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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중순 LG그룹 정도경영 태스크포스(TF) 팀은 구본무<사진> 회장에게 새로운 윤리 규범안을 제출했다. 구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과 "사회에 기여할 윤리경영 실천방안을 찾자"는 교감 아래 진행돼 온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3일 발표한 LG그룹의 신(新)윤리 규범이다. 고위 임원들이 '작은 결혼식' 캠페인에 동참하고 전 임직원은 협력업체로부터 경조사 부조금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LG그룹 같은 대(大)그룹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데는 구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대기업은 많은 협력업체와 관계가 있다. 만약 대기업 임직원들의 결혼식이 있게 되면 협력업체들로서는 큰 부담을 갖는다. 이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측근들에게 문제의식을 얘기했다.

실제 공공기관이건 기업이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갑(甲)의 위치를 이용해서 을(乙)에게 청첩장을 뿌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을이 겉으로는 웃으면서 축의금을 내지만 속으로는 억울하고 피곤해 한다. 구 회장은 이 점을 말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승진한 임원들에게 "협력업체와 대기업이 다 같이 잘돼야 한다"고 했고, 이번에 "경조사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자"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국내 어느 기업보다 윤리규범 강도가 세다. 현재는 납품하고 있지 않더라도 앞으로 납품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협력업체까지도 결혼식 축의금 금지 대상에 올랐다. 각 계열사 홈페이지에 '정도경영 사이버 신문고' 코너를 마련해 협력업체로부터 이를 위반한 사례를 수집하고, 조사를 벌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LG 직원들의 서약… 3일 ㈜LG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에서‘작은 결혼식’캠페인 등이 포함된‘정도 경영 실천서약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LG그룹은 고위 임원 자녀의 특급 호텔 결혼식을 자제하고, 임직원이 협력업체에서 경조금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신윤리 규범을 발표했다.

또 고위 임원들의 '작은 결혼식' 캠페인과 관련, 구 회장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호화 결혼식을 하며 축의금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나타냈다. 특급호텔 등 호화로운 장소를 피하고 하객 규모와 예물도 최소화한다는 실천방안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계층이 솔선수범해야 허례허식 문화를 고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LG그룹의 '작은 결혼식' 캠페인 동참은 대기업 중에는 한진해운과 포스코에 이은 것이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작년 10월 "두 딸이 결혼할 때 작지만, 감동이 있는 결혼식을 올리겠다"면서 대기업 오너 중 처음으로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해 11월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나부터 두 딸을 시집보낼 때 양가 합쳐 200명만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앞으로 임원이건 평사원이건 사돈이 결혼식 크게 하자고 하면 무조건 내 이름을 팔면서 '회사 오래 다니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