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또다른 마약 ④] "게임에 빠진 아들 구하자" 아예 외국으로 유학 보낸 가정도

조선일보
  • 김덕한 기자
    입력 2012.02.03 03:05 | 수정 2012.02.03 19:00

    [유독 게임에 깊게 빠지는 한국 청소년들]
    완벽한 인터넷 인프라 환경 -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접속, 온라인 게임 비중 70% 육박
    게임하며 그들만의 사회 형성 -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속, 가상의 세계 유대 중시
    게임 못하면 고립 우려… 헌혈로 게임비 마련하기도

    게임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최후 수단으로 '도피형 외국 유학'을 보내는 부모들도 있다. 주부 양하영(가명·46·서울 대치동)씨는 고교생 아들을 지난해 큰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보냈다. 원래 계획이 있었다거나 가정형편이 넉넉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게임 도피 유학'이었다. 양씨는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학교에선 잠만 자는 주침야활(晝寢夜活)형 아이들 때문에 속을 끓이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다"며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함께 팀을 짜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정애(가명·53·광주광역시)씨는 게임에 푹 빠진 늦둥이 아들(16)을 할 수 없이 기숙학교로 '유학'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어린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플래시 게임을 하던 아들은 최근엔 서든어택 같은 사격게임을 새벽 2시까지 했다. 캐릭터가 죽거나 다치면 큰소리로 화를 내고 책상을 쿵쿵 치며 흥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게임이 금지된 기숙학교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서울시내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 PC방은 밤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다른 나라 청소년들도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게임에 많이, 그리고 깊게 빠져들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언제, 어디서나 게임에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인프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이지만 이를 나쁜 방향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김현수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교수는 "거의 모든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이 연결돼 있고 평균 세 살 때부터 인터넷을 시작한다"며 "그런데도 극핵가족(extreme nuclear family)사회가 되면서 돌보는 사람은 없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게임 중독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게임 비중은 전체 게임의 67.1%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나라보다 두세 배 높다"면서 "오프라인 게임은 본인의 결심으로 게임을 끊는 게 용이하지만 온라인 게임은 수많은 '게임 친구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게 너무 힘들어 게임을 끊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게임을 하는 아이는 혼자 놀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 특히 중·고생에게 인기가 높은 메이플스토리 같은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등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속해 게임을 하기 때문에 게임 내부에서 가상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서열도 정해진다. 아이들은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길드'(팀, 그룹)를 꾸려 함께 몬스터를 잡고, 전투를 하며, 잘하는 친구를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레벨이 높은 사용자는 낮은 사용자들을 도와 함께 강한 몬스터를 잡아 경험치를 올릴 수 있도록 해주고, 좋은 아이템이 나오면 나눠주기도 한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이렇게 게임 속 캐릭터를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다"면서 "집에서 무뚝뚝한 아이들이 게임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부모가 본다면 엄청난 배신감조차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배주미 팀장은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오프라인에서의 인간관계는 멀어지는데 컴퓨터 게임마저 끊으면 더 고립될 수 있다는 생각에 끊기 어려워진다"며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부모들이 잘 이해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벽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장은 "청소년 인터넷게임 중독과 관련된 기회비용 손실액이 매년 2조2000억원에 달하고, 성인까지 포함하면 10조원까지 추정된다"며 "이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가정, 학교는 물론 게임 관련 기업까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천자토론] 또 다른 마약인 '게임 중독',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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