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 ’의 임재원 작가<사진 위>와 ‘라그나로크 ’의 이명진 작가.


9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이명진과 임재원은 익숙한
이름이다. 90년대 대표적 '학원물' 만화인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과 '짱'이 이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고생들에게 이들의 이름은 만화보다 게임으로
기억될 듯하다. 이명진(28)씨의 동명 만화를 소재로 한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는 동시접속자 수가 2만명에 달하는 인기 게임으로
떠올랐고, 임재원(30)씨의 '짱'은 지난주 PC게임으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만화가 이명진씨와 임재원씨는 게임과 만화를 이어주고, 10대와 20대를
이어주는 중개자다. 두 사람은 만화와 게임의 경계선을 허물면서 게임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리니지'의 신일숙씨, '바람의 나라'의 김진씨 등 게임에 뛰어든
1세대 작가들이 단순히 게임에 만화 이름을 빌려주는 데 그쳤다면,
이들은 게임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사고 방식도, 행동 양식도 앞 세대와 많이 다르다. "학창 시절
집에서는 게임만 하고, 학교에서는 만화만 그렸습니다." 이명진씨는
"만화가가 안 됐으면 게임 개발자가 됐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씨는 그의 데뷔작 '어쩐지…'가 성공하자마자 게임으로 만들 궁리를
했다. 하지만 게임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이 게임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했다. 두 번째 작품인 '라그나로크'는 철저한 준비 끝에 지난해 말
게임으로 만들었다. 라그나로크는 아이린스·사라·팬리스 등 3명의
주인공이 신(神)과 대결하면서 세상을 창조해간다는 내용. 만화 장르도
일부러 게임으로 인기를 끌 만한 팬터지로 정했다.

이씨는 또 이전 만화가들처럼 골방에 파묻히는 대신 테헤란밸리에 자주
나타난다. 그는 1주일에 세 번씩 서울 강남에 위치한 라그나로크 개발사
그라비티에 들러 개발자들과 회의를 하고, 게임 방향을 논의한다.

임재원씨는 만화잡지 신인 공모전 출신인 이씨와 달리 유명작가의
문하생으로 출발한 '정통파'다. 하지만 그도 게임산업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게임 세계에 발을 디뎠다. "만화 시장이 많이 어려워요.
예전에는 '짱' 단행본이 새로 나오면 10만부씩 팔렸는데, 요즘은
5만부도 안 팔립니다. 제 문하생 중에도 게임 디자이너가 된 사람이
있듯, 만화에서 게임으로 전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화 '짱'은 싸움을 잘하지만 순수한 고등학생 현상태와 친구들의
우정·사랑·싸움을 그리고 있다. 반면 게임 '짱'은 다양한 전투
기술을 가진 캐릭터가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내용. 임씨는 "게임에서는
우정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이들은 만화와 게임을 동시에 만들기 때문에 만화와 게임의 차이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예를 들어 이명진씨는 만화에서는 늘씬한 8등신
미녀를 그렸지만, 게임에서는 귀엽고 앙증맞은 4등신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씨는 "기존 온라인게임에서는 캐릭터들이 어두운 배경에 희미하게
표현돼 답답했다"며 "게임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고 말했다.

임재원씨는 "만화와 게임의 접목은 앞으로 게임산업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임씨는 PC게임이 성공하면 온라인
게임에도 도전할 계획이다.