꽃잎은 약한 음전기를 띤다. 벌은 공중을 날 때 양전기를 띤다. 서로 전극이 다르므로 벌이 꽃잎에 앉으면 미세한 전기가 흐른다. 연구진이 페튜니아 꽃잎에 전극을 댔더니, 뒝벌이 앉으면 전기신호가 바뀌어 몇 분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뒝벌은 꽃잎의 미세한 전기신호 차이를 잘 구별해냈다.

    꽃 입장에서 전기신호는 벌에게 이미 다른 벌이 다녀갔는지, 아니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는지 알리는 정직한 광고가 된다. 꽃은 과대광고로 불필요한 손님을 더 끄는 것보다는 솔직한 광고로 허탕을 치지 않는 편을 택한 것이다. 특히 다른 벌이 찾고 나서 꽃잎의 색이나 형태, 습도가 변하는 데에는 수 분에서 수 시간이 걸리지만, 전기신호는 수초 내에 바뀐다. 말 그대로 실시간 광고판인 셈이다. 연구진은 벌의 몸에 있는 미세 털이 전기신호를 감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전기신호는 벌이 꽃의 색깔을 더 빨리 구별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