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는 생활 필수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당장 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닌텐도는 항상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게임업체 일본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49) 사장은 15일 서울 강남구 GS타워 닌텐도 한국지사 사무실에서 Digital BIZ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닌텐도의 성장 동력을 '위기의식'이라고 말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100여 년 전 화투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한 닌텐도를 세계 최고의 게임 업체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닌텐도는 실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에 밀려 고사하는 듯했으나, 2004년 11월 닌텐도DS를 출시하며 한방에 전세를 뒤집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런 닌텐도를 '2008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 선정에서 일본 소니와 삼성전자보다 앞선 세계 7위에 올렸다.
닌텐도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이와타 사장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변화와 혁신 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줬다. 그들의 혁신이 '결코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였다.
―닌텐도의 성장세가 무섭다. 최근 세계 경제가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2006년부터 3년간 매출액과 이익이 4배 가까이 성장했다. 게임 업체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전 세계의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인정했다는 데 대해 우리 스스로도 흥분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고 있지만, 과거 25년간의 게임 비즈니스 경험에 미뤄볼 때 게임 비즈니스는 경기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게임은 무엇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트북PC에 저장된 미국 판매 자료를 보여주며) 닌텐도 비디오게임기 '위(Wii)'는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좋다. 닌텐도DS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 경기가 아니라 소비자를 놀라게 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결은 뭔가?
"2003년부터 우리는 어떻게 하면 게임 인구를 늘릴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 그때까지는 어린이나 젊은 남성들이 주로 게임을 했지만, 게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상상 이상의 엄청난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다. '위핏(요가 게임)'이나 '두뇌 트레이닝' 같은 프로그램이 중장년층이나 여성층을 겨냥한 대표적인 제품들이다."
―닌텐도DS는 전 세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일본의 게임이 문화적인 이질성을 극복하고 세계의 게임 코드로 자리잡은 것은 놀랍다.
"사실 1985년에 탄생한 수퍼 마리오나 12년 전에 나온 포켓몬스터 같은 게임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다른 문화권에서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굳이 요인을 분석하자면 우리의 게임이 공통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있다' '즐겁다'고 느끼는 요소를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하나 닌텐도의 장점은 캐릭터가 사진처럼 사실적이지 않고 귀엽다는 점이다. 만약 캐릭터가 실제 모습 그대로라면 (제품을 공급하는) 국가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와 배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친근한 캐릭터라면 그런 차이를 건너뛰어도 되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도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물론 제품을 출시할 때 우리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웃음)"
―닌텐도의 대표 캐릭터 수퍼 마리오가 탄생한 배경은?
"수퍼 마리오는 1981년 출시한 '동키콩'이라는 게임에 엑스트라로 등장했다.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점프하는 '점프맨'이라는 캐릭터다. 우리는 그 캐릭터를 이후 출시하는 다른 게임에도 조연으로 등장시키면서 조금씩 모습을 바꿨다. 그러다가 하나의 고정된 화면에서 즐기는 방식이 아닌 옆으로 진행되는 화면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온 게 수퍼 마리오 게임이다. 수퍼 마리오는 당시 다른 게임과는 달리, 캐릭터가 앞으로 전진하면서 배경 화면이 바뀌는 게 특징이었다."
―닌텐도DS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왔나?
"닌텐도DS는 2004년 나왔는데, 당시 일본 게임 시장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회사의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보고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절대 안 된다 싶었다. 그래서 게임 인구가 줄어드는 요인을 조사했다. 결과는 '게임 조작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수퍼 마리오만 해도 누구든 쉽게 즐길 수 있었는데, 갈수록 게임 조작이 힘들어진 것이다. 손가락을 굉장히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것이 닌텐도DS다. 우리는 누구든 연필을 쥐고 종이에 쓰는 행위는 익숙할 것이라는 점을 착안해 '터치 펜'을 게임기의 입력 수단으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닌텐도 '위'의 입력기는 TV 리모컨의 형태로 만들었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TV '리모컨'이라면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노인들이 '위'게임을 즐기며 홈 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지금 형태의 '위' 입력기를 만들기 위해 1년간 100가지 종류의 컨트롤러를 만들었다. 조작버튼을 줄이자는 목표였다. 하드웨어 개발팀에서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러를 만들면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거기에 맞는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리모컨 형태로 개발했다."
―닌텐도의 게임은 즐기기 쉽고 심플한 게임 위주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소니 같은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요인이다. 앞으로도 이런 방침은 변화가 없나.
"닌텐도에도 소위 대작이라 말하는 리얼 게임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작'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게임이 많이 나오는 것이 단점이다. 굉장히 잘 만든 게임도 어딘가에서 본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도 과거에는 사양을 고급화하고 화려한 그래픽을 더 많이 사용하는 데 치중했다. 당시엔 게임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기능으로 사양을 높이는게 개발자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비자들이 더 이상 그런 복잡한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의 성공 패턴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나도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고난도 기술과 고성능 제품을 좋아하지만, 소비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복잡하고 화려한 게임에서 다시 과거의 단순함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혁신의 모티브를 과거에서 찾은 것인가.
"고객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느냐'를 고민했다는 점에서는 그 말이 맞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우리는 더 이상 비디오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테마의 게임을 개발해 왔다. 수퍼 마리오 같은 게임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게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강아지 키우기 게임이나 영어·요리·요가 배우기 등을 개발했다. 게임 마니아들이 '이런 것은 게임도 아니야'라고 말할 법한 것을 게임으로 개발했다."
―본지는 작년 수퍼 마리오의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 개발본부장(56)을 인터뷰했다. 닌텐도에는 그처럼 나이 많은 개발자들이 많이 있나?
"미야모토 전무는 나보다 일곱살 위다. 뿐만 아니라 닌텐도에는 40~50대 게임개발자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닌텐도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5.7세다. 최근에 젊은 직원들이 많이 입사해 평균 연령이 한 살 정도 내려갔다. 하지만 나이가 많기 때문에 개발진에서 빠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나는 '젊음'이라는 것이 연령이 아니라 '사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야모토 전무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능력이 있다. 그는 흔쾌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해 게임 내용을 바꾸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입고 있는 정장이 평소 입는 복장이냐. 일본 게임 기업은 한국 게임 기업보다 덜 자유로운 것 같다.
"(웃으면서) 이게 평소에 입는 복장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주로 점퍼 형태의 회사 유니폼을 입는다. 자유로운 패션과 창의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내부 분위기는 다른 일본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닌텐도는 100년 전 화투 회사로 시작해 변신을 거듭했다. 대체로 일본 기업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고 있지만 변신은 빠르지 않은 것 같은데, 닌텐도는 좀 다르다.
"닌텐도의 변화는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전기로 작동하는 게임기, 손목시계 형태의 초기 휴대용 게임기 등 아주 오래전부터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왔다. 이유는 게임 사업이 일정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면 닌텐도가 만드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생활 필수품은 아니다. 게임이 없어도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꼭 비디오게임이라는 법은 없다. 바로 이 점이 우리의 변신을 재촉했다. 고객의 불확실한 니즈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회사의 생존이 힘들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다소 폐쇄적이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관계도 좀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약간 곤란한 듯) 한국에서 2년간 200만개의 닌텐도DS를 판매했지만, 아직 한국 업체에서 개발한 게임 타이틀이 없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한국 게임 개발업체들이 우리 같은 비디오게임이 아닌, 온라인게임 위주로 개발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는 한국에서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키우고 있다. 한국 개발 업체들과 협력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다. 한 5년 정도 긴 안목을 갖고 봐줬으면 좋겠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59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82년 도쿄공업대학 정보공학과를 졸업한 후, 게임소프트웨어 업체 할(Hal) 연구소에 입사해 93년 대표를 맡았다. 2000년 닌텐도에 영입돼 2년 만에 닌텐도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게임을 즐기지 않던 여성·장년층을 겨냥한 쉬운 게임을 만들어 큰 성과를 거두면서 소니에 밀렸던 게임기 업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 2004년과 2006년 각각 출시된 닌텐도DS와 위는 세계 누적 판매량이 8433만대와 3455만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