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코 기술연구소 안병선 과장이 6중날 면도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남자의 하루는 면도로 시작된다. 남자는 아침에 수염을 깎으면서 새로운 하루의 각오를 다지는 법이니까. 최근 한국 남성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생겼다. 거대 다국적기업이 주도해온 다중날 면도기 개발 경쟁에서 한국 기업이 신기원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도루코가 지난 10월 1일 출시한 '페이스6(PACE 6)'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이 제품은 6중날 면도기로서는 세계 최초 제품이다. 지금까지는 질레트의 5중날 면도기가 세계에서 가장 날이 많은 면도기였다.

도루코의 6중날 면도기는 선보이자마자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면도기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첨단기술이 필요하고 다중날 제품 개발에 수억달러의 막대한 비용이 들어 신제품을 개발하기 쉽지 않은데 한국의 중소기업이 이런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금까지 3중날 이상의 다중날 면도기를 첫 개발한 기업은 질레트(3중날, 5중날)와 쉬크(4중날) 등 2개사에 불과했다.

1999년 질레트가 세계 최초로 3중날 면도기 ‘마하3(MACH3)’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전 세계 면도기 업체들은 다중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면도날이 많을수록 시각적으로 소비자에게 첨단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줘서 마케팅 측면에서 유리한 데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중날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활여건도 다중날 개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면도기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시간에 쫓기는 현대 남성은 면도를 빨리 효과적으로 하고 싶어합니다. 영양상태가 좋아져서 모발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야간의 비즈니스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하루에 면도를 두 번씩 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라서 면도 효과의 지속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면도날의 개수가 많을수록 빠르고 효과적으로 안전한 면도를 할 수 있습니다.”

도루코가 6중날 개발에 착수한 것은 지난 2002년. 이 무렵엔 3중날이 가장 많은 면도날이었다. 도루코는 질레트의 3중날 제품보다 2년 늦은 2001년에야 3중날 제품을 내놓았지만 질레트의 선점효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도루코는 회사의 명운을 걸고 획기적인 다중날 면도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제품 개발을 맡은 도루코기술연구소 안병선 과장은 “처음부터 6중날을 개발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세계를 석권하던 질레트의 3중날 면도기에 맞서 4중날 이상의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는 있었으나 몇 중 날로 할지는 결정된 게 없었던 것. “4중날, 5중날, 6중날로 구성된 면도기로 면도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 6중날 면도기에서는 면도날 6개가 모두 모발을 자르는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이상의 면도날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이라는 숫자가 결정됐습니다.”

도로코 6중날 면도기 '페이스6'

그러나 6중날 면도기 개발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현재 세계 최고의 면도기 제조업체인 질레트도 해내지 못한 6중날을 3중날밖에 못 만든 한국 중소기업이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안병선 과장이 밝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날의 절삭력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현재 저희 회사의 면도날 제조 기술로는 수염이 날에 닿자마자 끊어지도록 하는 날카로운 날 제조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피부에 자극이 생기게 되므로 무조건적으로 날카롭게 하는 것은 안 되죠.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면도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이 베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장 적절한 절삭도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면도기 개발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실험은 면도 실험입니다. 연구원 전체가 면도를 집에서 하는 것을 금하고 모두 회사에서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주말에 결혼식에 갈 때에도 면도를 하지 않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 면도를 하게 되면 다음날이 될 때까지 면도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 다리털 심지어는 머리털까지 잘라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산고 끝에 태어난 도루코 ‘페이스6’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페이스6’를 써본 네티즌 스페너는 “6개의 날은 자극 없이 미끄러지듯 만족스러운 면도 결과를 가져다줬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장의 반응도 좋다. 박종래 마케팅팀장은 “까르푸에는 내년 2월까지 입점하고 월마트에는 내년 4월에 입점할 예정”이라며 “향후 3년간 국내외에서 12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다 다중날 개발업체의 영예를 빼앗긴 질레트는 페이스6의 출시에 맞서 10월 한 달 동안 세계적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테니스의 제왕 로저 페더러 3총사를 내세운 ‘질레트 챔피언’캠페인을 펼쳤다.

시장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이 제품이 단순히 면도날이 많은 데 그치지 않고 개발비만 110억원이 투입되는 등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면도날 성능의 핵심은 연마와 코팅기술로 요약되는데 이들 기술은 이 제품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도루코는 ‘페이스6’에 미세연마방식(Micro Grinding)을 적용해 에지(edge) 형상을 톱날 모양으로 구성했다. 이 방식은 에지가 매끄러운 기존 연마 방식과는 달리 면도 시 최적의 느낌을 제공할 뿐 아니라 면도날의 수명을 향상시키는 장점이 있다.

코팅기술은 'NT(뉴테크놀러지)마크'를 획득한 면도날 초박막 크롬코팅기술을 적용, 면도 시 부드러운 느낌과 우수한 절삭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밖에 다양한 특허기술이 적용돼 있다. 앞축회전방식시스템은 면도 헤드의 상하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헤드 축을 앞 끝부분에 배치한 기술로 면도 시 면도날이 얼굴의 굴곡을 따라 자유롭게 밀릴 수 있도록 해준다. 면도 후 면도날에 남아 있는 털의 세척을 용이하게 해주는 오픈 카트리지 구조도 특허기술이다. 면도기 본체와 면도날의 결합 및 분리가 손쉬운 원-포인트 결합시스템, 거치대 역할을 겸하는 케이스 등도 호평 받은 도루코의 특허기술들이다. 도루코는 '페이스6'와 관련, 10여가지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박종래 마케팅 팀장은 "페이스6를 계기로 첨단 면도기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라며 "2015년까지 세계 3대 면도기 메이커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


특수면도기
면도기는 남성이 면도할 때 쓰는 것 외에도 다양한 제품이 있다. 여성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었을 때 노출되는 모발을 제거할 때 쓰는 여성용 비키니 면도기가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다리나 팔에 있는 털을 제거할 때 쓰는 여성용 보디 면도기와 수술 전에 수술 부위의 긴 털을 제거할 때 쓰는 수술용 면도기가 있다. 삭발용 손가락 면도기는 카트리지를 손가락에 끼워서 머리 구석구석을 면도하는 데 쓴다. 립스틱형 면도기는 휴대하기 쉽도록 립스틱처럼 돌려서 날을 빼고 끼우는 제품이다. 교도소용 면도기도 있다. 면도날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교도관이 날 유무 검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용실에서 긴 모발의 밑부분을 잘라낼 때 쓰는 미용실용 면도기(헤어 커터)도 있다. 세라믹 블레이드는 날이 세라믹으로 돼 있다. 스님들이 많이 쓰는 삭발용 면도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