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100쌍 캠페인'에 신청한 젊은 연인 두 쌍이 서울 종로구 효자로 청와대 사랑채를 둘러봤다.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봄빛 도는 청와대 앞길도 거닐었다. 캠페인 시작 닷새 만에 이들을 포함해 총 375쌍이 "내 힘으로 작은 결혼식 올리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체면과 허영 대신 '실속'을 따지는 분위기가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 폭넓게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하용(34·영어학원 강사)·최하양(33·외국계회사 직원)씨 커플은 명지대 99학번 동기다. 장학생으로 유럽에 해외 문화 탐방 갔다가 알게 돼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 1년 전 연인이 됐다. 이들은 "하루 허영심 부리려고 수천만원 쓰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신혼집 마련하는 데 보태겠다"고 했다.

결혼 말이 나온 뒤 초등학교 교사 하는 신랑 어머니가 먼저 "예단·예물 하지 말자"고 했다. "양가에 돈이 오가다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이 많더라. 싸움의 씨앗을 만드느니 허례허식 하지 말자." 신부 어머니도 예비 부부에게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예비부부는 신랑이 사는 원룸 보증금에 예비부부의 저축과 대출을 보태 신혼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부모 힘 빌리지 않고 자기 저축을 털어 가까운 사람 100명만 초대해 작지만 경건하게 식을 올리기로 했다.

"친척 오빠가 10년 사귄 여자 친구와 웨딩 사진 촬영까지 마치고 신혼집 구하다 파혼했어요. 여자가 예단을 얼마 해와야 한다는 둥, 집값 몇%는 돼야 한다는 둥 돈 얘기가 오가다 감정이 상한 거죠. 오빠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우리나라 결혼 문화가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작은 결혼식을 올릴 거예요." (예비 신부 최씨)

"최근 서울 강남 유명 예식장에서 양식 먹으며 예식을 보는데, 하객이 하도 많아 신랑·신부 얼굴을 스크린으로 봤어요. 장소만 호화롭지 시장바닥이었죠. '이러려고 수천만원씩 쓰다니 너무 아깝다' 싶었어요."(예비신랑 이씨)

“제 힘으로 작고 아름다운 결혼식 올릴 거예요!”박시내·이현희·이하용·최하양(왼쪽부터)씨 등 올해 결혼하는 청춘남녀 네 명이 30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 청와대사랑채 앞에 모여 유쾌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와 여성가족부가 진행하는‘100쌍 캠페인’에 이들을 포함해 375쌍이 신청했다.

이씨는 "그 일을 계기로 '결혼을 왜 하나'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했다. "저는 내성적이고, 여자 친구는 활동적이에요. 여자 친구가 놀러 가자고 졸라 이곳저곳 같이 다니다 보니 참 즐거웠어요.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평생 함께 있고 싶은 게 중요하지, 남에게 보이는 부분은 정말 잠깐 아닐까요?"

이현희(28·중소기업 직원)·박시내(25·병원 영양사)씨 커플은 "이만큼 키워준 부모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다"고 속 깊은 얘기를 했다. 이씨는 금실 좋은 서민 부부 외아들, 박씨는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순둥이'로 귀여움받는 3남매 둘째 딸이다. 두 사람 중 하나가 피곤해하면 다른 하나가 퇴근한 뒤 얼른 상대방 직장 근처로 달려가 사탕 하나씩 챙겨주곤 했다.

"연애 초기에 여자 친구에게 '우리 집 잘살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어요. 여자 친구가 실망할 줄 알았는데 '물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한텐 오빠가 중요해'라고 대답했어요. 그때 결혼을 결심했지요."

외아들이 데려온 여자를 보고, 신랑 어머니는 "예단 같은 거 하지 말자"고 먼저 말했다. 예비 신부 박씨는 그런 시어머니가 고마웠다. "제 후배는 시어머니가 '냉장고는 ○○브랜드, TV는 ○○브랜드…' 라고 적은 리스트를 뽑아줬대요. 하라니까 하긴 했지만, 결혼할 때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였어요. 돈도 돈이지만, 그런 결혼이 잘될 수 있을까요?"

예비 신랑 이씨는 "소박하게 출발하되 꿈은 더 크게 꾸자고 얘기했다"고 했다. 돈 많이 모아서 자기 힘으로 꿈 같은 여행을 하는 게 두 사람의 목표다.

예비 신부 박씨는 "꼭 100쌍에 뽑혀서 부모님께 '거봐! 아빠·엄마 자식 하난 잘 키웠지?' 하고 싶다"고 했다.

"아빠·엄마가 남들만큼 못 해줬다고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해준 것도 고마워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테니 아빠·엄마가 언제까지나 지켜봐주면 좋겠어요."

[-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시리즈 1부]

[-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시리즈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