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외톨이 '묻지마 범죄' 급증

입력 2012.08.20 06:18

의정부역서 시민 8명에 무차별 칼부림
홧김에, 술김에, 게임 중독에… 묻지 마 범죄

18일 오후 6시 30분쯤 경기도 의정부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유모(39)씨가 10여분간 흉기를 휘둘러 시민 8명이 다쳤다. 주말 저녁 시간에 공공장소인 지하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시민은 유씨가 느닷없이 휘두른 흉기에 날벼락을 맞았다.

일면식도 없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유씨의 범행은 전형적인 '묻지 마 범죄'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최근 10여년 동안 일정한 직업이 없이 공사판을 떠돌아다녔고, 40대를 앞두고 있지만 가정을 이루지 못한 채 타인과 고립된 삶을 살아온 유씨는 현실 불만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이어지는 '묻지 마 범죄'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묻지 마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에 따르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는 2000년 306명에서 2005년 319명, 2010년에는 465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단절과 경제적 낙오 등의 좌절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범행으로 풀고 있고, 일부는 컴퓨터나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달 초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골목길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모(27)씨는 귀가 중이던 조선족 장모(여·40)씨의 목과 허벅지 등을 흉기로 12차례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구속됐다. 특정한 직업 없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씨는 빚 1200만원을 지고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장씨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살하려고 며칠 전부터 흉기를 갖고 다녔는데 술김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대형 서점에서 노숙인 서모(45)씨가 책을 보던 권모(23)씨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친 사건이 있었다. 서씨는 “서점에서 나가라”고 한 20대 남성에게 격분한 나머지 그와 뒷모습이 닮은 권씨를 향해 둔기를 휘둘렀고, 결국 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서씨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고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였다”며 서씨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묻지 마 범행을 저지른 노숙인 서씨가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지난 2008년 10월에는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서 정모(31)씨가 불을 지르고 입주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숨진 사건도 있었다. 정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 경찰 조사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2010년 8월 공사판을 전전하던 윤모(35)씨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다세대주택 옥탑방에 들어가 자녀와 함께 TV를 보던 임모(당시 42세)씨 부부를 살해했다. 윤씨는 경찰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배회하던 중 임씨 가족의 웃음소리를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게임에 빠져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해 묻지 마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2010년 12월에는 김모(25)씨가 범행 당일 새벽까지 인터넷 폭력 게임을 즐긴 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출근하던 20대 남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미국 명문대에 다녔다.

왜 이런 묻지 마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증가하고 있을까.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대인관계와 직업에서 실패와 좌절을 맛보며 사회 부적응으로 이어진 스트레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며 “일상적인 부적응 문제를 겪는 사람이 늘고 있어 묻지 마 범행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씨는 학력이 낮고 주거나 직업도 일정치 않아 무시와 냉대를 받으면서 쌓인 좌절감이나 피해의식을 해소하지 못하고 억제해오다 20세가량 어린 승객이 대들자 갑자기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회적 안전망의 약화도 지적됐다. 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사회와 연결고리가 끊어진 이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분노를 범행으로 표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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