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재, 글로벌 기업 핵심에 대거 진출… 한국어 공식언어 되기도

입력 2012.02.04 03:01

"한국 시장서 단련되면 경쟁력 있다"… 글로벌 기업들 러브콜
"한국 사람 더 달라" - 美 퀄컴 본사서 수시로 요청
한국 직원 너무 많이 빼가 한국지사 업무지장 받을 정도
글로벌기업 아태본부 핵심 장악 - 구글·이베이·구찌·HP 등서 초고속 승진하며 승승장구
한국 인재 왜 찾나 - 글로벌 감각 뛰어나고 세계 최대시장
중국 공략에 역량 검증된 한국인재 선호

글로벌 기업들이 내부 전산망에 올리는 문서에는 보통 영어·스페인어·중국어 버전이 있다.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많은 세 언어들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에는 하나가 더 있다. 한국어가 사내 문서의 공식 언어 가운데 하나다. 이베이의 아시아 비즈니스의 중심은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다. 또 이베이 중국·대만·호주·싱가포르·필리핀 지사장은 매년 10월 한국으로 온다.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베이 아태지역 총괄인 이재현 대표에게 다음해 사업 계획을 보고하고 예산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 인재가 글로벌 기업 본사와 아태본부의 핵심 보직으로 대거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한국의 인재 경쟁력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한국 사람을 더 달라"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업체인 퀄컴의 글로벌 세일총괄 겸 아시아총괄을 맡고 있는 퀄컴코리아 도진명 지사장은 미국 퀄컴 본사와 수시로 신경전을 벌인다. 한국 직원을 더 보내달라는 본사의 요구를 적절히 방어하기 위해서다. 전에는 한국 직원을 본사로 보내겠다고 해도 "비용이 많이 든다" "리스크가 크다"며 마뜩잖은 반응이었으나, 2~3년 전부터는 거꾸로 본사에서 한국인 직원을 많이 빼가는 바람에 퀄컴 코리아가 업무에 지장을 받을 지경이다. 현재 한국지사 출신으로 퀄컴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약 30여명. 이 가운데 2명은 본사 임원으로 승진했다. 도 사장은 "예전엔 본사가 원하는 한국인 직원은 주로 엔지니어에 국한됐지만, 최근엔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을 주요 포스트에 뽑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업체인 GSK 아태총괄본부는 싱가포르에 있지만 한국인 직원이 7명이나 된다. 몸은 한국지사에 있지만 아태 총괄 업무를 보는 사람까지 합치면 50여명에 달한다. 한국 인재들이 그만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 인재의 인기는 BMW 인도지사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안드레아스 샤아프 인도 지사장은 한국지사 부사장으로 있다가 인도 지사장으로 영전해 옮겨갔다. 그는 6개월간 인도에서 일한 뒤 상사로 모셨던 김효준 BMW 코리아 지사장에게 간청을 했다. 김 사장은 아시아인 최초의 BMW 본사 임원이다. 샤아프는 "한국 직원들과 일하다 이곳 직원들과 일하려니 너무 힘들다"며 한국지사 직원을 보내달라고 해 데리고 갔다.

글로벌 아태총괄 장악한 한국인들

글로벌 기업 내에서 한국 인재들이 실력을 발휘하면서 고위직까지 초고속 승진하며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선 아시아·태평양 사업을 총괄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구글코리아 이원진 전 대표는 작년 말부터 본사 부사장을 맡아 아태지역 세일즈를 총괄하고 있다. 이베이 이재현 대표를 포함해 HP 전인호 부사장(아시아·태평양·일본 비즈니스크리티컬시스템 사업 총괄)과 아서디리틀 이석근 아태총괄사장이 그런 예다. 명품과 화장품업계에서는 구찌 그룹의 윌리엄 윤 사장, 티파니 김미셸 사장, 펜디 김정훈 사장, 바비 브라운 장재영 사장이 아태본부 사장이다.

한국인들이 글로벌 기업에서 약진하는 이유는 미국 등 해외에서 유학을 하거나 글로벌 경험을 쌓은 인재의 풀(pool)이 풍부해진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실제로 한국은 미국 유학생이 중국(15만899명)에 이어 두 번째(10만1652명)로 많은 나라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에서 활약하는 한국 인재들이 모두 해외파인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은 '토종'도 적지 않다. SAS 한국지사 정미교 상무는 지난달 북아시아 마케팅총괄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는 유학 경험이 전무하다. 정 상무는 "미국인처럼 영어를 하지는 못하지만 일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콘텐츠"라고 말했다. 지난달 존슨앤드존슨 북아시아 총괄 사장으로 승진한 한국존슨앤드존슨 최승은 사장도 어렸을 때 해외에 있긴 했지만 학교는 모두 한국에서 마친 국내파다.

한국 IT·유통 경쟁력이 인재 경쟁력으로 연결

글로벌 기업, 특히 아태본부에서 한국 인재들이 약진하는 이유는 한국 경제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IT와 유통 등 일부 산업 부문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 분야에서 한국 시장은 글로벌기업이 내놓는 최첨단 제품과 서비스의 '테스트 베드(시험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헤드헌팅 업체인 KES의 양영호 대표는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인만큼 글로벌 감각을 갖춘 인재도 드물다"며 "시장의 변화가 빠르고 까다로운 소비자가 많은 한국 시장에서 단련된 인재는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글로벌 기업들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과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요인도 한국 인재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약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양 대표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하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인보다는 글로벌 역량이 검증된 한국 인재를 찾는 기업들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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