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정의 CEO라운지] 돌아온 청년 재벌, 허민 전 네오플 대표

조선비즈
  • 류현정 기자
    입력 2010.10.24 16:40 | 수정 2010.10.24 18:57

    “로이스터 감독이 경질되다니요. 저 이제 롯데 팬 안 합니다. 안 해요.”

    허민 전 네오플 대표(34)는 ‘청년 재벌’ 이전에 지독한 야구팬이다. 부산 대동고와 ‘백전백패’ 서울대 야구부 출신의 골수 롯데 팬과의 인터뷰는 야구로 시작해 투구 시연으로 끝났다. SK와이번스가 삼성라이온즈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직후라 무엇을 말해도 야구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허 전 대표는 2006년과 2008년 온라인 게임업체 네오플의 지분을 NHN과 넥슨에 각각 넘겨 수천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그가 2001년 창업한 네오플은 ‘땅볼’과 ‘1루타’ 정도 곧잘 치던 작은 게임 회사였다. ‘만루 홈런’은 2005년에 터졌다. 네오플의 액션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 이 게임은 넥슨에서 인수된 지 1년 만에 아시아권 동시접속자수 20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허민 전 네오플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허 전 대표를 청년 재벌의 이미지로 확실히 각인시킨 것은 강남 대형 빌딩을 단독 인수했다는 뉴스였다. 그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공포가 가시지 않은 지난해 대치동 소재 미래에셋타워를 800억원대에 인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네오플 매각과 함께 홀연히 미국행을 선택했던 그가 최근 한국에 돌아와 투자자로 활동하면서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 투자자라기보다 야구 연습생 같다. 얼굴이 까맣다. (단, 그의 스타일은 꽤나 진화했다. 머리도 기르고 안경도 바꿨다)
    “소셜커머스업체 나무인터넷에 투자했지만, 직함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매일 야구 연습을 한다. 야구 선수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 미국으로 간 지 벌써 3년이 다 돼 간다.
    “사람들은 돈을 벌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네오플 지분 전량을 넥슨에 넘기고 나서 행복하지 않았다. NHN 지분 매각으로 이미 돈은 있었다. 미국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좋아하는 야구와 음악을 배웠다.”

    - 대박을 터뜨린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솔직히 공감이 잘 안간다.
    “사실 NHN에 지분을 넘겼을 때는 좋았다.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5만원 생활을 청산하고 자동차도 샀다. 지인들로부터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다. 6개월뿐이었다. 어릴 때 프라 모델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일주일에 만원도 안 되는 용돈을 열심히 모았다. 그런데 성인이 돼 프라 모델을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됐다고 영원히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네오플 매각에 관한 최종 계약서에 사인할 때, 속된 말로 ‘죽었구나’ 싶었다. 왜 내가 이 좋은 회사를 팔지 했다.”

    - 빨리 현금화하고 싶었던 것인가.
    “같은 회사를 두 회사에 팔았으니 나는 게임업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셈이다. 두 번 딜(deal)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2006년 NHN의 지분 매각 제의를 받았을 때 가슴이 뛰었다. ‘내가 못다 이룬 (세계 시장 제패의) 꿈을 함께 이루자’는 김범수 전 NHN 대표의 말씀을 잊지 못한다. 넥슨에 지분을 매각했을 때 나 스스로 ‘번 아웃(Burn Out)’돼 있었다. 게임업체 CEO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마구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스스로 지쳐 있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온라인 게임 서비스라는 것이 ‘내릴 수 없는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다. 잘 나갈수록 수만 번 업데이트 해야 하고 해외 진출 전략부터 파트너 제휴까지 온갖 것을 고민해야 한다. 경영인이라는 옷이 너무 무거웠다. 자유를 얻고 싶었다.

    아시아권 동시접속자수 20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던전앤파이터' 게임장면

    -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과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15년 가까이 ‘게임 바닥’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젊은 나이에 손을 빨리 뗐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존경한다. 당시 나는 ‘경영의 사춘기’였다. 네오플이 더 잘 될 것을 알면서도 하차한 것을 보면. 넥슨에서 인수 제의가 오고 일주일 만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넥슨은 허민 전 대표 등의 네오플 지분(59.15%)과 NHN의 네오플 지분(40.85%)을 매입하는 데 3800억원 이상 쏟아부었다. 이 거래는 한국 게임사상 최대 인수합병(M&A) 사례로 꼽힌다. 넥슨이 고평가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넥슨이 전세계 게임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던진 승부수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허 전 대표의 미래에셋타워 사무실에는 실내 야구 연습장이 있다. 지하 연습장일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마운드와 타석 간 거리가 실제 구장과 같은 연습장이 상업용도 아닌데 건물 5층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3층엔 그가 투자한 소셜 커머스 업체인 나무인터넷이 있다. 그는 “운동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직원들이 매일 운동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고 했다. 연습장 주변엔 ‘직장인 야구단 창단 계획서’ 발표 자료가 굴러다녔다.

    제대로 배웠는지 그의 투구 실력은 상당했다. 야구 문외한인 기자에게 실내에서 날아다니는 공은 ‘제트기’처럼 보였다. 그는 ‘너크볼’이라는 희한한 투구도 선보였다. 너크볼은 시속이 겨우 80~110Km에 불과하지만, 실밥이 공기저항을 받아 이상하게 날아간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인투수 필 니크로로부터 전수받았단다.

    -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롯데 재계약 불발에 대해 왜 아쉬워하는가.
    “금융 투자에도 2가지 트랙(길)이 있다.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차트를 분석해 투자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워런 버핏과 같이 가치주를 발굴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는 투자법이 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로이스터 감독은 후자 쪽이다. 둘 다 돈을 버는 법이고 리그에서 우승하는 법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우열하다고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후자를 선호한다. 그게 미국식이다.”

    - 한국에서 성공했으면서 너무 ‘미국’‘미국’하는 것 아닌가.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게스트’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한 달 뒤 메이저 리그 진출 여부를 결정짓는 후보군들의 시합이었는 데도 경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상대 선수에게 ‘나이스 플레이(Nice Play)’를 연발했다. 정말 신나하더라.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즐기는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미국 야구가 보여준다. 미국에서 유학한 롯데의 박정태 선수가 말했다. ‘감독은 선수를 위해 존재한다’고.

    기업의 CEO도 마찬가지다. CEO는 100% 실장과 팀장을 위해 존재한다. 실장과 팀장은 다시 팀원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회사는 잘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코치들은 선수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미국 코치들은 선수들이 좋아하고 맞는 쪽으로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

    야구팬인 허민 전 네오플 대표는 자신이 소유한 강남의 모 빌딩에 실내야구연습장을 만들었다.

    - 미국 버클리 음대 입학은 의외였다.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들었다.
    “버클리 음대 지원과 낙방을 반복했다. 우선 유료 온라인 수업부터 들으면서 누구인지도 모를, 이제는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수많은 입학 관계자들에게 e 메일을 수차례 보냈다. 그런 열정에 귀를 기울여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입학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버클리 음대 연습실은 열정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소리부터 다르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봐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젊은이들로 넘치고 투자가들은 열심히 기회를 준다. 우리나라는 사업이 망하면 사람까지 파산한다. 나도 사업 초기 20억원 빚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다. 운 좋게 게임이 성공했지만,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이다.”

    그는 “아, 내가 한국에서 다시 해야 할 일이 이거구나. 열정에 기회를 주는 투자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한다.

    - 열정에 투자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세계 최고의 소금이 프랑스 게랑드 꽃소금이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신안 토판 천일염이 이보다 더 품질이 좋다고 한다. 한 소금장수가 천일염을 세계적인 소금으로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투자할 생각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달인’의 개그맨 김병만을 좋아한다. 그가 말하지 않는가. ‘해봤냐?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말라’라고. ”

    - 지금 행복 점수는?
    “돈 많은 것 자체가 진짜 행복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은 것이 행복 같다. 초등학교 때 친구, 고등학교 때 친구, 재수 때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회사를 창업했다. 미팅하고 싶어 미팅 게임 만들고 야구를 좋아해서 '신야구'라는 게임도 만들었다. 지금도 친구들과 매주 모이고 1년에 한 번씩은 해외로 놀러 간다.(그는 친구들을 잃지 않기 위해 지분 매각 후 대금 일부를 창업자와 직원들과 나눴다고 했다.)

    그냥 친구들하고 스타(스타크래프트 게임)하고 게임하고 야구하는 것은 행복 점수로 따지면 83점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기회를 만들고 자랑스러운 일까지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삶이라고 본다.”

    진한 부산 사투리 덕분에 오버랩된 까닭일까. 곽경택 감독이 영화판에서 ‘친구’라는 흥행작을 찍었다면 허 전 대표는 게임판에서 ‘친구’라는 드라마를 찍었구나 싶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데 애정 있게 기사를 써달라고 하면서 한마디 한다.
    “아이구, 장가도 가야 하니까요.”

    이상형을 물어봤다. “정말정말 다른 조건은 없고 친구 같은 와이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세를 생각해서 외모는 80%만 보겠습니다.”

    기자가 되물었다. “친구 같은 마누라가 야구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잠시 머뭇거리듯 하다 그가 가녀리게 대답한다.
    “뭐, 괘안습니더.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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