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같은 글로벌 자동차회사에서 친환경 경영은 생존전략이자 현실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판매되는 어떤 자동차도 에너지·환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더 많은 자동차를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차 개발은 물론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갈수록 강화되는 자동차 환경규제에 맞선다
현대·기아차는 환경규제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당장 차를 팔기 어려워지고 있는 유럽시장에 친환경차를 투입하기위해 필사의 노력을 쏟고 있다. 친환경 디젤모델 개발을 확대한 결과, EU 15개국에서 현대차의 평균 CO₂ 배출량은 2004년 166g/㎞, 2005년 164g/㎞로 중간목표치인 170g/㎞ 이하를 달성했다. 2009년 140g/㎞을 달성하기 위해 엔진성능 향상 뿐 아니라, 차를 멈출 때 낭비되는 운동에너지의 회수, 정지상태에서 시동 꺼짐 기능 등 기초적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접목해 CO₂배출 수준을 크게 떨어뜨릴 계획이다.
현대·기아차가 유럽시장에 맞는 친환경차 개발에 우선 나서고 있는 것은 당장 유럽의 환경규제를 맞추지 못하면 이 시장에서 차를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환경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어, 현대·기아차의 2010년 글로벌 톱5 달성 목표를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친환경차 개발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EU(유럽연합)는 2012년부터 메이커별 또는 차종별로 CO₂(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을 주행거리 1㎞ 당 130g으로 규제하기로 했다. 현재 현대차가 인도에서 생산해 유럽 등에 판매 중인 경차 아토스 디젤이 115g/㎞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현대·기아차의 대부분의 차종이 EU의 이번 규제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 이는 다른 글로벌 자동차회사들과 마찬가지로 현대·기아차에게도 매우 어려운 도전 과제다.
■하이브리드·클린디젤·연료전지로 전방위 공략
클린디젤차, 하이브리드카 같은 친환경차에 대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개발 노력은 치열하다 못해 냉혹하기까지 하다. 친환경차를 제 때 내놓지 못할 경우, 차를 덜 파는 수준이 아니라 자동차 사업을 아예 접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린디젤'은 이미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으며, '하이브리드카'도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전체 시장규모가 2010년 100만~150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기아차는 1995년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이래 친환경디젤 차량과 하이브리드카·연료전지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이브리드카의 경우, 환경부와 공동으로 2004년 클릭 하이브리드 50대의 시범운행을 시작했으며, 현재 기술 축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내년 7월엔 국내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카인 아반떼 LPG 하이브리드를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시판할 예정이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현재 일본업체에 비해 취약한 국내 하이브리드 관련 부품업체의 기술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카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전기모터, 인버터(직류·교류 변환장치)에 대해 각각 내년까지는 국산화를 마칠 예정이다.
특히 국내에는 LG화학, 삼성SDI, SK 등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카용 배터리로 각광받고 있는 리튬계열의 2차전지 기술력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여서, 현대·기아차가 이런 기반을 잘 활용한다면, 단기간 내에 하이브리드카 시장에서도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년 나올 아반떼 LPG 하이브리드의 개발실무를 맡고 있는 이기상 이사는 "하이브리드는 부품의 개발·제조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15년 전의 개발방식을 유지한채 개선해나가는 도요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개발의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통한 원가절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도요타보다 출발은 한참 늦었지만, 상황은 오히려 희망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차가 2010년 북미수출형으로 개발중인 하이브리드카의 경우는 도요타나 혼다와 다른 방식의 하이브리드시스템을 탑재할 예정이다. 도요타방식보다 더 단순하고 원가절감의 폭도 크다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이다. 유럽·미국의 자동차회사들도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하이브리드카 양산화의 관건인 배터리 기술이 뛰어난데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하이브리드 개발 엔지니어들이 출발 초기와 달리 점차 실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디젤은 현대차가 일부 기술의 경우 일본보다 앞서 있으며, 유럽회사들과의 기술격차도 빠른 속도로 줄여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일본의 경우 그 동안 승용·승합차에서 디젤엔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가 최근에 급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현대·기아차의 디젤 승용차 판매가 늘고 있는 것도, 현대·기아차가 독자 개발한 4기통 소형 디젤엔진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 또 현대차 베라크루즈와 기아차 모하비에 얹힌 V형 6기통 배기량 3L급 디젤엔진은 배기량 대비 파워, 정숙성, 연비 등에서 전세계 디젤엔진 개발 업계를 놀라게 했을 정도다.
현대차는 2009년에서 2010년까지는 세계에서 디젤 환경기준이 가장 까다롭다는 미국시장에 투입이 가능한 수준의 친환경 디젤 엔진 개발을 끝내고 폴크스바겐, 벤츠, BMW처럼 세계최고의 디젤기술을 보유한 회사들과 정면 승부할 계획이다.
한편 현대차의 연료전지(fuel cell) 자동차 분야 기술력도 세계 클래스의 수준과 비교해서 9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료전지차는 수소를 차에 넣고 다니다가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시켜 발생된 전기로 차를 움직이고 부산물로 물만 배출한다. 따라서 친환경차의 종착점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최근 수소를 저렴하게 양산하고 보관하는 기술 개발의 어려움으로 양산시기가 2020년 이후까지 계속 늦춰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클린디젤·하이브리드 이후를 연료전지차가 맡을 것으로 보고 기술축적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2000년 스포티지 연료전지차, 2001년 싼타페 연료전지차를 개발했으며, 2004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투싼, 스포티지 연료전지차를 개발해 연료전지차 상용화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친환경차 경연 대회 '2007 미쉐린 챌린지 비벤덤(Michelin Challenge Bibendum)'에서는 투싼 연료전지차가 참가차량 중 유일하게 환경평가 전 부문에서 최고등급인 'A'를 받았다. 현대차 연료전지차 개발을 맡고 있는 임태원 이사는 "현대·기아차가 독자개발한 연료전지와 구동 시스템이 세계 최고임을 인정 받았다"며 "앞으로도 미래 친환경차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력 확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환경 경영으로 기업 이미지 높인다
현대·기아차는 자동차 자체의 친환경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힘쓰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중국 네이멍구 쿤산타크 사막 내 차깐노르 지역에서 2012년까지 5년간 약 5000만㎡에 달하는 초지(草地) 조성 사업을 실시, 사막화 방지 및 생태계 복원을 통한 지구환경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와 환경운동연합이 주도하는 이번 사업에는 중국 중앙정부 및 내몽고 자치주 정부와 중국 현지 NGO 단체도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