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간 가족경영서 전문 경영인 영입한
패션 名家 미소니

폐쇄적 가족 경영 깨고 전문경영인 선택한 이유?

철저한 가족 경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니트 의류로 사랑받고 있는 ‘미소니(Missoni)’ 또한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중 하나다. 53년 동안 고수해 온 폐쇄적인 가족 경영의 틀을 깨뜨리고 지난 1월 전문경영인(CEO)을 전격 영입한 것이다. Weekly BIZ가 선택의 기로에서 단호한 결심을 내린 미소니 창업자의 아들, 비토리오 미소니(Vittorio Missoni·53·사진)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전문 경영인의 철저한 시장 분석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려는 자신의 열정이 합쳐진다면 '멋진 조합'이 탄생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창업자 가족인 미소니 부자(父子)와 전문경영인(CEO)이 지난 6일 서울 청담동 미소니 매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미소니 창업자의 장남(長男)인 비토리오 미소니(Vittorio Missoni) 회장, 마시모 가스파리니(Massimo Gasparini) 사장, 미소니 회장의 아들인 오타비오 미 소니(Ottavio Missoni).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역시 이탈리아 기업인들이었다. 끈끈한 가족애(愛)와 제품에 대한 열정, 화통한 성격….

패션 명가(名家) 미소니(Missoni) 경영진들에 대한 얘기다. 지난 7월 6일 오후 3시, 청담동 미소니 매장에 흐르던 적막(寂寞)은 이탈리아 남성 3명의 왁자지껄한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깨졌다. 미소니 창업자의 장남(長男)인 비토리오 미소니(Vittorio Missoni·53) 회장과 그의 아들 오타비오 미소니(23), 그리고 올해 1월에 영입된 CEO(최고경영자) 마시모 가스파리니(Massimo Gasparini·49) 사장이었다.

2007년은 미소니에게 분수령으로 기록될 해다. 53년 동안 폐쇄적으로 불릴 만큼 철저히 가족 경영을 고수해오던 미소니가 마침내 전문 경영인을 받아들인 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명품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로 먹고 먹히는 정글로 변하자 미소니도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다. 실제로 요즘 이탈리아 명품 명가(名家)들은 잇따라 전문경영인을 받아들이거나 기업공개(IPO)에 나서고 있다. 특히 가족 경영의 대명사였던 ‘프라다’의 경우, 최근 사업 부진으로 사모펀드(PEF) 등과 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탈리아 전체에 충격을 주고 있다.

다음은 미소니 회장과의 대화.

―왜 갑자기,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기로 결정하셨나요?

“더 성장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끼리만 사업을 꾸려나가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외부인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죠. 도움이 필요할 때는 확실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베르사체나 베네통처럼 가족경영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신한 이탈리아 명품 업체들의 선례를 따라가는 셈인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말씀하신 명품업체들은 상장(IPO)을 하거나, 창업자 가족들이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뗀 곳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아직 상장 계획이 없을 뿐 아니라, 창업자 가족들이 여전히 경영에 절대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창업자이신 우리 아버지 오타비오(Ottavio)와 어머니 로지타(Rosita) 모두 직·간접으로 사업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계세요. 2세대인 저는 마케팅 쪽을 책임지고 있고, 동생 루카(Luca)는 직물 분야를, 여동생 안젤라(Angela)는 수석 디자이너로 미소니 디자인 전반을 책임지고 있어요. 게다가 제 조카 딸인 마르게리타(Margherita)도 디자인을 맡고 있죠.”

―가족 경영 체제를 꾸려갈 거라면, 왜 가스파리니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나요?

(가스파리니 사장은 ‘대신 물어줘서 고맙다’는 듯, 기자를 보며 “Thank you”라고 말했다. 그러자 미소니 회장은 장난스럽게 가스파리니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가스파리니 사장의 이름(마시모)을 부르며 마치 동생 대하듯 친밀하게 행동했다.)

“당연히 기대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아이디어는 많은데,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은 좀 모자란 것 같아요. 최근 전 세계 시장은 ‘변혁’이라고 부를 만큼 강하게 변하며 크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잡아야 해요. 또 우리는 명품 브랜드 이전에 옷과 가방 등을 직접 만드는 제조업체(manufacturer)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제조 기술의 변화도 따라잡아야 하죠. 그런데 저는 과거 경험이나 통계치 같은 것보다도 그냥 제 ‘본능’ ‘느낌’ 등을 믿고 따르는 편이에요. 25년 동안 나름대로 닦아온 업계 본능이긴 한데, 요즘 사업이 점점 더 커지면서 이런 것에만 의지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시모는 20여 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어요. 그의 역할로 저의 부족함을 보완하려고 합니다. 두 가지가 합쳐지면 멋진 조합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지금까지 미소니가 이뤄낸 것을 계속 지켜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스파리니 사장에게) 당신은 아멕스 카드 같은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다, 그보다 작고 가족경영을 하는 미소니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이유가 뭔가요?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리 어려운 결정도 아니었어요. 저는 미소니의 품질, 독특한 시장 접근 방법, 창업자 가족들의 열정 등을 보고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브랜드이지 않습니까. 창업자 가족에게서 이탈리아인 특유의 열정을 봤습니다. 제품 속에도 이탈리아의 열정과 강인함이 녹아 있고요.”

―이탈리아 기업들의 경우에 가족 경영이 흔한 편인가요?

“네. 아주 흔하죠. 이탈리아 전통 중 하나입니다. 이탈리아 명품 업체들은 대개 처음 시작은 가족입니다. 미소니도 벌써 3대째를 맞고 있는 걸요. 가족 경영은 ‘가치’와 ‘자존심’의 전승이라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미소니는 패션이기도 하면서 역사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옷 조각을 사는 게 아니라 미소니의 역사를 삽니다.”

―미소니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첫째도, 둘째도 제품입니다. 미소니 제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특색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 미소니는 전통적인 니트(옷) 제품에서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앞으로 이들 제품들을 가능한 한 많이 노출시킬 예정입니다.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업체를 통할 수도 있고, 자체 매장을 열 수도 있고요.”

(미소니의 대표 제품은 니트(Knit) 의류다. 지그재그, 스트라이프 등 7000여 가지의 기하학적 무늬가 50여 가지의 화려한 색으로 표현되고 있어, 패션업계에서는 ‘색채의 마법’이라고도 불린다.)

―미소니 제품은 누구나 한눈에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것이 사실입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미소니는 그 어떤 제품에도 ‘미소니’라는 라벨을 붙이지 않아요. 그냥 제품 자체가 미소니임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우리의 전략 중 하나죠. 만약 거리에서 ‘미소니’ 제품을 본다면, 사람들은 굳이 라벨이 없어도 ‘앗, 이건 미소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미소니 비슷한 옷을 봤는데 뭔가 느낌이 께름칙하고 이상하다면, 그건 분명히 ‘짝퉁(bad copy)’일 겁니다. 그런 일이 사실 비일비재하지만요.”

―미소니 주요 고객층은 누구인가요? 한국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미소니를 무척 좋아하지만, 사실 젊은이들 사이에선 그리 인기가 있는 제품은 아닌데요.

“그래요. 우리 제품은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어왔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목표 고객층이 중년 여성에 국한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도 최근에 젊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컬렉션을 보셨다면 느끼셨을 텐데, 아주 새로운 기운이 넘치죠. 젊은 세대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에요. 젊은 시절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평생 고객이 되니까. 그런데 고객을 젊은층으로 낮추면 치러야 할 대가도 있습니다. 그 대신 돈 많은 중년층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걸 잘 조화해 나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여성들의 패션 감각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릴 때부터 모델들을 보고 자랐으니, ‘미’를 보는 눈이 색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패셔니스타(fashionista)들 틈에서 자라났죠. 당연히 아름다움을 좋아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요즘 어딜 가나 여성들의 옷차림이 너무 비슷하다는 거예요. 별로 특색이 없어요.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똑같은 상품을 어디에서나 입을 수 있게 됐거든요.”

―(아들 오타비오 미소니에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아버지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의 스타일은, 미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거든요. 특히 한국 여성들의 옷차림은 너무 비슷비슷해요. 거리에서 못 알아 볼 정도예요. 참, 그런데 저도 미소니에 대한 의견이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제 개인적인 바람은, 좀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미소니를 입어줬으면 하는 거예요. 사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셔츠도 미소니건데, 제 친구들이 ‘너무 멋있다. 어디 제품이냐’라고 묻거든요. 갈수록 더욱 젊은 취향의 제품이 나오고 있으니까, 더 많은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오랜 가족경영의 틀을 깨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이탈리아 '미소니'의 비토리오 미소니 회장과 CEO 마시모 가스파리니


브랜드 산업에서 '가족경영'으론 규모의 경제 실현 어렵다
이탈리아 명품기업, 가족경영 버리고 상장바람
성장하는 아시아 명품시장 마케팅으로 선점시도

정윤서 코트라 밀라노 무역관 과장

이탈리아 명품 기업들의 특징이 있다. 장인정신에 바탕을 둔 감각적 디자인과 뛰어난 품질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 온 점이다. 또 이탈리아 기업들은 비교적 작은 규모이며, 가족 경영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세계 3위의 보석 기업인 이탈리아의 ‘불가리(Bvlgari)’는 1884년 그리스 이민자인 소티리오 불가리에 의해 설립돼 지금은 3세대인 손자들이 회장·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또 신발 명품 브랜드인 페라가모(Ferragamo) 역시 1914년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의해 설립돼 현재 페라가모 가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와 함께 명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프랑스 명품업체들은 조금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대규모로 자본을 조달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가방, 의류, 신발, 향수 등 멀티 브랜드로 확장하는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이탈리아 업체들은 한 우물을 파는 식으로 한 업종에 치중하는 편이다.

프랑스 기업이면서 세계 최대의 명품업체인 LVMH의 경우, 가죽제품(지방시·루이비통), 향수(크리스찬 디올·겔랑), 주류(모에 샹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수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대표적 명품 브랜드인 아르마니(Armani)의 경우 하위 브랜드로, 아르마니 진(jean)·주니어 아르마니 등 같은 의류 내에서 고객별·종류별로 세분화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추진해 온 이탈리아 명품기업들은 요즘 ‘변화’하기 위해 무섭게 노력하고 있다. 이유는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명품 시장 규모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아시아 시장이 기회의 땅인 만큼 경쟁도 매우 치열해, 시장 선점을 위해선 광고나 마케팅, 판매망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이탈리아식 소규모 가족경영으로는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려워 해외 신규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라가모의 예를 보자. 1993년만 해도 기업 규모가 구찌(Gucci)와 불가리(Bvlgari)보다 2배 가량 컸지만 지금은 불가리의 절반, 구찌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페레가모는 2008년을 목표로 기업공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보수적인 이탈리아 기업의 성향을 고려할 때, 기존의 ‘가족 경영’이라는 기업 지배 방식에서 갑자기 탈피하는 데 대한 정서적인 반감도 예상된다. 증시 상장으로 자금을 확보해 무조건 브랜드 확장에 나선다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요즘 이탈리아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도전에 맞서 벌이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은 브랜드 산업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눈여겨봐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