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유일의 여성 감독은? 힌트를 주자면 삼성 소속팀 감독이다.
야구 선동렬 감독, 축구 차범근 감독, 농구 안준호 감독, 배구 신치용 감독까지 모두 남자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여자 감독이 한 명 있다. 삼성 프로게임단 ‘칸’의 김가을(29) 감독이다.
김가을 감독은 다른 삼성 감독보다 나이로는 한참 어리지만 감독 밥 먹은 년 수만 따지면 모두 2004년 부임한 선동렬 감독이나 차범근 감독, 안준호 감독보다 한 해 선배다(신치용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 취임).
김 감독은 2003년 팀을 맡은 이후 5년이 지난 올해에 들어서야 전성기를 맞이 하고 있다. 올해 스타크래프트 전기리그 1위에 올랐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달 4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결승전. 호리호리한 체격에 항상 웃는 모습, 겸손한 자세로 ‘모범생 감독’, ‘누나 리더십’이란 말이 항상 뒤따르는 김 감독은 강팀 ‘르카프 오즈’를 세트스코어 4대0으로 완벽히 제압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4대0으로 이길 줄 알았다”고.
“그때 화가 좀 나더라고요. 우리가 막상 우승을 했는데 너무 관심이 상대팀 감독인 조정웅 감독과 연인 사이인 탤런트 안연홍씨 프러포즈에 관심이 있어서….”
당시 조정웅 감독은 전기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우승하면 안연홍씨에게 공개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말했었다.
“경기 내용이나 결과, 앞으로의 게임단 방향 같은 것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상대팀 감독의 프러포즈를 막은 것에 대해서만 물어보는 거예요. 솔직히 지금 생각을 해도 인터뷰 때 그렇게 말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그때는 ‘아 여기서 질러야 될 타이밍이구나’ 생각을 했죠.”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시작을 앞두고 서울 강남의 삼성전자 칸 숙소 근처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TV에서 보는 그대로 호리호리했으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카랑카랑했다.
-우승 인터뷰가 좀 공격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경기 이전에 가진 인터뷰에서도 4대0 승리에 대해 말했어요. 저희가 결승전까지 많이 쉬었잖아요. 상대팀은 계속 경기를 했고…. 기세에서 저희 선수들이 눌리는 것처럼 보였죠. 선수단 분위기 띄우려고 일부러 공격적으로 나갔어요. 또 자신도 있었죠. 전제조건이 1경기를 이기면 이었지만.”
-우승 인터뷰 할 때 상대팀 감독도 옆에 있었는데요, 수위가 좀 강하지 않았나요?
“그때 저도 인터뷰를 세게 해야 하나 평소 보이는 모습대로 해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 우승팀에서 벗어나는 질문만 해서 의도적으로 지른 감이 없지 않죠.”
-2005년 프로리그 후기리그 때 준우승을 했었죠.
“정말 준우승한 기분은 준우승한 감독이 아니면 몰라요. 당시 인터뷰할 때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말 서러웠어요. ‘아 서럽다. 정말 성공하고 말겠다. 선수들 더 키우고 게임단 더 탄탄하게 꾸려서 내가 꼭 우승할거다’ 속으로 두고두고 다짐했거든요. 준우승한 기분이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우승하고 나서 조정웅 감독 뵙기가 좀 그랬거든요. 준우승하면 인터뷰하고 싶지 않은 그 심정 제가 잘 알죠.”
김가을 감독은 프로게임단 유일의 여성 감독이자 프로게이머 출신 첫 감독이기도 하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시절 김 감독의 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2000년 배틀탑 스타크래프트, 국가대표 선발전, 온게임넷 롯데리아배, KBK 국제 마스터즈 대회 등에서 여성부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 삼성 디지털배 KIGL 여성부 우승, iTV 서바이벌 리그우승, 스카이 겜티비 여성부 특별전 우승, 온게임넷 킹덤언더파이어 특별전 우승도 김 감독 몫이었다.
-잠시 선수 시절 얘기를 해 보죠. 어떻게 프로게이머가 됐죠.
“제가 원래 중학교 때부터 게임 굉장히 열심히 했거든요. 초등학교 때 하루에 최소한 2~3시간 매일 오락실에 들러 게임을 했어요. 중학교때 PC가 생기면서 집에서 게임을 즐겼고요. 좋아하는 게임들은 다 정품CD로 샀어요. 1997년 한양대 산업공학과 입학하고 나서도 선배들하고 게임을 많이 했어요. 공대다 보니까. 당시 모뎀으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워 크래프트’ 재미있게 했고 스타 크래프트가 나오고 나서 ‘어 이런 게임도 나왔구나’하고 즐겨서 했고요. ‘레인보우식스’ 같은 FPS게임(First Point Shooting·1인칭 슈팅 게임)도 하고요. PC방 다니느라 학교 수업 많이 빼먹었죠. 평균 잡아서 하루에 8시간 정도 게임하고. 날 샜던 적도 많았죠. 그랬는데, 2000년에 제가 잘 다니는 PC방 사장님이 아마추어 대회가 있다는 거예요. 상금도 있다고 해서 나갔는데 너무 성적이 좋은 거예요. ‘아, 이거 뭐지?’ 알아보니까 대회가 많고, 상금도 좋고…. 조금 더 알아보니까 프로게이머라는 게 있더라고요. ‘굉장히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집에는 공부를 위해서 휴학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죠.”
-집에서 반대를 하지 않았나요?
“부모님 모르게 했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제가 그렇게 게임을 좋아해도 부모님은 몰랐어요. 왜냐하면 성적은 나오니까. 그렇다고 제가 공부를 잘 한 건 아닌데 전교 100등에서 400등까지 왔다갔다 제 멋대로였거든요. 고2때 한참 SF쪽 소설·영화에 빠졌는데 그때 과학이 좋아져서 물리·화학·수학 성적이 많이 올랐는데 그 덕분에 대학에 왔고. 게임 CD를 그렇게 많이 사서 컴퓨터 게임을 해도 부모님은 잘 몰랐어요. 공부하는 줄 알았지. 제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유학 왔으니까 대학 때 제가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것도 몰랐을 테고.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것도 집에서는 몰랐어요.”
-그럼 어떻게 들켰죠?
“모 일간지에 기사가 났어요. 그래서 들통이 났죠.”
-식구들이 반대는 안 했나요?
“처음에 어머니가 반대를 했어요. 아버지는 ‘젊을 때니까 해보고 싶은 거 해보라’고. 어머니는 딸이 졸업하고 취직해서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거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죠. 계속 옆에서 잔소리 많이 하고. 그런데 제가 고집이 세서 한 번 한다고 하면 꼭 하거든요. 지금은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죠. 경기 일정을 다 꿰고 있어요. 처음에 어머니는 e메일이 뭔지, 사이트가 뭔지 하나도 몰랐는데 지금은 컴퓨터·인터넷 박사가 다 돼서 검색해서 기사 다 찾고 링크도 걸어놔요.”
-출전하는 대회 마다 거의 우승을 했죠. 여성 프로게이머 치고 워낙 잘하다 보니까 ‘가을이형’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런데 2002년 돌연 은퇴했어요.
“상황이 되게 복잡했죠. 학교는 2년 이상 휴학을 안 받아주는데, 학교를 포기하고 여기서 더 게임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사실 여자는 남자보다 사회 진출이 빠르잖아요. 제 동기들은 거의 대학원이나 취업을 준비하는데 저는 2년 동안 게임만 했지 해 놓은 게 너무 없는 거예요. 이걸 계속 하려는데 여성 프로게이머 시장은 너무 위축돼 있고. 그래서 결국 선택한 복학이었죠. 복학해서 군대 다녀온 남자 동기들하고 학교 같이 다녔어요. 사실 당시 여성게이머 환경이 많이 위축됐었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 외적인 조건을 많이 따졌어요. 거의 다 마케팅의 일환이었죠. 제가 정말 잘 나갈 때도 프로게임단에 입단을 못할 때가 있었어요. 결국 여성게이머에 대한 거품이 빠지면서 기업들도 하나 둘 발을 뺐고, 여성게이머 대부분이 그만 둘 수밖에 없었죠.”
-감독은 어떻게 될 수 있었죠?
“졸업을 앞두고 막막했어요. 뭘 해야 할 지…. 그런데 마지막 프로게이머 할 때 제가 삼성 쪽에 있었는데 삼성에서 저를 좋게 본 것 같아요. 2003년 초에 감독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이 왔는데 그때는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거절을 했었고 2003년 7월에 또 제의가 왔을 때는 갑자기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락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덜컥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것 같아요. 그때 25세 어린 나이에 참 겁이 없었죠. 감독이란 자리가 참 힘든 자리인데. 지금 누가 감독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처음에 팀을 맡았을 때는 어땠나요.
“정말 개판이었어요. 회사 분이 감독 대행을 하는 바람에 팀 연습도 선수들이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었고, 선수들 기상 시간도 오후 5~6시, 잠자는 시간은 오전 7~8시에다 깨어 있는 시간에 꾸준히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놀고 싶으면 놀고. 관리가 아예 안되고 있었어요. 프로의식도 없었죠. 들어가서 저도 갑갑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답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결심했죠. 위계질서도 만들었고, 연습하는 방식도 고쳤고요. 연습실, 수면실도 따로 분리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다 고쳤죠. 다른 게임단 시스템을 벤치 마킹하고요. 감독이 처음 된 것이기 때문에 조언도 많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른 팀 감독 쫓아 다니면서 많이 묻고 그랬죠. 이렇게 처음부터 하나하나 고치려니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당연하죠.”
-선수들하고 나이 차가 많지 않아서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요.
“감독 처음 시작할 때 제일 힘들었던 부분도 그 점이죠. 제가 게이머 출신이다 보니까 친분이 있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감독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누나로 받아들이는 게 컸어요. 그래서 확실하게 선을 그었어요. 나는 감독이고 너희들은 선수다. 외부에서 보면 누나처럼 자상하게 챙겨줄 거라고 보는데. 전 선수들 생일도 일부러 안 챙겨요.”
-일부 언론에서 ‘누나 리더십’이다 뭐 이런 표현도 쓰던데요.
“제가 여자 감독이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더라고요. 여자니까 세심하고 포용력 있고 배려 잘하고 자상할 거라고. 이런 것하고 저하고는 원래 거리가 멀어요. 선수들한테 화도 많이 내고 혼도 많이 내고. 저는 한 두 번 말해서 안 들으면 그냥 (팀에서) 내 보내요. 냉정한가요? 감독이라기보다 여성으로 부각 되는 게 싫더라고요.”
-고등학생이나 나이가 많아 봐야 20대 초반의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개인 사생활이라든가 프로의식이랄까 이런 부분의 지도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연봉과 연관 지어서 얘기하는 게 확실해요. ‘너희가 여자친구 만나거나 술 마시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바로 너희 연봉에 직결이 된다’고. 자기의 몸값을 올리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대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항상 말하고요. 인터뷰 할 때 자세까지 가르쳐 줘요. 공인이니까 나가서 술을 마시더라도 말을 조심하라고 하고요. 프로게임을 하는 이유가 돈하고 명예인데, 그 부분에 대한 목표 의식을 확실히 심어주고 어떻게 하면 몸값을 올릴 수 있는지 얘기하죠. 특히 돈 관리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해요. 이 부분은 제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인데요, 한창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에 수백에서 수천 만원까지 돈을 만졌는데, 그때 생각 없이 쓸데없는 데 돈을 많이 썼어요. 지금 그 부분이 너무 아까워요. 저희 선수들 모두 적금 붓고 있고요, 주식 장기투자하고 펀드도 해요. 연봉 2400만원 이상 받는 사람들은 다 하고 있어요. 저희 팀은 돈 흥청망청 쓰는 선수 하나도 없어요.”
-개성 있는 선수들도 많을 텐데 어떻게 다루나요.
"보통 선수들 연습시간이 하루에 10~12시간 정도 되는데 여기에 밥 먹는 시간, 연습 시간, 운동 시간에 취침·기상시간까지 다 정해져 있거든요. 개성은 존중하지만 이 단체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면 그 선수 하나 때문에 팀에 균열이 생겨요. 일단 선수에게 두 세 차례 얘기를 해서 알아 들으면 남고 못 알아 들으면 나가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유 시간은 다른 팀에 비해 보장해 주는 편이에요. 선수들이 의무·책임을 제대로 하면 권리는 누릴 수 있게 해주는 편이에요. 대신 제가 요구하는 의무를 확실히 지켜줄 때만이죠."
-삼성전자 칸이 2대2 팀플이 유달리 강한데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요?
"우리 팀플이 원래 강했던 것은 아니고요, 이창훈 선수를 영입하면서부터 강해졌어요. 사실 다른 팀 같은 경우 개인전 팀플전 구분없이 선수들 번갈아가면서 하는데 저희는 팀플이랑 개인전 확실히 구분을 해서 출전 하거든요. 팀내에서 팀플 연습을 굉장히 빡빡하게 시켜요. 팀플만 하루에 10시간씩 하죠. 팀플 관련 VOD를 못 보면 아예 게임을 못하게 해요. 전략적으로 얘기도 많이 하죠. 다른 팀 같으면 팀플에 1진 2진 구분이 없는데 우리는 1진, 2진, 3진까지 있어요. 팀플 연습이 둘이 하니까 더 쉬울 것 같지만 더 어려워요. 둘이 의견을 맞춰가야 하니까요."
-선수들 면면을 보면 삼성전자 칸에서 계속 키운 선수가 많아요. 스카우트 한 선수는 별로 없고요.
"물론 감독이니까 이윤열이나 임요환 같은 선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타급 선수 한 명만 데려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예요. 하지만 우리 게임단 방향이 원래 양성 쪽에 많이 신경을 쓰거든요. 저하고 그런 부분에서 코드가 맞고요. 송병구 선수나 이성은 선수가 그렇죠. 지금 아직 두각을 보이지 못하는 선수도 있지만, 1~2년 후에는 돋보이는 선수가 나올 겁니다. 2005년 후반에 이창훈, 변은종, 박성준 3명의 선수를 영입했는데 이유가 우리가 그때 프로게이머 숫자가 부족해서 대회 출전까지 힘들어질 것 같아서 였어요. 물론 잘 하는 선수들이긴 했지만요."
-선수들 연봉은 어떤가요? 감독님 연봉은….
"아직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없어요. 연봉이 성적도 좋아야 하고, 인지도도 높아야 하는데 아직 개인전으로 그 정도까지 되는 선수는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래도 평균적으로 봤을 때 다른 팀보다는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타 구단하고 비교해서 1000만~2000만원 정도 더 많이 받아요. 구체적으로는 묻지 말아 주세요. (웃음) 제 연봉이요? 억대는 안 되요. 이것도 노 코멘트(no comment)입니다."
-이성은 선수 같은 경우 스타크래프트 경기 중 상대선수에게 핵을 쏜다거나 하는 도발적인 운영을 하기도 하고, 세리머니도 좀 과격한 부분이 있는데요.
“이성은 선수는 신인 때부터 보여 주는 경기를 하고 싶어했어요. 게임을 할 때 분명 이겨야 될 시점이 됐는데도 뭔가 보여주는 경기를 하려고 했죠. 제가 불러서 ‘보여주는 경기는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린 다음에 해라. 어차피 이기는 게 중요하다’ 얼마나 설득을 했는지 몰라요.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까 그렇게 보여주는 경기도 괜찮다고 봐요. 팬들이 그런 경기를 원하니까요. 세리머니의 경우 초창기 때는 ‘상대방에 대한 매너가 아니다’ 이런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확 바뀌었죠. 상대방을 조롱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응원하는 팬들을 위한 세리머니이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안 된다고 봐요.”
-프로게이머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지금은 스타크래프트 보다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어요. 이제 e-스포츠 자체를 보고 즐기는 문화로 바뀌었거든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되어 가는 것 같아요. 경기 내용도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요. 점점 더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선수일 때가 좋았나요? 감독인 지금이 좋았나요?
“선수일 때가 훨씬 좋죠. 직접 선수로 게임을 할 때 느끼는 건 뒤에서 지켜보는 감독하고는 정말 달라요. 이겼을 때 쾌감이나 기분은 선수 아니면 모르죠. 옛날에는 웃는 것도 상대에 대한 매너가 아니라고 표정 관리를 많이 했었잖아요. 지금은 다르지만…. 정말 좋아서 웃고 싶은데 ‘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웃고 싶은데 이기고 나서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고.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쑥 나와요. 감독이 되고 나니까 절제를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화가 하나도 안 나는데 화를 내야 할 때도 있고, 화가 나는데 꾹 참아야 할 때고 있고. 칭찬해 주기 싫은데 웃으면서 칭찬해 줄 때도 있고. 감정 표출을 마음대로 못하는 게 힘들죠.”
-아무래도 감독 일을 하다 보면 사생활이 적어질 것 같은데요.
“물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을 때도 많죠. 친구들도 있지만 평일이나 주말 경기가 보통 밤 늦게 끝나니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도 없고. 감독이라는 게 선수만 챙기는 게 아니라 구단 측하고도 얘기를 잘 해야 하고, 프로게임협회 회의도 나가야 하니까 개인 시간도 없는 편이죠.”
-남자친구는 있나요?
“네. 1년 반 넘었어요. 백수고, 지금 취업 준비하고 있어요. 원래 사귀고 나서 1년 정도까지는 비밀로 했어요. 성적도 안 좋은데 남자친구 있으면 좀 그런 것 같아서…. 지금은 목격이 너무 많이 되니까 숨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죠.”
-남자친구는 만날 시간은 좀 있나요.
“시즌 시작하면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만나요. 뭐 저도 나이가 있고 하니까 그렇게 뭐 어렸을 때처럼 매일 보고 그렇지 않아도 아쉽지도 않고. 원래 제가 옆에 누가 오래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공적인 일 외에 10분 이상 통화하는 것도 별로 안 하고.”
-명색이 프로게임단 감독의 남자친구인데, 게임 좀 하나요?
“처음에 우리팀 선수 하나도 몰랐어요. 임요환이나 박정석 같은 선수만 알고. 이제는 우리 경기 잘 챙겨줘요. 남자친구 생기고 나서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런 얘기도 선수들이 하는데. 호호호.”
-후기리그 때 우승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는지요.
“저희가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생각을 해요.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개발을 한다면 100% 확실한 우승이고, 보완이 안 된다면 후기 때는 박빙의 승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우승을 겨우 한 번 했지만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5년이나 10년 후에 e-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팀이 어느 팀이냐고 물었을 때 당연히 ‘삼성전자 칸’이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 팀을 만든 사람이 바로 김가을 감독이라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김가을 감독 정말 최고였어’라는 말 듣고 싶어요. 그때도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면 더 좋고요.”
프로게이머나 감독이 안 됐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김가을 감독은 “게임 기획자”라고 말했다. “제가 롤플레잉게임(RPG)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디아블로 이상 가는 RPG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게 꿈이에요. 은퇴하게 되면 꼭 한 번 꿈을 이루고 싶어요.”
김가을 감독은 스타크래프트 시절 저그 종족을 선호했다. 겉모습은 공격 할 능력도 의도도 없는 ‘오버로드’ 류(類)로 보이는 김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저그 유닛으로 ‘히드라’를 꼽았다.
“찍~ 찍~ 침으로 녹여서 상대방을 제압하잖아요. 속도도 빠르고. 참 매력적인 유닛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