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1000兆… 빚 불감증 사회] 과외 3곳 뛰어도 대출 없인 대학 못다녀… "선배 때와 달라요"

입력 2012.01.31 03:03

[3] 고금리 대출로 살아가는 20대들
20년전 대학생들은 - 아르바이트 몇달만 하면 학자금·생활비 마련 충분
지금은 20대 22%가 빚쟁이 - 비싼 등록금·취업난 시달려 학자금 신용불량자 3만명
금융권 '손쉬운 대출' 유혹 - 신용낮아 고금리 저축銀 이용, 빚 내서 명품 과소비하기도

서울의 4년제 사립대학 인문사회계열 11학번 이모(20)씨는 지난해 1학년답지 않게 바쁘게 살았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월 9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남는 돈은 별로 안 됐다. 아껴 쓴다 했는데 휴대폰 요금(8만원), 식비(30만원), 교통비(4만원) 등 한 달에 생활비가 66만원 들었다. 그나마 등록금(350만원)과 하숙비(50만원)를 부모님이 부담해 줘 매달 24만원을 남겨 통장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돈은 모아서 취업 필수 코스라는 교환학생 등록금으로 써야 한다. 이씨는 "계속 등록금을 손 벌릴 처지는 아니니 고학년 때는 친구들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20년 선배인 91학번 신모(40)씨가 학교에 다닐 땐 달랐다. 한 학기 등록금은 평균 85만원 정도로 그동안의 물가상승률(112%)을 감안하더라도 지금보다 절반 이상 쌌다. 하숙비도 20만원이면 됐고, 과외 하나(20만원) 하면 데이트도 하고 당구도 칠 수 있었다. 신씨는 "아르바이트 몇 달 하면 생활비 쓰고 등록금 마련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며 "종일 데이트해도 2만원 쓰면 여자 친구 호강시켜 줬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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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학번 이씨는 학생회관에서 2500원짜리 밥을 먹는다. 91학번 신씨 때는 1000원이었다. 요즘은 8000원 하는 영화요금도 당시엔 2500~3000원이었고, 커피도 1000원이면 됐다. 선배는 4년 대학 다니는 데 2888만원이면 됐는데, 후배는 8368만원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190% 오른 것이다. 112% 오른 물가를 훨씬 웃돈다.

20대부터 채무자 인생

요즘 20대는 부모의 뒷받침이 없는 한 예전처럼 자신의 힘으로 대학을 마치기가 힘겹다. 그래서 많은 20대가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대출받는다. 사회에 처음 뛰어들 때부터 빚을 지고 출발하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신용대출을 받은 20대 가구주 비율은 22.4%로 전년 11.2%의 정확히 배로 늘었고, 40대(17.1%), 50대(13.8%)를 웃돌았다. 가구주만 조사한 것이지만, 다른 20대도 신용대출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경기도의 한 전문대에 다니는 유모(24)씨는 등록금(약 400만원)을 벌기 위해 저축은행 2곳에서 400만원을 빌렸다. 건설 현장에서 매달 100만원을 버는 아버지의 일감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휴학한 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체 이자만 갚아오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은 2006년부터 급증해 이젠 2만9896명(지난해 9월 기준)에 달한다.

취약해진 부모 세대의 경제력이 20대 자녀를 신용불량자로 몰아가기도 한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추모(28)씨는 2년 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1200만원을 빌렸다. 신용 상태가 좋지 않아 대출이 어려운 아버지 대신 자신의 명의를 썼다. 대출금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 인테리어를 바꾸고 메뉴도 단장했지만 여전히 적자였다. 대출 원리금은 3000만원으로 불어났고, 그는 대학 4학년 때인 지난해 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빚지라고 20대 유혹하는 금융사들

빚의 유혹에 약한 20대들에게 금융회사들은 일단 돈을 빌려 주고 본다. 3개월짜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뛰어도 일단 수백만원을 30%가 넘는 이율로 대출해준다. A저축은행 관계자는 "많은 20대 고객들이 '돌려막기'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돈을 안 빌려주면 더 이자 많이 받는 사채 시장으로 갈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20대의 '빚 불감증'도 문제다. 소득은 적어도 명품을 가지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다. 인천 남구 주안동에 살며 텔레마케터 일을 하는 김모(22)씨는 1100만원 빚쟁이다. 매달 120만원 벌면서 한달에 200만원어치씩 카드로 옷과 화장품을 샀다. 김씨는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백화점에 다녔다"며 "처음 100만원 대출받을 때 '100만원 버니까 나중에 충분히 갚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 등에서 젊은이들이 돈을 빌릴 때 학자금 명목으로 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다른 곳에 쓰지 못하도록 대출금을 강제로 학교 통장에 넣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 낮아 '저축은행 대출인생'

똑같은 액수를 빌리더라도 20대의 빚 문제는 다른 연령대보다 심각하다. 소득이 거의 없고, 사회경험도 적고, 신용이력(履歷)도 없어 더 높은 금리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30일 나이스신용정보에 따르면 신용정보가 등재된 20대(678만명) 인구 중 54%(365만명)가 5~6등급이었다. 전체 인구 중 5~6등급 비중은 31.2%인데, 20대에는 유독 5~6등급이 많은 것이다. 5~6등급은 저축은행의 주요 고객층이다. 20대의 낮은 신용등급은 2금융권 회사들이 높은 이자를 매기는 빌미가 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20대들의 재무 상태에 구멍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려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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