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세계 유일 '전세' 끝나간다

입력 2010.09.17 23:29

차학봉 산업부 차장대우
최근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엉뚱하게 전세가격이 치솟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인기 아파트의 경우 30평대 전세가격이 5억~6억원까지 폭등했다. 인기지역만 전세가격이 치솟는다면 '부자들의 돈잔치'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수도권의 서민주택까지 전세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 외곽의 20평대 아파트는 물론 3000만~4000만원 하는 저소득층 주택까지 20~30%씩 뜀박질하고 있다.

집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진짜 서민 입장에서는 전세가격만 안정돼 있다면 집값의 급등락은 남의 일이다. 하지만 전세가격 폭등은 거주할 곳이 없어지는 생존권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전세가격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정부가 양도세와 보유세를 중과세하고 대출을 엄격하게 규제하면 집값 상승세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전세가격은 조금만 공급이 부족해도 가격이 폭등했다가 공급이 조금만 넘쳐나도 가격이 급락할 정도로 수요·공급에 민감하다. 정부가 정책적 수단을 통해 개입할 여지도 거의 없다.

문제는 현재의 전세가격 오름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제도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특이한 주택 임대제도이다. 전세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생명을 유지하는 불가사의한 제도이다. 가령 집주인이 2억원을 주고 집을 사서 1억원에 전세를 놓으면 1억원에 대한 이자비용을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다가 집주인은 주택의 유지 수선비는 물론 재산세 등 각종 보유세도 부담해야 한다. 한국에서 살다 귀국하는 외국인들이 처음 낸 보증금을 100% 돌려받으면서 전세제도에 찬사를 보낼 정도로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일본만 해도 매달 월세(月貰)를 내야 할 뿐 아니라 월세 두세 달치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내야 하고 그 보증금은 대부분 돌려받지 못한다.

사실 전세는 집주인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손해 보는 장사이다. 그런데도 다주택자(전셋집 주인)가 되기 위해 앞다퉈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은 어느 순간 그 손실을 만회할 정도로 집값이 급등, '한방'이 터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부동산불패론(不動産不敗論)이 붕괴하면 전세제도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투기꾼이라는 비판을 받는 다주택자는 전세주택의 공급자들이고 그들이 없다면 전세제도도 붕괴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전세시장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 정부의 세금 정책 등이 겹치면서 부동산 불패론의 근거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있다. 주택을 여러 채 갖는 것은 사회적 비난을 받을 뿐 아니라 투자 측면에서도 유리할 게 없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 지역까지 미분양 주택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 다주택은 애물단지다.

부동산불패론의 종언은 전세시장을 급속도로 위축시키고 궁극적으로 임대시장을 외국처럼 월세임대 시장으로 바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세금 급등이나 전세매물 품귀현상과 같은 부작용은 피하기 어렵다. 한국사회도 이제 집값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불패론과 이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임대시장 구조변화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면 우리는 엄청난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분양주택 위주의 정책에서 임대주택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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