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호텔입니다

조선일보
  • 홍원상 기자
    입력 2011.09.16 03:08

    도서관·커피숍·주민센터… 일상으로 스며드는 한옥
    친환경 열풍을 타고 - 한옥의 절제미·자연친화 소재가 정서적 안정감 줘… 서울시, 전통요소에 편의성 담은 디자인 개발 나서
    한옥의 대중화, 숙제는… 온돌 대신 보일러, 이중창호 등 시공기술 좋아져
    일반 한옥 난방비의 1/10 수준 '그린 한옥'도 나와, 건축비 비싼 게 흠… 자재·공법도 더 표준화해야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있는 '글마루 한옥 어린이 도서관'. 구로구가 총 사업비 14억8500만원을 들여 지난 4월 문을 연 이 도서관은 지상 2층인 건물 전체가 한옥이다. 건물의 기본 골격을 전부 나무로 쌓아 올리는 등 조선시대 서원 건립 방식대로 지어져 이곳을 찾은 어린이들이 마치 옛날 서당에 온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구로구청 이용환 교육지원과장은 "건물 앞뒤로 정원을 조성하고 실내 자료실과 열람실도 한옥 마루 형식으로 꾸몄다"며 "성냥갑 같은 시멘트 건물이 아니라 나무로 지은 한옥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책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파트의 편리함과 경제성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가던 한국의 전통가옥 한옥이 최근 친환경 건축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나무 소재와 기와 등 전통 한옥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첨단 건축공법과 현대식 디자인을 접목해 일반 주거용 건물뿐 아니라 도서관·호텔·공공건축물에도 응용된다.

    경북 경주에 있는 한옥 호텔‘라궁’의 모습. 전통적인 건축 방식으로 한옥의 정취를 간직하면서 현대적인 호텔 서비스를 접목했다. /라궁 제공
    커피숍·호텔 등 쓰임새 다양

    서울 종로구 안국동·가회동 일대에 형성된 북촌 마을에는 900여 가구의 기와집들이 리모델링을 통해 내부를 현대적으로 고쳐 일반 주택뿐 아니라 음식점이나 커피숍, 예술가들의 공방(工房)으로 쓰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한옥의 쓰임새가 더 넓어지고 있다. 경북 경주시 신라밀레니엄파크에 있는 호텔 '라궁(羅宮)'은 지하 1층~지상 2층(1만6525㎡)의 건물 전체가 한옥식 나무 구조로 지어졌다. 100m가 넘는 긴 회랑(回廊)을 따라 연결된 16채의 객실 내부도 온돌과 누마루·안마당 등으로 구성돼 전통한옥의 모양새를 갖췄다. 라궁 민대식 과장은 "목재와 한지 등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해 통기성이 우수하다"며 "외국인 고객 수도 매년 10% 이상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옛날 서당 분위기가 물씬 나는‘글마루 한옥 어린이 도서관’. /구로구청 제공
    종로구 혜화교차로 인근에 있는 혜화동주민센터 역시 1940년대 지어진 'ㄷ자(字)' 모양의 전통한옥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주민센터에 들어서면 네모난 뜰에 석등이 놓여 있고 처마 밑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무량수(无量壽)'라는 글이 걸려 있다. 안영환 동장은 "갈수록 늘어나는 현대식 건축물 속에서 전통 건축양식을 보존하고 지역 특색을 살리기 위해 한옥 주민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강재식 연구위원은 "친환경 웰빙 효과와 한옥의 절제미가 주는 정서적 안정 등이 최근 한옥이 다시 인기를 얻는 이유"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지난 6월 2층 한옥, 상가 한옥 등 한옥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편의성이 담긴 다양한 한옥 디자인 개발에 나섰다. 서울시 이병근 한옥문화과장은 "주거 중심의 한옥을 주변 지형이나 용도에 맞게 다양화하는 연구 용역을 발주한 상태"라며 "예전에는 온돌 구조여서 2층 한옥을 짓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보일러와 히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건축비·에너지 절감… 풀어야 할 숙제

    한옥의 대중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가격이 비싸고 단열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엔 한옥 관련 시공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제성도 크게 개선됐다.

    추운 겨울 실내로 스며드는 외풍(外風)을 막기 위해 아파트에 설치하는 이중 창호나 단열 필름을 한옥에도 사용하고, 단열성이 높은 경량지붕과 기능성 벽체, 고효율 난방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그동안 전통기술을 보유한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건축 과정도 자재를 표준화하고 기계화하는 방법으로 비용과 시간을 줄였다.

    1940년대 지어진 한옥을 개조한 서울 종로구 혜화동주민센터. /종로구청 제공
    최근에는 일반 단독주택 수준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그린(에너지 절감형) 한옥'도 나왔다. 대구시 도학동에서 짓고 있는 116㎡ 크기의 한옥은 외관은 기존 한옥과 같지만 난방에 쓰이는 기름 사용량(1㎡당 연간 1.5~2L)이 일반 한옥(연간 20L)의 10분의 1 수준이다. 강재식 연구위원은 "자연 채광이 가능한 한지(韓紙)와 에너지 손실을 줄여주는 유리를 함께 쓰는 방식 등으로 그린 한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옥의 비싼 건축비는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다. 보통 일반 주택은 3.3㎡당 400만원 정도면 신축이 가능하지만, 한옥은 3.3㎡당 1000만원 정도가 든다. 건물 면적이 105㎡(32평)인 주택을 짓는 데 들어가는 땅값을 제외하고도 공사비만 3억원가량 들어가는 셈이다. 일반 주택보다 내부 공간이 좁게 느껴지거나 주차 공간이 넉넉지 않은 것도 한옥 생활의 어려움 중 하나다.

    그 해결책으로는 조립식 목재를 사용하는 등 자재와 공법을 표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세대 이현수 주거환경학과 교수(현대한옥학회장)는 "한옥이 대중화되려면 공법과 자재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치수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도심 속 현대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한옥의 품격을 유지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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